26.04.19 18:50최종 업데이트 26.04.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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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우오칼라니 여왕위키미디어 공용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 최초의 여왕이자 군주정 하와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최후의 왕이었다. 릴리우오칼라니를 마지막으로 하와이에는 공화국이 들어섰다. 공화정이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는 긍정적인 역사의 흐름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아주 달랐다.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하와이 땅을 태평양 건너 미국은 일찌감치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1820년 선교사를 선두로 하와이에 들어온 미국인 자본가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친미 왕조를 들이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이 섬의 경제권을 야금야금 차지해 갔다. 그리고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가 미국 자본가들에게 휘둘리는 현실을 탐탁지 않아 했다.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선 사탕수수밭 국유화 등의 혁신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오빠이자 전임 군주였던 칼라카우아 왕이 미국에 무역 특혜를 주는 법안에 서명할 때도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했다.

미국 정부와 자본가들이 이 여왕이 즉위하던 때부터 탐탁지 않아 했던 건 당연했다.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의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주제의 권력을 회복하고 유권자의 자격 요건인 재산 소유 기준을 완화하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도 투표권을 가지도록 하는 내용의 새로운 헌법을 추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헌법 개정안은 미국인과 유럽인의 참정권과 경제권을 제한했다.

사랑으로 버텼고 사랑해서 물러난 군주

지금도 미국이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다른 나라의 정치에 간섭하거나 아예 침공까지 하는 것처럼 그때의 행태도 다를 게 없었다. 이미 릴리우오칼라니를 쫓아낼 생각을 하고 있던 미국은 이 새로운 헌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빌미로 하와이에 군대를 상륙시켰다. 곧이어 이들은 하와이 왕조의 종식을 선언하고, 사실상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임시정부를 만들어서 하와이를 아예 미국으로 병합시킬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릴리우오칼라니는 퇴위를 선언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하지만 왕정 복구를 위한 저항이 일어나고, 그 결과 자신의 지지자들이 감옥에서 죽거나 다칠 위기에 처하자 결국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약속하였다. 이런 야만적인 병합에 대해 미국은 먼 훗날 클린턴 정부에서야 처음으로 사과 의사를 밝혔다.

릴리우오칼라니는 그토록 사랑하던 하와이를 지키기 위해 유폐와 군인들의 감시 속에서도 퇴위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토록 사랑했던 하와이인들이 죽거나 고통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사랑으로 버텼고 사랑해서 물러난 셈이다. 이처럼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와 이 나라의 고유문화와 사람들을 사랑했다.

특히 여왕은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아이들이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아 지혜와 지식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그녀가 가진 철학이었다. 또한 릴리우오칼라니는 훌라와 전통 음악과 같은 하와이만의 문화가 하와이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뿌리임을 주장했다.

지난 1월 24일 하와이 카일루아 코나의 후알랄라이 골프 클럽에서 열린 ‘2026 후알랄라이 미쓰비시 일렉트릭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미국의 스튜어트 싱크에게 트로피를 수여하는 시상식을 앞두고, 훌라 무용수들이 18번 홀 그린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훌라 경연대회에 떨어진 질문

이런 여왕의 마음을 기리며 하와이에선 매년 '릴리우오칼라니 케이키 훌라 경연대회'가 열린다. 현재에도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어린이-청소년 훌라 경연대회라고 한다. 그리고 이 대회와 관련하여 벌어진 흥미로운 일이 내게 전해졌다. 몇 년 전부터 훌라에 푹 빠져 일본의 남성 훌라 학교까지 찾아가 훌라를 배우고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이자 내 친구인 리나가 '이건 칼럼으로 쓸만한 일이다'라고 하며 보내준 에피소드다.

리나는 훌라의 춤 동작뿐만 아니라 훌라를 둘러싼 하와이의 문화에도 무척 관심이 많다. 그런 리나에 따르면 하와이가 속한 폴리네시아 문화권에는 카네(남성), 와히네(여성)에 더불어 제3의 성인 마후(Māhū)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고 한다. 마후는 현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게이와 트랜스젠더가 혼용된 것인데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한 분류는 보편적인 게 아니라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지역과 시대의 간극이 있는 개념들은 비슷해 보이더라도 정의가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기도 한다.

아무튼 리나에 따르면 훌라 대회는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남성과 여성인 '카네와 와히네'로 참가 분야가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후'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대회에 참여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릴리우오칼라니 케이키 훌라 경연대회는 이미 2017년에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주최 측은 스스로를 마후로 정체화하면서 사회적으로 성별 전환을 하고 있는 참가자가 있다면, 의료적 성별 전환을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주최 측에 알려달라고 했다. 이유는 그 참가자가 가장 편안하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주최 측에서 찾아내기 위함이라는 게 공지 내용이다. 또한 리나는 공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며 이 내용을 전했는데, 탁월한 번역이라 생각하여 허락하에 여기에 옮긴다.

"릴리우 여왕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을까? 여왕은 모든 어린이를 차별 없이 사랑했다. 그렇기에 마후 어린이가 처한 사회적 지지가 부족한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성별정체성/성적지향으로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릴리우오칼라니 케이키 훌라 경연대회의 전 의장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2017년 당시 통과된 마후 참가자에 대한 방침Trisha Kehaulani

릴리우 여왕이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

2026년인 지금도 사회의 여러 영역과 분야에서 트랜스젠더는 공격 혹은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고 이분법으로 구분된 성별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제도, 시설, 행사 등에서 트랜스젠더는 문젯거리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성별 또한 사실 인간이 만든 분류이자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성별 이분법은 자연적인 것이며 고정불변의 상태로 이어져 온 전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 하와이 땅에 미국인 선교사가 등장하고 강제 병합이 진행된 이후 하와이에선 기독교적 가치관이 강해졌고 마후와 같이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정체성이 비정상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2017년의 경연대회의 주최 측이 현대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 참가자들은 여성과 남성으로 참가 분야가 이분화된 이 대회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이 대회의 가장 깊은 뿌리와 전통을 이루는 사람의 마음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다. 릴리우 여왕이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 훌라 문화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 하와이를 너무나 사랑한 사람. 하와이의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 그 사람이 과연 이 어린이가 마후라고, 트랜스젠더라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졌다고 그 어린이를 차별했을까?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차별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랑에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이 답에 따라, 대회의 뿌리에 있는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판단에 따라 답을 내렸다. 차별하지 않겠다는 답 말이다.

요즘의 세상은 유독 흉흉한 느낌이다. 특히 매체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는 권력자들이 노골적인 야욕과 험악한 폭력성을 감출 의지도 없이 드러낸다. 이런 세상에서 예의를 갖추고 선량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도 싶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릴수록 세상과 공동체와 사람을 사랑했던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매일매일 질문할 것이다.

릴리우 여왕이라면 어떻게 판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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