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6개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사용하던 복지 행정 시스템을 하나의 공통된 표준 모델로 통일하는 ‘독일-스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Deutschland-Stack 누리집 갈무리
독일이 한국에 던지는 다섯 가지 질문
한국은 지난 30여년 간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줬지만, 불평등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한국 사회국가는 여전히 '형성 중'이다. 사회국가의 성숙단계를 지난 독일 모델은 우리에게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고용 안전망의 촘촘함이다. 독일은 실업급여·시민수당·사회부조에 이르는 다단계 안전망을 유지하며, 비정규 노동 증가에 따른 불안정성을 경계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비정규직 중 임시직 비율이 26.9%로 OECD 평균(11.2%)의 두 배가 넘지만, 고용보험은 여전히 정규직 중심이고 급여 수준이 낮고 기간도 짧다. 특히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급여 수준과 수급 요건을 현실화하고, 이것이 실질적 안전망으로 기능하도록 행정 서비스와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
둘째, 양질의 아동·청년 지원이다. 독일 아동수당은 월 259유로(38만 원 가량)를 최장 만 25세까지, 청년수당은 무직·저소득 청년에게 구직활동 의무화와 직업훈련을 요건으로 연간 약 50억 유로(8조 원 가량)를 지급한다. 독일의 청년고용제도는 OECD권 주요 모델로 높은 노동시장 연계성(school to work)을 갖고 있다. 졸업 또는 실직 후 4개월 이내 양질의 일자리나 직업훈련 기회를 보장하는 'Youth Guarantee(청년보장제)' 제도도 운영한다. 한국의 청년 구직수당(6개월 간 월 50만원)과는 차이가 크다.
셋째, 복지의 역설 극복이다. 독일은 노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가정 및 시설 돌봄, 사회적 재활과 통합, 특수 상황 지원 등 광범위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 이용자는 총 800만 명에 달하며, 연간 약 1200억~1500억 유로의 재정이 투입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각종 사회급여는 총 502개에 달하는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근거로 촘촘하게 지급되며,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사회국가 체제를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을 보장 받는 계층에 오히려 공적 복지가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전체 공적 소득이전 중 소득 하위 20%에 배분되는 비중은 2009년 45.2%에서 2023년 35.8%로 대폭 감소했다. 취약계층을 비껴가는 이러한 복지의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 소득 하위 40%를 겨냥한 공적이전을 대폭 확대하고 공공사회지출 규모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적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넷째, 복지 행정의 사법적 구제 체계 확립이다. 독일은 83개의 독립적인 전문 사회법원에서 연간 30만 건 이상의 분쟁을 처리한다. 한국도 최근 행정법원에 사회보장 전문부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나, 사회보장 소송이 연간 수천 건에 불과한 현실은 법치주의적 권리 구제 강화라는 과제를 남긴다.
다섯째,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디지털 복지 구현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IT 강국이지만, 복지 행정의 유기적 통합과 '탈신청주의' 실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독일이 제안한 데이터 통합 수집과 AI 플랫폼 활용 방안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행정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독일의 개혁은 복지가 단순히 시혜적 지출이 아니라 시장 경제의 역동성을 지탱하는 '사회적 투자'임을 재확인 시켜준다. 독일 사회국가개혁위원회의 26개 권고안이 한국 사회의 안전망을 다시 설계하는 데 영감을 주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AI 시대의 복지 국가는 더 따뜻하면서도 더 똑똑해야 한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본인
필자 소개 : 이호근은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이자, 현재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차별시정심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EU FTA 및 한-영 FTA 국내자문단(DAG) 노동부문 자문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공익위원, 한국산업노동학회 <산업노동> 편집위원을 맡았습니다. 한국사회정책학회 회장, 한국사회보장법학회 회장, 고용노동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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