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3 06:37최종 업데이트 26.04.1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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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야구팬이 되었고, 무엇을 견디며 남았으며, 무엇 때문에 떠났는가. 이 연재는 한국야구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야구팬들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시도다.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구단과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이 연재는 분석이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우리는"이라는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야구팬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편지다.[기자말]

지난 3월 14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6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은 도미니카에 10대 0,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연합뉴스

지난 3월 14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도미니카와의 WBC 8강전은 1시간 40분 만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7회 10대 0의 콜드게임 패배. 기적적인 예선라운드 통과의 감격이 싸늘하게 식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댓글 창과 SNS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라 망신', '차라리 예선에서 떨어졌으면 이 꼴을 안 봤을 텐데', '헤엄쳐서 귀국해라'

욕설과 탄식이 뒤섞인 그 반응들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남몰래 소중하게 지켜오던 무언가가 만인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비명이었다. 한국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나라 망신'이라는 말은 가장 절절한 비난이며 동시에 가장 고통스러운 신음이다.

국제대회,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우는 시간

국제대회는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거대한 창구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우승이 프로야구 출범과 맞물려 야구를 국민스포츠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IMF 경제위기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던 야구의 부흥기를 열었다. 아직 멀었다는 외부의 예상을 깨고, 체격으로나 몸값으로나 비교가 되지 않는 이방인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쓰러뜨리는 순간 온 국민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외치고, 그 사실을 일깨워준 선수들에게 찬사를 넘어 눈물겨운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하지만 국가대표 야구팀의 선전을 통해 얻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각이란, 뒤집어보면 '그동안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열렸던 생각은, 패배의 소식과 함께 다시 닫힌다.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지'. 국제대회에서의 승리가 단순한 승리 이상의 감격이 되듯, 패배는 단순한 패배 이상의 상처가 된다. 더구나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상대에게 당한 패배, 혹은 강한 상대라고 해도 맥없이 당한 패배의 고통은 스스로도 얼른 이해되지 않을 만큼 깊다.

2006년에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프로팀 최고 스타들로 구성된 '드림팀'을 파견하고도 대만은 물론, 사회인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도 패배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일명 '도하 참사'다. 2013년에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네덜란드에 5대 0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그리고 2017년, 안방인 서울의 고척돔에서 열린 제4회 대회 1라운드에서도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하며 또다시 탈락했다. 각각 '타이중 참사', '고척 참사'다.

21세기의 첫 10여 년간 간혹 들려오던 '참사' 소식이, 최근 몇 년간은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과 미국에 완패한 뒤 3-4위전에 만난 도미니카에까지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도쿄돔에서 경험한 2년 뒤의 또다른 '참사'와 구분하기 위해 '노메달 참사'라 불린다.

그리고 2023년에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5회 WBC 1라운드에서 늘 한 수 아래로 보던 호주에게 충격패를 당한 데 이어 한 수 위라고는 해도 늘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고 믿었던 일본에게 4대 13으로 압도당하며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그 이듬해인 2024년에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3회 프리미어12 예선 라운드에서 대만과 일본에 연패하며 그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각각 '도쿄 참사', '타이베이 참사'다.

지난 3월 14일 도미니카전 콜드게임 패배는 '참사'라고까지 불리지는 않는다. 그나마 세 차례의 1라운드 탈락을 이어가던 그 대회에서 17년 만에 8강에 오른 참이었고, 상대 팀의 전력이 강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콜드게임 패배라는 점이 마음의 어떤 선을 넘었고, 혼잣말로라도 '마이애미 참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없지는 않다.

이런 패배들이 일깨우는 불쾌감과 불안감은, 국내 리그에서 응원팀이 18연패를 당하는 것과는 종류가 또 다르다. 응원팀의 연패가 그저 패배감이라면, 국가대표팀의 참패는 '역시 우리는 변방의 아류에 불과한가'라는 잠재된 열등감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그런 패배는 두 번 요동친다. 경기에서 지는 순간 한 번,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기대가 착각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또 한 번 우리를 할퀸다.

'나라 망신'의 문제는, 굳이 나누자면 실력이 아니라 드러남에 있다. 망신은 실패의 감정이 아니라, 실패가 공개되는 순간의 감정이다. 아무리 실력이 부족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면 망신이 아니지만, 세계라는 조명 아래 노출되는 순간 망신이 된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 속에서 내가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의 뼈아픈 자각이다.

실패할 때보다, 실패가 드러날 때

2009년 3월 24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한국팀이 득점하는 순간, 조계사 극락전에서 관전하던 스님들이 환호하고 있다.권우성

그래서 여전히 망신당했다며 분노하는 이들이 오히려 관계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린다. '그들이 망신당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망신당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 곁에 함께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경기를 본 것이 아니라, 세계의 시선 앞에서 평가 받는 우리 자신의 자존심을 본 셈이다.

망신은 관계를 끊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망신은 어쨌거나, 연대감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서툴고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이어지는 경기, 그 안에서 비난과 환희를 함께 겪으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물론 이 지독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망신이 거듭되고 수치심이 넘치면 선을 그을 수도 있다. 단절은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약팀의 팬이 처참한 성적만으로 팀을 버리지 않듯, 한국인들이 몇 번의 참사만으로 국가대표팀을 떠나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버틸 만한 이유가 생기면 우리는 다시 모여 응원의 모닥불을 지핀다.

오히려 세계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같은 편이었음을 자각한다. 망신의 난감함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증거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끝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깊이 같은 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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