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이미 산드라에게 남편 살해범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린나래미디어
다행히 영화 속 법정에서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다니엘을 대한다. 다니엘은 이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면서도 유력한 용의자인 엄마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법무부는 다니엘의 증언이 독립성을 침해받지 않도록 직원을 파견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다니엘과 함께 생활하도록 한다.
산드라 역시 다니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네가 기억하는 대로만 말하면 된다며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몰렸고 아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라면 과연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평결을 앞둔 주말, 다니엘은 엄마와 떨어져 법무부 직원과 둘이 있겠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월요일, 그는 법정에서 증언을 할 예정이다. 다니엘이 직접 판사에게 요청한 증언이다. 다니엘을 집에 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차 안, 자신의 사생활과 치부가 까발려지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을 때도 시종일관 담담한 얼굴이었던 산드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가장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양육자가 더는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 없는 아이만의 세계가 생겨남을 의미한다. 산드라는 그 세계를 존중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정말 엄마가 죽였을까요?"라고 묻는 다니엘에게, 법무부 직원은 말한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부족할 때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야 의심을 떨쳐낼 수 있다고. 그러자 다니엘이 납득할 수 없다는 말투로 반문한다.
"믿음을 지어내라고요? 그럼 저는 지금 확신이 없으니 확신한 척을 해야 하나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이미 산드라에게 남편 살해범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산드라는 "어둡고 비뚤어진" 사람이며, 소설 곳곳에 살인의 암시를 숨겨두었다면서 그를 악마화한다. 방송에서 한 패널은 "실제 사망 원인은 중요하지 않고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그 설정 자체가 어느 교수의 자살보단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을 믿는다. 단지 그것이 더 흥미롭다는 이유로.
산드라의 추락을 보면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나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락이 도파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또 누군가 불미스러운 논란과 함께 한순간에 추락하는 시대다. 그런데 논란을 들여다보면 반박조차 어려울 만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도 있지만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처음에는 반박과 재반박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며 신나게 돌을 던지던 대중은 논란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흥미를 잃는다. 논점은 흐릿해지고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인상만 남는다.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유의미한 결론이 내려질 즈음에는 이미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 사이 또 다른 누군가 처형대에 오르고 너무 빠른 단죄와 손절이 반복된다.
아찔할 정도로 빠른 '나락 문화' 속에서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 이 사안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찬찬히 살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파민에 중독된 사회는 차분히 기다리고 헤아리며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쩌면 진실에는 애초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쁜 놈'에게 돌을 던지면서 즉각적으로 느끼는 효능감만이 중요한지도. 자신이 어떤 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법정과 언론에서 어른들이 단편적인 정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합해 소설을 쓰는 동안, 다니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실을 검증하며 진실에 다가간다. 다니엘은 말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면,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물어야 한다고. 엄마가 아빠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는가?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이유가 있는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왜'로 바꾸는 순간, 다니엘은 비로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 묻게 된다. 여기서 진짜 미숙한 사람은 누구일까.
재판을 방청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니엘은 판사에게 말한다. 이미 상처받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극복하고 싶다고.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고 다니엘은 이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조차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다니엘은 적어도 진실의 언저리에서 돌만 던지는 비겁한 어른은 되지 않으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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