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3 10:42최종 업데이트 26.04.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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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인터넷에서 3만 원대 삭스 스니커즈를 한 켤레 샀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신자마자 알았다. '아, 이건 사랑이구나....!' 양말을 신은 듯한 가벼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피로가 거의 없는 착화감. 말 그대로 인생 운동화였다.

천이 여름용이라 구멍이 숭숭 뚫린 녀석을 애정해 한겨울에도 두꺼운 양말을 겹쳐 신고 다녔다. 엄지발가락 쪽이 해지면 꿰매어 연명했고, 옆면이 더러워지면 흰 칠을 해가며 미백관리를 도맡았다. 평소 물건에 정을 쏟는 편이 아닌데 이 녀석 앞에서는 수선 장인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촬영으로 전국을 돌 때도 늘 현관 앞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는 든든한 동행자였다.

7년을 신은 운동화, 이게 뭐라고

새롭게 덧댄 밑창에도 계속 흰칠을 덧입혀주고 있다.차유진

그렇게 7년을 신었더니, 어느 날 밑창이 쥐가 파먹은 듯 패여 있었다. 급히 인터넷을 뒤졌다. 첫 구매처는 폐업을 했다. 같은 모델은 흔적도 없었다. 몇날 며칠을 검색해봤지만 대체할 신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나는 재고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슷한 모양도 여러 번 주문했다. 그러나 신발에 발을 넣어보자마자 도로 뺐다. 가볍긴 한데 그 가벼움이 아니었고 편하긴 한데 그 편안함이 아니었다. 결국 마음을 주지 못한 채 모두 돌려 보냈다. 그 사이 밑창은 더 깊이 파였다. 이러다 길에서 발이 꺼져 아스팔트와 마주할 것 같았다. 그때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밑창만 갈면 되지 않을까?'

곧장 녀석을 쇼핑백에 고이 담아 수선집으로 뛰어갔다. 사장님은 돋보기를 고쳐쓰며 신발을 이리저리 눌러보고 구부려보더니, 담담하게 소견을 내렸다.

"밑창 깎고 새로 덧대면 돼요."

그 한 마디에 보호자도 심폐소생이 된 듯했다. 다시 이 녀석과 함께할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진료비는 처음 신발값과 맞먹었다. 사랑은 원래 돈이 든다. 두 시간의 대수술을 마친 나의 운동화를 드디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신는 순간, 바로 알았다.

'신발이....무거워졌다...!'

공기를 신은 듯했던 가벼움은 사라지고, 저울추를 매단 듯한 묵직함이 발에 달렸다. 발이 무거워지자 마음도 따라 무거워졌다. 녀석은 다시 나가자며 신발장에서 자기를 꺼내주길 바랐지만, 나는 뒷축을 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발장을 열 때마다 한참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모양이 예쁜 것도 아니고, 비싼 명품도 아닌 낡은 신발을 왜 여즉 버리지 못할까. 답은 단순했다. 내 작고 좁은 발을 가장 잘 알아주었으니까. 어디를 가도 억지로 무리시키지 않았고, 맑은 날에도 눈비 오는 날에도 바닥에 발을 붙이고 함께 걸어준 벗이었다. 힘든 시간 어디든 말없이 따라와 주었던 길동무를 물건 취급하듯 쉽사리 밀어낼 순 없었다.

두 시간의 대수술을 마친 나의 운동화. 어, 이게 아닌데...차유진

닳을수록 한짝이 되어 가는 엄마와 나

저녁이 되자, 여느 때처럼 엄마와 단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여든이 훌쩍 넘은 엄마의 시간 속에는 이미 떠나보낸 수많은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내왔을까.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흐르는 라디오 음악에 질문을 실어 보냈다.

"엄마도 평생 살면서, 정들어서 못 버리는 물건이 있어?"

묻기가 무섭게, 엄마는 입에 밥을 머금은 채 집게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너."

명사수처럼 정확히 꽂힌 한 마디에, 과녁을 뚫고 나오듯 웃음이 빵 터졌다. 엄마는 "너, 너"를 몇 번이고 되뇌며 나를 가리켰다. 송구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시큰했다. 시집도 가지 않고 당신 곁에서 지천명을 훌쩍 넘긴 딸을 향한 오래된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가느다란 음성이 열린 창 틈으로 스며든 실바람을 타고 귓가에 닿았다.

"고~맙지. 같이 있어줘서."

문득 세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단둘이 밥을 먹기 시작한 게 어느새 7년 반이 넘었다. 매일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산책을 하고 장을 보고 성당에 다니며, 어디든 함께 걸었다. 그 사이 낡은 신발도, 여든의 엄마도, 지천명을 넘긴 나도 조금씩 닳아갔다. 닳아갈수록 우리는 서로의 길든 한 짝이 되어 간다.

며칠 후, 신발장을 활짝 열어 무거워진 녀석을 꺼내 신었다. 편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발을 밀어 넣는다. 편안함이 아니라, 편안했던 기억을 신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괜찮다. 무게추 달린 묵직함 안에는 함께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으니까. 그 무게마저도 나의 것이 되어 다시 길동무와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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