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자료사진)
국회사진취재단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어떤 일이든 뭘 하려면 뭘 알아야 한다. 가령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진단을 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민정이 국민의 마음을 살피려면, 국민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 그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알 것인가? 정보의 수집, 분석의 문제가 대두되는 지점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민정은 공직자 및 친인척, 권력 내부 비위 사실과 공직자 인사 검증까지 담당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정보의 수집과 분석이 필요한 일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종래 민정은 정보기관들을 모두 관장했다. 안기부(국정원)를 필두로 하여 군의 기무사, 민간의 경찰 정보를 민정이 관장했다. 여기에 더하여 민정수석실 자체적으로 특별감찰반을 운용하였다. 민정수석실이 막강한 힘을 갖는다고 평가받는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국정원의 폭주
그런데 이른바 보수 정부는 이 조직들을 민간인 사찰, 정치인 사찰 등 정치적으로 오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민간인 사찰이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촛불 집회 국면을 겪고 나서 국정원장을 원세훈으로 교체하였고,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보 수집에 착수하였다. 심지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 및 그 추종 세력까지 사찰 대상이 되었다.
민간 영역은 더 심했다. 4대강 반대 세력 및 박원순 등 시민 사회 인사, 명진 스님 등 종교계 인사 등이 사찰 대상이 되었다. 이명박 청와대가 지휘소, 국정원이 실행을 맡았다. 국정원의 이러한 폭주는 결국 2012년 대선에서 댓글 부대 조직을 통한 대선 개입 공작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보수 정부가 이러한 정보 기구를 통하여 본래 취지인 공직자 및 친인척, 권력 내부 비위 사실 파악에 최선을 다했는지도 의문이다. 종래 국정원이 신원 조사 기능을 악용하여 공직자 세평 수집을 한다는 명분으로 4급 국정원 IO가 장관실 문을 예고없이 열고 들어가는 일이 있을 정도로 고위 공직자들이 국정원에 포획되어 있었다. 이런 행태는 정보기구의 권력에 공직 사회가 왜곡되는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국정원 국내 정보 수집을 엄금했다. 이에 따라 2017년 6월 국정원 국내 정보 IO의 기관 출입이 중단되었고, 8월에는 국내 정보 조직이 해편되었다. 기무사 역시 2018년 9월 국군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되면서 군내 정보 수집의 범위가 축소되었다. 나아가 2020년 12월 13일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국내 보안 정보의 수집·작성과 나아가 대공수사가 국정원의 직무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성과들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다. 김영삼 대통령의 하나회 숙청이 군부 쿠데타의 악령을 끝냈다면, 국정원 국내 정보 및 대공 수사 폐지는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 민간인 사찰의 악령을 종식한 것이다. 나아가 이 성과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국면에 국정원이 개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윤석열 내란 책동을 파탄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의의와 별개로 국정원 국내 정보의 해편은 불가피하게 권력 운용에 있어서 정보의 공백을 초래했다. 아울러 국정원 국내 정보가 수행하던 반사적 순기능이 사라져 문제도 생겼다. 2018년 중반 민정수석실을 강타했던 특별감찰반 문제 및 2019년 윤석열의 난동을 국정원 국내 정보의 공백이 초래한 후과로 보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 분석에 의하면 국정원은 비밀공작·사찰 등의 이미지 탓에 권력기관들이 가장 의식하는 기관이고, 그래서 권력기관들이 국정원에 포착될까 우려하여 불법적 권력 남용을 조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을 가장 강하게 의식한 조직이 검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의 그러한 제어적 기능이 사라지자, 검찰 범죄정보기획관실 출신이 주축인 청와대 특감반과 검찰 조직이 준동하였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권력기관을 다루는 업무의 경험에서 나는 이 분석에 일면 수긍이 갔다.
한편, 국정원 정보의 공백에도 대통령의 보좌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가 없는 상황에서 잇몸으로 때웠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민정수석실은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말도 어폐가 있는 것이, 국정원의 정보 공백이란 야당과 언론, 민간인들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이다.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야당과 언론, 민간인들에 대한 정보 수집을 철저하게 금했다.
백원우 초대 민정비서관과 고 백재영 수사관의 경우

▲백원우, 전 특감반 수사관 유가족 위로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19-12-03
연합뉴스
나는 이 대목에서 백원우 초대 민정비서관과 고 백재영 수사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청와대 들어갔을 때 백원우는 나의 직속 상관이었다. 백원우는 민정비서관실 구성원에게 대통령 권력은 절대 언론이나 야당의 비판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고 늘 말했다. 대신 권력 내부의 싸움, 알력, 대통령 친인척과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 팔아 사익을 채울 때 대통령 권력은 무너진다고 했다. 야당이나 언론 말고, 권력 내부의 알력과 고위공직자들의 비위를 포착하는데 힘을 쏟으라고 했다. 그러한 견지에서 백원우는 재직 중 청와대 내부의 군기반장을 자처했고, 이후 민정비서관이 된 내게도 청와대 내 군기반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부와 검찰 관계가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에서 재선 의원 출신의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백원우는 정반대의 오해를 받았다. 특히 울산 사건에서 윤석열 패거리들은 백원우가 고 백재영 수사관에게 김기현 울산 시장의 비위를 수집하게 하고, 나아가 울산에 백재영을 내려보내 하명 수사를 점검하게 했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백재영이 백원우 별동대 역할을 했다고 친검 언론에 속삭였고 친검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전파했다.
백재영의 비극적 죽음으로 나는 울산 사건 기소를 면했지만, 백원우는 결국 기소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윤석열 패거리들은 2019년 8~10월 조국을 메이드(구속)하는데 실패한 분풀이로 캐비닛에 있던 이른바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꺼내어 조국을 구속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끝에 조국·백원우·박형철을 기소하였다. 이로써 백원우는 두 건에서 피고인 신세가 되었다.
울산 사건은 다행히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유재수 사건은 윤석열 내란 국면이 한창이던 2024년 12월 12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 10월형이 확정되었고, 백원우는 그다음날 서울남부교도소에 입감됐다.(백원우는 2025년 8월 광복절에 사면·복권됐다)
고 제정구에게서 사사(師事)한 정치의 소임에 대한 초심과 김대중 대통령 이래 계속되고 있는 민주 정부의 맥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민주 정부의 탄생을 도모하는 일에 늘 진심이었던 백원우가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민정 권력을 대하는 세상의 이중적인 잣대와 시선을 뼈아프게 절감했다. 그리고 환갑을 목전에 둔 그가 다시 수감자가 된 것이 너무나도 가슴아팠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민정수석실 재직 시절은 내게 찬란한 영광과 함께 뼈아픈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친인척 관리는 더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친인척 비리가 없는 최초의 정부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위의 취업 건이 있으나, 이는 부정이나 범법과 전혀 무관하다(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내가 변호인으로 참여하고 있어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친인척 비위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민정비서관실에서 친인척 관리 업무를 맡은 여러 공직자들의 그야말로 헌신적인 업무 수행과 틈만 나면 찾아오는 친인척팀원들의 애원과 반협박조의 언사를 결국은 수긍해 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친인척 분들의 남모를 희생 덕분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 친인척이면 온갖 권세와 이익을 누리는 줄 알지만 정반대다. 이 과정을 직접 겪어 알고 있는 나로서는 대통령이라는 우아한 백조 밑의 무수한 발갈퀴들의 처절한 희생이 눈물겹다.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되는 모함과 음해를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그럼에도 민정으로부터 자제와 희생을 요구받았던 문준용·문다혜 두 사람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민정수석실에 필요한 내부 통제
대통령 권력에서 민정수석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민정수석실은 너무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청와대 권력은 외부 통제가 쉽지 않다(문재인 정부에서 특별감찰관 임명이 이뤄지지 못한 점은 성찰할 대목이나 그 연유에 관해서는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내부 통제가 그 어느 권력보다 중요하다. 이때 내부 통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백원우와 같은 자기 통제다. 조국 수석 이래 김조원, 김종호, 신현수, 김진국, 김영식 등 역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들은 모두 민정 권력의 남용에 각별한 문제 의식을 가졌다.
누구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권력의 남용을 극도로 경계한 분이다. 그런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이 윤석열 패거리들로부터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재영 수사관이 유명을 달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소되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이 씁쓸한 아이러니도 결국은 나를 비롯한 문재인 정부에 몸담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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