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5 11:54최종 업데이트 26.04.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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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저희 비행기는 지금 이즈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지금 벚꽃이 만개했다고 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내 방송에 맞춰 창밖을 바라보니 활주로 넘어 연분홍 풍경이 펼쳐진다. 시마네(島根)현 이즈모 공항까지는 동경 하네다 공항에서 한 시간쯤 걸린다. 일본 본토 서쪽에 위치한 시마네현은 인구 65만 명 규모의 현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현이다.

이곳은 '신화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인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신사는 '인연의 신'을 섬기는데, 매년 음력 10월이면 전국의 신들이 이 곳에 모여 사람들의 인연을 잇는 회의를 한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이 시기를 시마네에서는 신유월(神有月), 다른 지역에서는 신무월(神無月)로 부르는 전통이 남아 있다.

"시마네에 그런 곳이 있었어?" 시어머니의 의아함

시마네현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의 전경위키피디아

이 같은 신화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시마네는 일본 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다. 교통이 불편해 관광 산업 개발에도 한계가 있고, 대도시와 접근성이 나빠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도시로 빠져나간다. 때문에 지방 소멸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현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시마네가 지역 부흥을 위해 독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독도를 통해 일본은 물론 국제 사회의 관심까지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한 움직임도 중앙 정부가 아닌 시마네현에서 시작됐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독도. 돌아오라 섬과 바다'라는 거대한 간판이 서 있었다. 공항에서 차로 30분쯤 남편의 고향집에 가는 길 곳곳에서, 비슷한 간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독도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마네 곳곳에 설치된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라 부르는 독도 관련 홍보 시설시마네현청 홈페이지

저녁 식사 시간, 내일 일정을 물으시는 시어머니께 "다케시마 자료실에 좀 다녀오겠다"라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으신다. "시마네에 그런 곳이 있었어?"

자연스레 대화 주제가 독도로 옮겨갔다. 시어머니의 친척들은 대대로 어업에 종사했었는데, 독도 근처 바다는 멀기도 하고 한국 땅이라 여겨 잘 가지 않았다며 "시마네 사람들 대부분 독도에 관심도 없어. 관광객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뭐..."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다음 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아이들과 함께 '다케시마 자료실'을 찾았다. 시마네의 대표적 관광지인 마쓰에성(松江城)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현립 박물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라 한다. 작은 박물관을 상상하며 찾아갔는데, 말이 '자료실'이지 회의실 몇 개를 붙여 만든 것 같은 협소한 공간이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자료실을 찾은 사람은 나와 아이들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석에 앉아있던 젊은 남성 직원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 사람들은 여권 검사를 한다거나 한국어를 쓰면 안 된다는 등의 방문객 리뷰를 읽었던 터라 괜히 의식이 됐다. 그러나 아이들이 함께라 그런지 직원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실을 둘러봤다. 전시물은 대부분 문서 자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 고문서들의 사진과 함께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이 쓰인 패널을 지나자, 나지막한 책장을 둔 공간이 나타났다. 책장에는 일본어로 된 학술지, 고문서들이 꽂혀 있었다. 무슨 용도에서인지 독도를 다룬 한국어 서적들도 몇 권 꽂혀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나의 인사

다케시마 자료실 입구박은영

가장 눈에 띄는 곳에는 한국어 엽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치원 여자 중학교 학생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 주장하며 보내온 엽서'라 쓰여있다. 엽서 옆에는 '다케시마 문제 연구원' 좌장이라는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씨가 해당 학교로 보냈다는 답장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A4 사이즈 2페이지 분량의 편지였고, 일본어 원본과 한국어 번역본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시모조씨는 해당 편지에서 "한국 측이 독도를 한국 땅이라 말하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에게 "타인의 의견에 맹종하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해 생각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자못 훈계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답장은 "문헌 비판에 대한 성과나 보고를 엽서나 편지로 또 보내달라"로 끝맺고 있었다.

엽서 바로 뒤 공간에는 시마네현의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의 '독도 체험관'을 방문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 측 주장을 공부할 목적의 '수학(修學)여행'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한국이 얼마나 열심히 독도 교육을 하고 있는지" 보고, "일본 외의 해외 방문객들을 의식한 전시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러 갔다"라고 적혀 있다.

학생들의 감상도 첨부돼 있었는데 "근현대 자료는 적고, 고지도와 일본 정부의 지령 등에 관해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었다", "일본보다 예산이 넉넉한 것처럼 보여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의 독도 교육에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의견 등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감상문을 읽고 있자니, 글자밖에 없는 전시가 지루한지 아이들이 그만 나가자고 성화다. 담당 직원은 "다음에 또 오라"며 아이들에게 기념품을 건넸다. 한때 독도에 서식했던, 일본인들의 과도한 포획으로 멸종한 바다사자가 그려진 스티커, 독도까지는 시마네에서 158km라 적힌 자석, '다케시마는 시마네의 보물, 우리 영토입니다'라고 적힌 볼펜 등이었다.

다케시마 자료관의 이모저모박은영

'시마네의 보물'. 과연 그럴까? 시마네 사람들은 정말 독도를 자신들의 보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까?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자료실을 뒤돌아보며,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은 한일 간의 독도 '논쟁'이, 무의미한 '분쟁', 어리석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되기를 기도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자료관을 나섰다. 아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직원에게, 나도 미소 지으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 인사했다. 그는 짐짓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나 역시 마주 보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말갛게 개어있었다. 자료실 입구로 젊은 남성 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방문객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니, 그는 주차장에 만개한 벚나무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돌아 나섰다. 시마네의 보물, '다케시마' 자료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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