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1 11:05최종 업데이트 26.04.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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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과 국회 내 정당 원내대표들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 추진 관련 기자회견에서 각자 서명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 합의 서명부'와 '초당적 헌법개정 추진을 위한 국회 선언문'을 공개하고 있다. 이날 원내 5개 정당 원내대표는 초당적 헌법 개정안 추진에 합의해 서명했다. 지방 일정 중인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는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우원식 의장은 밝혔다. 국민의힘은 헌법개정에 반대해 이날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 우원식 의장, 조국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연합뉴스

국민의힘을 제외한 6개 정당과 우원식 국회의장이 6·3 개헌 국민투표를 목표로 마련한 개헌안은 '민(民)의 신장'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현행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첫 구절로 시작한다. 이번 개헌안에서는 이 부분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수정됐다.

'4·19혁명'는 헌법이 아닌 법률상의 용어다. 현행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제4조 등에 "4·19혁명" 문구가 있다. 이번 개헌이 성사되면, 이 용어는 헌법상의 용어로 격상된다.

역대 헌법에서 '혁명'으로 규정된 사건은 단 하나, 1963년·1969년·1972년 헌법의 "5·16혁명"뿐이다. 세 시점의 헌법은 "4·19의거와 5·16혁명"(1963년·1969년), "4·19의거 및 5·16혁명"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군사정변인 5·16보다도 못한 의미를 4·19에 부여했다.

이번 개헌안은 이승만과 자유당을 무너트린 4·19의 역사적 의미를 한층 고양시킨다. 민중이 주도한 사건에 그처럼 높은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번 안은 '민의 신장'을 반영한다.

부마항쟁과 5·18항쟁을 넣은 것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을 무너트린 결정적 사건이지만 그간 10·26사태에 가려 있었던 부마항쟁과, 1980년 이후의 민주화운동을 추동한 5·18이 전문에 들어감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의 맥락이 헌법 전문 안에서 좀 더 명확해지게 됐다.

그런데 5·18을 계기로 한층 성숙해진 한국 민주화운동이 구체적 성과를 얻도록 만든 것은 1987년 6월항쟁이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4·19와 더불어 6월항쟁의 승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6월항쟁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이번 개헌안의 한계다.

한편, 부마항쟁과 5·18의 추가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헌법 전문에 간접적으로 '출연'시킨다. 현행 헌법 전문에 있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이라는 대목에서 '불의'라는 표현은 이승만 정권과 그들의 부조리를 지칭한다. 이번 개헌안은 이 부분을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바꾸었다. 그래서 문맥상 박정희·전두환도 '불의'에 포함된다.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3대 악당을 한 데 묶은 셈이다.

불법적 계엄선포 가능성 견제

우원식 국회의장이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 비상계엄은 꿈도 못 꾸는 개헌'으로 개헌의 문을 열자"고 제안하고 있다.남소연

이번 개헌안의 헌법 전문이 '민의 신장'을 성취한 구체적 사건들을 부각시킨다면, 이번 안의 본문은 '민의 신장'을 저해하는 요인을 억제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불법적 계엄선포가 일어날 가능성을 견제하는 부분이 추가됐다.

현행 헌법 제77조 제4항은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했고, 제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해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이런 문제점을 이번 안은 이렇게 처리한다.

제4항: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이 부결되거나 계엄을 선포한 때부터 48시간이 될 때까지 승인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때에는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제5항: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의결한 때에는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이를 따르지 않더라도 계엄이 즉시 해제된다. 굳이 해제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계엄선포 48시간 뒤에 자동적으로 계엄이 무효화된다. 48시간 내에 국회 승인이 없으면 계엄군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날 소지를 만들어둔 것이다.

독재정권들은 계엄을 선포할 때마다 국회 무력화 방안을 궁리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5월 2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계엄을 선포한 이승만 정권은 다음날 임시의사당에 등원하던 야당 의원 47명을 통근버스에 태운 채로 견인해 헌병대로 연행했다(부산정치파동). 유신체제를 선포한 19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과 국회해산 조치를 단행했다.

1980년 5월 17일에 '비상계엄 확대조치' 명목으로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는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권은 계엄포고 제1호의 제1조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엄포를 놨다.

이번 개헌안은 불법 계엄을 시도하는 세력이 국회 문을 닫기 힘들게 만들었다. 48시간 내에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무효가 되므로, 국회를 해산하거나 봉쇄하기보다는 국회를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국회 승인에 필요한 의사정족수 및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계엄군이 의원들을 모시러 다닐 수도 있다. 그래서 계엄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국회 담장을 넘어가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지만, 국회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는 방법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헌법 규정을 아예 무시해 버릴 정도의 초고강도 권력을 가진 정권이 출현한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같은 곤란한 절차 때문에도 불법 계엄을 함부로 시도하기 힘들게 된다. 야당도 공감할 만한 명백한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번 개헌안이 만들어놓은 시스템하에서는 계엄 카드를 쉽게 꺼내 들기 어렵다.

지역 균형발전에 관한 국가의 책무 상세히 규정

'민의 신장'을 확인시키는 역사적 사건들의 부각, 민의 신장을 저해하는 장애 요소의 제거와 더불어, 이번 개헌안의 제123조 제2항이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조문은 '민의 신장'이 서울 등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균형 있게 발현되도록 돕는다.

현행 헌법 제123조 제2항은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이것이 개헌안에서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삶의 질과 기회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역의 경제를 육성하고 생활기반을 구축하여 지역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할 의무를 진다"로 바뀌었다.

개헌안 역시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지역 균형발전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한층 상세히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래서 국민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균형발전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한층 강력해지게 됐다.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고 있는 한국 국민의 정치적 에너지가 전국 곳곳에 더 강하게 스며들 수 있게 만드는 개헌안이다.

이번 개헌안은 이처럼 많은 의미를 띠고 있지만, 아직은 불충분하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두환 정권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대통령 임기 5년제 같은 것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6월항쟁 직후의 개헌 과정에서 4년제를 주장하는 야당에 맞서 집권 민정당은 6년제를 주장해 결국 5년으로 낙착되게 만들었다. 임기를 4년으로 하면, 동지이자 라이벌인 김대중과 김영삼 중 하나가 4년 뒤를 내다보고 단일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6년으로 길게 해놓으면 그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낙연 기자가 쓴 그해 7월 13일 자 <동아일보>는 "임기를 6년으로 함으로써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좀더 어렵게 하려는 계산도 하고 있지 않나 추측된다"고 분석했다. 당시에는 의의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가 40년 가까이 헌법에 남아 있다.

이번 개헌안에서는 최근의 검찰 개혁과 충돌되는 부분들도 반영되지 않았다. 검찰 개혁의 결과로 검찰청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게 됐지만, 개헌안은 검찰총장이라는 명칭을 지우지 못했다. 이번 개헌 작업은 또 다른 개헌의 시동을 거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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