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02 06:34최종 업데이트 26.04.0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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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식물원 열대 온실베를린 식물원 열대 온실. 모두 15동의 온실이 연계되어 있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정희

베를린에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이제 서울과의 시차는 일곱 시간으로 줄었다. 아직 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지 못하고 있는데 서머타임이라니 가소롭지만,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나무엔 고운 연두색으로 물이 오르고, 잔디밭에선 수선화와 크로커스가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다. 베를린 식물원에 가야 할 때다.

정기권 보유자인 나는 베를린 식물원을 마치 내 정원처럼 여기며 수시로 드나든다. 햇살이 화사한 날이면 "정원사들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지 한번 가 볼까?"라는 농담을 던지며 식물원으로 향할 때가 많다. 그동안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고, 눈 감고도 길을 잃지 않을 만큼 동선도 외워 버렸다.

아직은 날이 추워서 걷다가 추워지면 열대 식물관으로 피해 들어갔다. 사우나처럼 훅하고 끼쳐오는 습한 열기, 흙과 식물이 빚어내는 묘한 향은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그 옆 빅토리아관의 대왕 수련과 파란 수련을 보려던 나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보수공사 중이란다. 또!? 무려 5년간 보수 끝에 다시 문을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베를린이 왜 이럴까.

투덜대다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에서 서식하는 대왕 수련을 베를린에서 못 보게 되었다고 실망하는 나는 1850년대 이 진귀한 식물을 아마존에서 유럽으로 끌고 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였던 식물학자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한겨울에 신선한 오이와 샐러드가 없으면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나는 지금까지 이곳 베를린 식물원을 애정 어린 눈으로만 봐 왔다. 아름다운 식물, 조용한 산책, 공부와 사색의 장소. 전 세계의 식물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았고 열대 식물관에 서 있는 키 30미터가 넘는 바나나 나무를 신기해했다. 열대 유용식물관에서 커피나무를 발견하곤 흥분했었다. 빅토리아관에서 지름 2미터짜리 수련잎의 기적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커피나무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를 보려면 식물원 열대유용식물관에 가야 한다.고정희

남미의 아마존에서 서식하는 이 진귀한 식물이 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얻어 가졌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긴 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물학자, 식물수집가들이 식민지에서 무수한 식물을 수집해서 유럽으로 가지고 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것도 그런가 보다 했다. 덕분에 남반구 식물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마워했다. 식물을 수집해 온 것이 식물에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요즘 유럽 각지의 식물원들이 다투어 반성문을 발표하고 있다. 세상 착한 곳이 식물원 아닌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실은 제국주의 시대에 저질렀던 '식민 식물학과 식물 경제'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식물원의 반성문을 보면 크게 두 가지 핵심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우선 식물의 이름, 즉 라틴어로 표기되는 학명이다. 빅토리아 수련처럼 엉뚱한 이름이 붙은 식물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탈식민주의 명명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다음 경제작물이다. 식물원은 경제작물을 직접 생산하는 곳은 아니지만 식민지에서 가져온 각종 식물의 경제성을 검토하고 재배·번식 방법을 실험해서 종자 혹은 어린 묘를 만들어, 식민지로 다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식민지로 다시 보낸 까닭은 그곳의 유리한 기후 조건에서 대량 생산하여 상품화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물원에선 전문가를 딸려 보내 재배법을 지도하고 생산을 감독했으며 틈틈이 다른 식물을 채집해서 본국으로 보내는 순환이 반복되었다.

식물 이름에 담겨 있는 '약탈의 역사'

빅토리아 수련Victoria amazonas베를린 식물원 열대식물관 중 아마존의 대형 수련을 위한 전용 온실.고정희

빅토리아 수련에 머물자면, 원래 아마존의 주인 원주민들이 수천 년간 불러온 '이루페' 내지는 '아이아포페' 같은 예쁜 이름이 있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어느 식물학자가 여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봉헌한 것이다. 지배자와 정복자의 권위와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투영한 것이기에, 식물과 현지 생태계에서 오래 공존해 온 원주민들의 언어를 되찾아줌으로써 식물학의 윤리적 회복을 꾀하려는 것이다. 그저 이름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서구 과학이 자행했던 지식의 전유와 문화적 차별을 극복하려는 시도다. 또한 서구식 명명법은 학문적 약탈이었음을 인정한다는 성찰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식물에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를 금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특정 식물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래서 상당수의 식물 학명에 '백인 남성 정복자'의 이름이 붙어 있다. 최초로 '발견'했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희박한 제국적 오만에 속한다.

결이 좀 다르지만 식물원에서 아직도 '일장기'가 박혀 있는 우리 자생 식물을 자주 만난다. 기분이 상하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식물원에 아주 어여쁜 명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름표에는 일본이 원산지임을 암시하는 'japonica(자포니카)'라고 쓰여 있다. 서구 학자들이 1834년에 처음으로 '발견'했다는데 정확히 어디서 발견했다는 건지 유추가 불가능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서식하는 식물인 경우 일본으로 뭉뚱그려진다. 일일이 문제 삼기보다는 명명법 자체를 개선하는 편이 옳아 보인다.

식물을 발견했다는 '주장'

베를린의 명자나무명자나무라는 다정한 이름을 놔두고 이름표엔 아직도 japonica라는 종명이 박혀있다.고정희

식물을 누구누구가 최초로 발견했다는 주장은, 유럽인의 눈에 띄기 전까지 그 식물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겠다는 뜻이다. 유럽이 아닌 곳은 '지적 공백지'로 여기는 유럽 중심의 사고체계에서 나온 논리다. 그리고 그걸 지금 뒤늦게 반성하는 것이다.

식물학자들이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서 식물을 '발견'하려면 원주민들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원주민들은 이미 그 식물을 식량으로 쓰거나, 약으로 달여 마시거나, 신화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수천 년을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유럽의 학술지에 발표되는 순간, 원주민들의 오랜 지식은 미신으로 전락한다. 고상한 라틴어로 이름을 붙인 학자가 최초의 발견자라는 영예를 차지하고 그 식물의 본명은 사라진다. 이 관행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라틴어로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사고방식은 식물 역시 유럽 중심의 지식 체계 안에 편입시켜 그들의 '자산'으로 만든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식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충만했던 생명과 그에 얽힌 원주민들의 문명을 가로챈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801년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핸케라는 식물학자가 아마존에서 마주한 커다란 수련은 새로운 식물이 아니라, 유럽의 분류 체계가 미처 정복하지 못한 낯선 주권이었을 뿐이다. 타데우스 핸케도 운이 없었는지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같은 식물을 '발견'한 후배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2023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특집 기사로 다루었는데 그 반향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상들의 흑역사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후대의 학자들은 2024년 국제식물학회를 열어 긴하게 논의했다. 예를 들어 과거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았던 식물의 종명 중에 카프라(caffra)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모두 아프라(affra)로 바꾸기로 했다. 카프라와 아프라는 한 끗 차이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다. 카프라는 과거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욕할 때 썼던 말이라고 한다. 약 200~300종의 식물이 이에 해당한다. 올해 2026년 국제위원회를 조직해서 순차적으로 수정해 나갈 계획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 플로이드 총격 사건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든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식민주의에 가장 앞장섰던 영국이 지금 탈식민주의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다. 솔직히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영국의 왕립식물원 큐가든에서는 '탈식민 식물학'에서도 앞장섰다. 큐가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식물 수도를 지향했던 베를린은 뒷북을 치며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대체 식물원이 식민지에서 식물을 싹쓸이해서 가져왔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냐고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많다. 식물의 이름 같은 경우 상아탑의 학자들에게나 심각한 문제이지 어차피 학명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경제작물이다. 식민 경제에서 핵심을 차지했던 것이 경제작물이었고 그 일을 담당했던 것이 각국의 국립식물원이었다.

경제작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야 할 것 같다. 긴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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