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명자나무명자나무라는 다정한 이름을 놔두고 이름표엔 아직도 japonica라는 종명이 박혀있다.
고정희
식물을 누구누구가 최초로 발견했다는 주장은, 유럽인의 눈에 띄기 전까지 그 식물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겠다는 뜻이다. 유럽이 아닌 곳은 '지적 공백지'로 여기는 유럽 중심의 사고체계에서 나온 논리다. 그리고 그걸 지금 뒤늦게 반성하는 것이다.
식물학자들이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서 식물을 '발견'하려면 원주민들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원주민들은 이미 그 식물을 식량으로 쓰거나, 약으로 달여 마시거나, 신화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수천 년을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유럽의 학술지에 발표되는 순간, 원주민들의 오랜 지식은 미신으로 전락한다. 고상한 라틴어로 이름을 붙인 학자가 최초의 발견자라는 영예를 차지하고 그 식물의 본명은 사라진다. 이 관행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라틴어로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사고방식은 식물 역시 유럽 중심의 지식 체계 안에 편입시켜 그들의 '자산'으로 만든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식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충만했던 생명과 그에 얽힌 원주민들의 문명을 가로챈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801년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핸케라는 식물학자가 아마존에서 마주한 커다란 수련은 새로운 식물이 아니라, 유럽의 분류 체계가 미처 정복하지 못한 낯선 주권이었을 뿐이다. 타데우스 핸케도 운이 없었는지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같은 식물을 '발견'한 후배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2023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특집 기사로 다루었는데 그 반향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상들의 흑역사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후대의 학자들은 2024년 국제식물학회를 열어 긴하게 논의했다. 예를 들어 과거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았던 식물의 종명 중에 카프라(caffra)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모두 아프라(affra)로 바꾸기로 했다. 카프라와 아프라는 한 끗 차이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다. 카프라는 과거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욕할 때 썼던 말이라고 한다. 약 200~300종의 식물이 이에 해당한다. 올해 2026년 국제위원회를 조직해서 순차적으로 수정해 나갈 계획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 플로이드 총격 사건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든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식민주의에 가장 앞장섰던 영국이 지금 탈식민주의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다. 솔직히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영국의 왕립식물원 큐가든에서는 '탈식민 식물학'에서도 앞장섰다. 큐가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식물 수도를 지향했던 베를린은 뒷북을 치며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대체 식물원이 식민지에서 식물을 싹쓸이해서 가져왔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냐고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많다. 식물의 이름 같은 경우 상아탑의 학자들에게나 심각한 문제이지 어차피 학명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경제작물이다. 식민 경제에서 핵심을 차지했던 것이 경제작물이었고 그 일을 담당했던 것이 각국의 국립식물원이었다.
경제작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야 할 것 같다. 긴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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