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급을 받은 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유가 충격과 물가 압박,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KBS 유튜브 갈무리
중동의 불길은 한국에도 청구서를 보냈다
서울에서 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생계·존엄을 지탱하는 지속가능한 '인간의 안전보장'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공급의 불안, 인도주의 질서의 붕괴, 동맹 구조의 재편이 동시에 밀려오는 이 복합 충격 앞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라, 충격을 학습과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는 전환적 회복력이다. 그 출발점은 네 가지 현실을 직시하는 데 있다.
첫째는 에너지다. 2025년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은 하루 195만 배럴 수준이었고, 전체 원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한 비중은 69.9%였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이 수치가 보여주듯 유가 충격과 물가 압박, 무역수지 악화로 직결된다. 3월 들어 한국은 유가 급등에 대응해 UAE산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추가 도입했고,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가격 상한 조치를 병행했다. 중동 위기가 더 이상 외교 뉴스가 아니라 국민 생활과 산업비용, 무역수지에 직결되는 경제안보 사안임이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둘째는 충격의 전파 속도다. 신용평가회사인 S&P 글로벌은 이번 중동 전쟁이 한국 정유업계의 단기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원유 공급 차질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정유사들이 본격적인 신용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유시설의 상당 부분이 고유황 중동산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어 단기간 대체가 어렵다는 점이 구조적 약점이다. 화학 원료 가격도 요동친다. S&P에 따르면 동남아 메탄올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3월 20일까지 72% 급등해 2023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발 충격은 원유뿐 아니라 석유화학·물류·제조원가 전반으로 번지는 다층적 위기로 심화하고 있다.
셋째는 안보다. 미국의 2026 국방전략은 동맹에 대해 더 제한적인 직접 지원과 더 큰 자구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는 여전히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 동맹이 모든 공백을 메워 줄 것이라는 사고는 점점 더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략 자산과 정책적 관심이 중동 전선으로 집중되는 국면이 길어질수록, 한국이 작전 지속 능력과 자주적 억제력, 공급망 방어 역량을 더 빠르게 확충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진다.
넷째는 인도주의 질서의 붕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3월 초 긴급 업데이트를 통해, 최근 중동·서남아의 적대행위로 33만 명 이상이 새로 강제 이주했으며, 이 지역에는 이미 2460만 명의 강제이주민과 귀환민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유엔 브리핑에 따르면 3월 12일 기준 아프가니스탄·이란·레바논·파키스탄에서 410만 명 이상이 국내 실향 상태에 놓였고 약 11만 7천 명이 국경을 넘었다.
전쟁은 언제나 미사일보다 먼저 사회의 약한 연결고리를 끊어 놓는다. 중동의 불안정은 이미 취약했던 난민·이주 질서 위에 새로운 균열을 덧씌우고 있으며, 이 인도주의적 충격은 지역을 넘어 국제질서 전반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중동의 불길은 더 이상 지역분쟁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 수송로와 동맹체계, 금융시장과 공급망을 동시에 흔드는 복합위기로 전개 중이다.
셔터스톡
관전자로 머물 시간이 없다
한국의 선택은 단순한 찬반이나 거리두기가 아니다. 중동 분쟁에 직접 연루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 안보·해상교통로 안정·공급망 방어·동맹 조정이라는 네 개의 과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중동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중동발 충격을 관리하는 국가전략이다.
그 전략은 세 방향을 포함해야 한다. 중동산 원유 의존의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조달선 다변화와 전략비축 운용을 정교화해야 하고, 해상교통로 위기 시 민간경제 충격을 최소화할 비상 공급 계획을 상시화해야 하며,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 능력을 병행 강화해야 한다.
방산 수출 확대를 외교적 영향력 확대와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무기를 파는 것과 지역 질서 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방산 수출을 외교·안보 전략과 연결해 한국이 단순한 무기 공급자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안보 파트너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의 기름값과 정유산업, 해상물류, 동맹 구조, 한반도 억지력의 문제로 한꺼번에 이어지는 현실 앞에서, 외교와 안보를 따로 설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21세기의 패권은 더 이상 영토 점령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길목을 관리하고, 동맹의 비용을 분담시키며, 지역전쟁의 충격을 금융과 물류, 난민과 공급망의 형태로 세계 전체에 분산시키는 능력이 곧 새로운 패권이 되고 있다.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긴장이 한반도의 전략 계산법을 바꾸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패권 재편의 파고는 이미 동아시아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 안보·방산 경쟁력·동맹 조정·전략적 자율성을 한 묶음으로 설계하는, 냉정하고 능동적인 국방외교의 재건이다. 중동의 불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서울의 물가와 산업, 안보와 외교의 문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김영근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본인
필자 소개 :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했습니다.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