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의 모습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개회사를 하고 다시 사인회 부스에 돌아와 앉았다. 경연은 시작되었다. 첫 경연이 끝나자 참가자 이름표를 단 한 젊은이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예선을 통과한 표정이었는데 하는 말은 의외였다. "교수님, 저 탈락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이고, 열심히 했을 텐데, 아쉽겠네요."
그러자 이 청년은 대뜸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사실 저는 대회 참가를 신청하고, 어떻게 하면 상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연습했지만, 제가 만족할 만큼 노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 받을 걸 기대했던 겁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는 순간 오늘 상을 못 받는 거는 당연하고, 그게 나에게 약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노력 안 하고 받는 상은 독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명함 하나 주세요. 꼭 멋진 바리스타가 되어 연락드리겠습니다. 커피계의 조용필이 될 겁니다."
그 청년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나의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떠났다. 나는 책에 이렇게 사인을 했다. "오늘 우승자는 당신입니다. 오늘의 실패가 당신을 키울 것입니다." 오늘 그의 실패는 '좋은 실패'였고, 그 실패가 '나쁜 성공'보다 낫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에 만났을 때 기억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날은 마침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세계유산 조선왕릉축전'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오후 세 시에 남양주 홍유릉에서 '커피로 읽는 고종 시대' 강연을 하기 위해 점심을 서둘러 먹고 서울로 향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릉, 순종과 두 황후의 유릉, 그리고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의친왕과 의친왕비,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대부분 묻혀있는 곳이다. 원래의 홍릉은 청량리 근처에 있었다. 지금 홍릉수목원 자리다. 이곳에 있던 명성황후의 능이 1919년 고종 서거 후 이곳으로 옮겨져 합장되었다.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황제, 그는 무슨 생각으로 커피를 마셨을까? 서양인들과의 친교를 위해? 스러져 가는 나라 운명 앞에서 느끼는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커피가 주는 각성 효과에 기대어 나라를 살리는 지혜를 찾으려고? 아니면 그냥 커피의 맛과 향이 좋아서? 황제는 커피를 좋아했지만, 커피를 좋아한 이유나 커피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적은 없다. 강연을 마치고 홍릉을 산책하며 고종의 실패를 곱씹어봤다. 개인의 실패는 극복도, 망각도 쉽지만, 지도자의 실패는 그렇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커피를 좋아했던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과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지만 1863년부터 1865년까지 2년 정도 같은 시대에 두 나라의 지도자였다. 요즘이었다면 고종과 링컨은 정상 회담을 했을 것이고, 아마도 함께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은 나라의 멸망을 막지 못한 무능한 지도자로, 다른 한 사람은 나라의 분단을 막은 유능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이날 나는 두 공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국가유산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홍유릉, 그리고 서해의 작은 섬 선재도에 있는 뻘다방이다. 홍유릉에서의 시간은 실패한 지도자가 마신 커피 생각에 슬픔과 우울함으로 가득했다면, 뻘다방에서의 시간은 실패를 딛고 탄생할 커피계의 조용필 생각에 보람과 희망으로 채워졌다.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날 경연에서 탈락한 분들이 실패를 딛고 '커피계의 조용필'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운 좋게 이룬 성공보다 열정적인 실패가 아름답다고 확신한 날이었다. 꽃피는 아름다운 봄날 3모 등급이 낮다고 지나치게 슬퍼할 일은 아니다.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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