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이 발언하는 모습
피렌체의식탁
김현종= 이 대목에서 정치 원로, 정대철 헌정회장님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박지원= 정대철 회장은 원래 확고한 개헌론자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우원식 의장의 개헌안에 대해 논의할 때도 깊이 관여하셨던 분이죠.
김현종= 정 회장님, 우원식 의장의 개헌론에 대해 헌정회장님이자 정치 원로로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이하 정대철)= 개헌은 당연히 해야 하죠. 그런데 개헌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나 우원식 의장은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습니다.
김현종= 그렇습니다.
정대철= 다만 문제는 너무 쉬운 것만 하겠다는 겁니다. 헌법 전문만 고쳐서 5.18 등을 넣고,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권력 구조 개편'은 뒤로 미뤘어요. 대통령제 중심의 헌법을 내각 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총리제, 양원제 등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쉬운 것부터 하자"고 하니 걱정입니다. 뜻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핵심을 안 한 거나 마찬가지로 돼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김현종= 아, 그러니까 연습 게임만 하지 말고 바로 본 게임으로 들어가자는 말씀이군요.
정대철= 1987년 이후 거의 40년 가까이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이제는 정말 헌법을 고칠 때가 되었습니다. 세월도 변했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죠. 역대 대통령 8명이 공약해 놓고도 아무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요.
김현종= 안 그래도 방금 박지원 의원님이 역대 대통령들이 약속만 하고 안 지킨 역사를 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정대철= 그러니 이번에 할 때는 국민이 보기에 "맞아, 저 방향으로 가야 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고쳐야 합니다. 문을 연다는 의미에서 전문만 고친다? 우리나라처럼 경성헌법 체제에서 국민투표까지 거치는 개헌은 한번 시작했다고 다음에 또 연속해서,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고칠 때 국민이 바라는 근원적인 부분(권력 구조)을 확실히 건드려야 합니다.
박지원= 정 회장님, 엊그제 김덕룡 이사장(김영삼민주센터)을 만났는데 정 회장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의장이 개헌했다는 생색만 내고 정작 후속 조치인 권력 구조 개편은 넘어갈 것 아니냐"라는 우려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개헌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서, 일에는 '선이후난(先易後難= 쉬운 것부터 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함)'이 필요합니다. 우원식 의장이 국회에서 복잡했던 국민투표법을 아주 간소화시켰습니다. 1차로 지방선거 때 계엄, 지방분권, 전문 수록 등 합의된 사안들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2차로 가장 난제인 '권력 구조 개편'을 충분히 숙의하여 다음 총선에서 국민투표로 확정하겠다는 확실한 로드맵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정대철= 우리가 여태까지 9번의 헌법 개정을 겪어봤지만, 우리나라의 경성헌법은 고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습니다.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40여 차례나 헌법을 쉽게 고쳤지만, 우리는 국민투표까지 가야 하니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다음번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6월 지방선거에 맞춰 추진하는 개헌안이 현재로선 합의 가능한 최대치라 어쩔 수 없다 하시지만, 연습 게임처럼 해버리면 국민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박지원= 그 충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선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당시 후보)과 우원식 의장이 개헌을 논의할 때 저와 정 회장님도 함께 통화하고 소통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개헌 약속만큼은 지키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적 합의가 쉬운 것부터 먼저 통과시키고, 어려운 권력 구조 문제는 차기 총선에서 적용되도록 하면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다 한 번에 잘되면 제일 좋겠지만요.
이관후= 방금 정대철 헌정회장님께서 개헌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분명한 우려 사항도 제기해 주셨는데요. 아마 이런 우려일 겁니다. "기껏 개헌을 해봤는데 막상 내용이 별거 없네?"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워낙 오랫동안 개헌을 못 했기 때문에, "아, 개헌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필요할 때 합의된 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 저는 그게 오히려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헌 정국'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 때문에 정작 개헌의 내용에는 집중이 안 되고, '개헌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정치적으로 뭘 해보려는 것 아니냐'라는 의심만 키워서 항상 실패했거든요.
주진우= 그동안은 개헌을 그런 식의 승부수로만 던졌잖아요.
이관후= 그러니까 이제부터 개헌은 집수리하듯이, 비가 새면 그때그때 고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선거 때마다 개헌해야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정 회장님 말씀대로 우리나라는 경성헌법이라 한꺼번에 다 뜯어고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그때그때 논의되고 합의된 사항들에 대해서 선거 때마다 개헌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국민도 "개헌 별거 아니네, 그때그때 딱 필요한 걸 바꾸는 거구나" 하고 인식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게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봅니다.
김현종= 개헌에 관해 가장 일반인의 시각을 갖고 계신 우리 '개린이(개헌+어린이)' 주진우 기자님, 어떻게 개헌해야 할까요?
주진우= 저는 방금 처장님의 '리모델링론'에 매우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저는 '헌법은 사회의 근간이 되는 틀이니까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함부로 고치면 안 된다'라는 막연하고 높은 눈높이를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집이 편안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려면 비 새는 곳도 고치고, 그림도 걸고, 창틀도 바꿔야 한다"라는 비유에 설득됐습니다. 그동안 "개헌은 어려운 거야, 국민투표도 해야 해, 대체 누구한테 이익이 되는 거야?" 이런 얘기만 하다가 40년째 한 걸음도 못 나갔잖아요.
권력 구조 개편은 좀 미뤄두더라도, 2단계 개헌론으로 일단 한 발이라도 떼자고 하시는 분들께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과거 국가보안법 때도 독소조항을 없애자고 하니까 "이건 근본적으로 다 들어내야지, 조항 몇 개 바꾼다고 뭘 하겠냐"라고 반대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바꾸고 그 악법이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게 두지 않았습니까. 개헌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첫 발자국을 떼는 게 매우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관후= 제가 조금만 첨언하자면, 지금 이 집(헌법)에서 비가 막 새고 있어서 당장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이 어떤 집인데 감히 손을 대! 다시 지을 거 아니면 건드리지 마!"라고 막아서는 것은 상황에 안 맞는다는 거죠.
주진우= 독일 같은 선진국들도 그렇게 계속 고칩니까?
김현종= 아까 40번 넘게 고쳤다고 했죠?
이관후= 네, 유럽 국가들은 헌법을 자주 고칩니다. 제가 칼럼에도 썼습니다만, 미국은 저희보다 헌법 고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미국은 헌법 개정을 못 해서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죠. 트럼프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니라, 250년 된 헌법을 못 고쳐서 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헌법 고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기대 이하의 지도자가 나오거나 정치가 잘못돼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경성헌법이긴 해도 미국보다는 낫고, 국민투표법도 개정되었으니 필요하면 그때그때 헌법 개정하는 것이 이젠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김현종= 화제를 돌려보죠. 드디어 개헌 국면에서 '정치학자 출신 입법조사처장'과 '담 넘는 우원식 의장' 두 분의 콤비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해 보시니 우원식 의장님은 어떤 분입니까?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들려주시죠.

▲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의 모습
피렌체의식탁
이관후= 아마 가장 밀접하게 접촉했던 시기가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부터 탄핵 판결이 날 때까지의 몇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모들 말을 참 잘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계엄 당일 밤에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의견이 분분할 때, 차분하게 참모들 얘기를 들어주셨습니다. 본인 생각이 확고하더라도 참모의 의견이 합리적이라 판단되면 그걸 따라주시고, 또 결단할 때는 과감하게 결단하십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의결 정족수' 같은 문제는 헌정사상 유례가 없어서 다들 굉장히 곤란해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여러 헌법학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과서를 참고해서 의견을 드렸는데, "이건 내가 책임진다!" 하고 과감하게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충분히 수렴하되, 결단할 때는 과감한 분입니다.
주진우= 비상계엄 때 국회의장 자리에 우원식이 있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든든했고 감사했습니다. "왜 이분이 국회의장을 하고 있을까?" 했는데, 이 위기를 돌파할 정치력과 경험을 가진 분이 그 자리에 계셨던 겁니다. 그 든든한 분이 이제 개헌의 첫 발을 잘 뗐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원= 정치학자 자격으로 계속 듣고 싶네요.(웃음) 우원식 국회의장은 독립지사의 후예로서 굉장한 민족주의자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신봉이 아주 강하신 분입니다. 그 이상 말할 것도 없죠. 다만, 저는 우원식 의장님 말씀 잘 듣다가 피를 봤습니다.
김현종= 언제요? 비상계엄 해제 때요?
박지원= 의장님이 계엄 해제 의결을 하고 정부에 통보한 뒤, "정부에서 해제 통보가 올 때까지 본회의장을 지키십시오" 하셨거든요. 그런데 다들 휴게실로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이 노병은 "나라도 본회의장을 지키자" 하고 끝까지 남았습니다. 6시간을 지키다 보니 피곤해서 누워 있다 잠이 들었는데... 그 사진이 찍혀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관후= 그 사진 보니까 생각나네요. 사실 이번 개헌안에 '불법적 비상계엄을 국회가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간 이유를 제가 그때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국회가 그날 새벽 1시에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잖아요? 우리는 그 순간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고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제가 된 건 새벽 4시가 넘어서였어요. 2시, 3시가 지나도 계속...
주진우= 대통령실에서 도장을 안 찍어주니까!
이관후= 그날(12월 3일) 국회 인근 둔치 주차장에 있던 군인들이 해산을 안 하는 거예요. 저도 그 안에 있었지만, 아마 안에 있던 분들 대부분 그 생각 하셨을 겁니다. 과거 광주(5.18)에서도 계엄군이 들어왔다가 시민들 저항이 거세니까 잠시 물러난 뒤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정말 실탄을 분배해서 다시 들어오는 것 아니냐,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냐?" 그래서 저희 참모진끼리 "의장님부터 빨리 피신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우원식 의장님이 그러시더군요. "한 사람은 남아 있어야지. 의원들이나 당신들은 다 빨리 나가게 하고, 그래도 국회의장은 여기서 잡혀야 하지 않겠어?"
주진우= (농담) 아니, 박지원 의원님 계시잖아요. 꿀잠 주무시고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는데... 물론 아무것도 모르신 게 아니라, 국회의장을 지키려고 하신 거죠! (웃음) 우원식 의장님은 의장실에, 본회의장엔 박지원 의원님이, 그리고 그 바깥 계엄군 앞에는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이관후= 그날 밤의 공포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번 개헌안에 "국회가 의결하면 국무회의를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계엄이 해제되는 것으로 한다"라는 조항을 왜 그렇게 절박하게 넣었는지 말이죠. 직접 경험해 보시면 압니다.
김현종= 아, 이관후 처장님 말씀 들으면서 그 느낌이 팍 오네요.
박지원= 평소 개헌론자인 김덕룡 민추협 전 이사장이나 정대철 헌정회장 등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 뵈면, 단박에 쇠뿔을 뺄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다 하려다간 '교각살우(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임)'가 됩니다. 그래서 1차 개헌(부분 개헌)을 경유해서 가는 겁니다.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 두 지도자가 합의한 이 개헌안을 먼저 1차로 통과시키고, 두 번째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대로 권력 구조를 바꿔야 온전한 개헌이 됩니다. 당장 권력 구조까지 바꾸는 전면 개헌을 밀어붙이면 또 물 건너갑니다.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현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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