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5 18:44최종 업데이트 26.03.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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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불혹을 앞두고 '리모델링' 수술대에 오른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불법 비상계엄 원천 차단,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지방분권 강화 등 3대 과제를 중심으로 한 '1차 부분 개헌론'을 띄우면서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거대한 '재건축'에 매몰돼 빈번히 좌초됐던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적 합의가 끝난 현안부터 우선 처리하자는 구상이다.

25일 메디치미디어 유튜브 '박지원의 식탁'에서는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의 진행으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관후 국회 입법조사처장,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모여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단계적 개헌론'의 현실적 로드맵을 짚었다. 합의가 쉬운 '불법 비상계엄 방지, 5.18 헌법 전문 수록, 지방분권'부터 당장 내년 6월에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에 대한 정대철 헌정회장의 묵직한 쓴소리와, 불법 비상계엄의 공포를 직접 겪은 이들의 긴박했던 뒷이야기를 대담으로 전한다.

왼쪽부터 주진우 기자, 이관후 입법조사처장, 박지원 국회의원,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의 모습피렌체의식탁

김현종(메디치미디어 대표, 이하 김현종)= 오늘은 우원식 의장님의 개헌안과 개헌이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 이야기 좀 들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우원식 국회의장께서 '세 가지 조건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대통령도 호응하셨는데요. 개헌이 정말 되는 건지, 내용은 어떤 건지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처장님, 개헌은 왜 해야 하고 또 왜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이관후(국회 입법조사처장, 이하 이관후)= 1948년 정부 수립부터 1987년 민주화까지 약 40년은 국가의 뼈대를 만들어 가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40년 동안 헌법을 여러 번 바꿨죠. 비유하자면 이 집 저 집 지어본 겁니다. 판잣집이었다가, 초가집으로 개량했다가, 기와집도 지어보고, 중간에 독재라는 시련도 있었고요. 87년 민주화 이후에 만들어진 지금의 헌법은 상당히 좋은 헌법입니다. 여러 시행착오와 민주화 열망이 맺은 결실이죠. 그런데 87년 이후로 또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동안 우리는 '개헌'이라고 하면 무조건 집을 완전히 부수고 재건축하는 전면 개헌만 시도해 왔습니다.

김현종= 쉽게 말해서, 분당이나 일산 아파트처럼 싹 다 재건축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는 거군요?

이관후= 네, 계속 전면 개헌만 시도하다 보니까 개헌이 너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은 집을 부술 때가 아니라 '리모델링'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계속 재건축만 하려고 하니 개헌이 굉장히 어려워진 거죠.

이 집은 기둥과 기반이 튼튼해서 때려 부수기 아깝습니다. 그러니 전면 개헌을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도 일리가 있죠. 하지만 창문이 낡아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천장에서 비가 새는데 안 고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면 개헌만 고집하다 보니 집수리도 못 하고 40년을 그냥 산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분 개헌, 단계적 개헌이 필요합니다.

김현종= 가능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말씀이군요.

이관후= 예, 그런 취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박지원(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하 박지원)= 정치 9단에서 헌법 9단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제5, 6공화국 헌법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가 많은데, 이제는 '제7공화국'의 미래로 가야 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 전에 이재명 후보와 논의해서 개헌안 발의를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 개헌'을 공약으로 발표했습니다. 개헌의 당위성은 이미 국민에게 설득이 되어 있어요. 그동안 국민투표법이 굉장히 복잡했는데 우원식 의장이 주도해서 국회에서 개정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번 내란 쿠데타 사태를 겪었으니, 계엄 요건을 엄격하게 강화해서 '합법적 계엄'만 가능하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겁니다. 또한 지금 헌법은 완전히 중앙집권적이니 지방분권 시대를 열자는 것이고요.

김현종= 5.18도 전문에 들어가야죠.

박지원= 네, 국민적 합의와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고 발표하니, 대통령께서도 부마항쟁과 3.15 의거도 같이 넣자고 호응하셨습니다.

이관후= 국회의장께서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행 헌법의 '균형 발전' 조항을 손봐야 합니다. 지금 조항은 말 그대로 '국토의 효율적 발전' 수준이지, 국가적 차원의 지방 소멸에 대응할 만한 수준의 헌법 조문이 아닙니다.

둘째, 불법적 비상계엄 방지 조항과 5.18 헌법 전문 수록은 사실상 같이 가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이번에 불법 비상계엄이라고 법원이 판결한 내용들의 근거가 전부 5.18 관련 대법원 판례에 기대고 있거든요. 만약 우리가 5.18에 대한 당시의 재판(역사의 심판)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지나갔다면, 이번 사태 때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찔합니다. 그러니 계엄 방지에는 동의하면서 5.18 수록은 별개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5.18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부마항쟁을 같이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고려해 볼만합니다.

김현종= 아까 박 실장님께서 현재 헌법에 제5, 6공화국의 분위기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시대 변화를 다루지 못하는 부분도 꽤 많죠?

이관후= 네. 사실 지금의 헌법은 87년 당시에는 굉장히 좋은 헌법이었습니다. 독재를 종식하고 5.18 민주화의 정신을 헌법에 투영해 낸 아주 훌륭한 제도였죠. 하지만 87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너무 많습니다. 우선 지금은 AI(인공지능) 시대 아닙니까? 하지만 헌법에는 '디지털 기본권' 같은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또 그때만 해도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주진우(<시사인> 기자, 이하 주진우)=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그게 87년도 구호였죠.

김현종= "셋은 낳지 마라" 하던 때죠.

이관후= 지금은 셋은커녕 낳지도 못하는 상황 아닙니까. 인구 폭발을 걱정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인구 소멸, 지방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김현종= 요새는 기후 위기 문제도 심각하고요.

이관후= 맞습니다. 기후 위기 같은 것도 당시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많은 분이 헌법을 상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시는데, 실제로 법을 만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을 제정할 때는 반드시 '헌법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따집니다. 그 근거가 취약하면 위헌이 되거든요. 현재 우리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은 말 그대로 '국민의 권리로서, 우리 국토에 살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줘야 한다'라는 정도의 좁은 개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영토를 벗어나는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에 국가가 책임을 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 헌법적 근거가 약해서 입법도 어렵고 예산 책정도 실질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 헌법의 개정, 즉 '리모델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 겁니다.

김현종 = 그런데 실장님, 언제부터 개헌이라는 게 이렇게 넘기 힘든 어마어마한 높은 언덕이 돼버린 겁니까? 왜 이렇게 헌법 개정하기가 힘든 거죠?

박지원= 김대중(DJ) 대통령 이후의 모든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지키지 않았어요.

김현종=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런 시도가 있지 않았습니까?

박지원= 이명박 대통령 때 제가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를 신라호텔에서 만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개헌을 하자.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고,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러서 정치적 부담을 줄이자"라고 제안했고, 합의를 했습니다.

발언하는 박지원 국회의원의 모습피렌체의식탁

김현종= 광우병 파동 때 말씀이시군요?

박지원= 그렇죠. 저하고 안상수 대표가 합의를 봤어요. 안 대표가 "내가 책임지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1년 단축을 받아오겠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계산기 두드려 보고 절대 안 할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소식이 없어서 무산됐죠. 그다음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위기가 왔을 때, 제가 정진석 비서실장에게 똑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1년 단축하고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 그러면 실패한 대통령에서 개헌에 성공하여 미래를 연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거다"라고요. 그랬더니 정진석 실장이 (이미 윤석열 대통령과 논의가 끝난 듯이) "형님, 누가 임기 1년 단축하고 개헌합니까?" 하더라고요.

역사적으로 DJ 이후 역대 대통령은 모두 개헌을 공약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 개헌을 공약했고, 정권 초기에 그것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주도적 임무를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금 잘 수행하고 있고요.

김현종=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계시죠.

박지원= 대선 전에도 우원식 개헌안이 나와서 이재명 후보와 교감이 있었고, 이번에도 계엄 요건 강화, 지방분권, 5.18 정신 수록 등 이미 합의된 내용으로 주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거듭 강조하지만, 복잡했던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서 절차를 간소화해 놓았습니다. 최근 만난 한 중량급 정치 지도자가 "권력 구조 개편이 빠진 개헌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번에 이거 개헌했다고 퉁 치고 넘어갈 것 아니냐"라고 묻더군요. 아닙니다! 1차로 다가오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현안들을) 확정하고, 제2차로 가장 어려운 난제인 '권력 구조 개편'을 반드시 손볼 것입니다. 그건 차기 국회의장이 할 일이겠지만 어떻게든 반드시 합니다. 총선 때 국민투표를 하는 일정으로 우원식 의장이 큰 그림을 그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민적 합의가 될 것이라 봅니다.

주진우= 국민의힘도 반대할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예전에 5.18 기념식 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다 같이 부르고 개헌 얘기도 했었잖아요.

박지원= 절대 반대할 리가 없죠. 특히 부마항쟁과 3.15 의거까지 포함된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주진우= 처장님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민주당, 국회, 대통령까지 개헌에 동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모여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의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이관후= 이제 먼저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합니다.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려면 시점이 중요합니다.

주진우= 서둘러야겠네요?

이관후= 아주 촉박한 건 아니지만, 역산해 보면 4월 7일까지는 국회의원 15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합니다. 발의가 되면 대통령이 이를 넘겨받아 20일 이상 공고를 합니다. 그 후 국회에서 다시 투표(의결)를 하게 되는데, 이때는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6월 3일 지방선거일에 맞추려면 5월 10일경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 투표(의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기서 통과되면 6월 3일에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집니다.

주진우= 그럼 당장 4월 7일 첫 단추를 꿰기 위한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까? 제대로 진행되고 있나요?

이관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님이 개헌안을 제안하셨고, 일주일 정도 뒤에 이재명 대통령이 "해볼 만하다"라고 화답했으며, 며칠 뒤 6개 정당 대표들께서 개헌 추진에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 발의에 필요한 150석 확보는 크게 어렵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현종= 패스를 주고받으며 벌써 하프라인을 넘었군요.

박지원=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정부 법제처에서도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국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이관후= 현재 정부 측(법무부, 법제처)과 국회 측(법제실, 입법조사처)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오랫동안 검토해 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주요 내용(계엄 방지, 지방분권, 5.18 수록)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사안이라 조문 자체를 성안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정치적 합의와 동의가 관건이지, 개정 내용 자체가 크게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김현종= 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도 없고, 5.18의 중요성은 국민 대부분이 압니다. 하지만 국회 통과를 위해 '200표'를 넘겨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은 역시 우리 (정치) 9단께서 해주셔야겠습니다. 어떤 세력이 이 개헌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박지원= 국회의원직 상실 등 변수가 있어서 재적 의원이 줄더라도 아무튼 통과 기준은 190석 내외가 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 진영 의석수만으로는 그 선을 못 넘는다는 거예요. 결국 과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때처럼,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의힘 의원이 개헌에 동조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제가 볼 때 만약 이게 '무기명 투표'라면 쉽습니다. 개헌에 동조하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기명 투표'이기 때문에 굉장히 망설일 겁니다.

주진우= 헌법을 바꾸는 건 당리당략을 따질 일이 아닌데 말이죠.

박지원= 5.18 정신 수록이나 지방분권 같은 내용은 과거 자기들(국민의힘)도 찬성했던 사안들입니다. 만약 이제 와서 반대한다면 5.18과 부마항쟁을 부인하는 겁니까? 지방분권을 부인하는 겁니까? 아니면 불법 계엄을 옹호하겠다는 겁니까? 말이 안 되죠.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현재 장동혁 등 친윤(Yoon-again)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어서 의원들이 눈치를 본다는 겁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투표 시점이 지방선거가 한창일 때라는 겁니다.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사실상 당을 이끄는 시기가 되니 국민적 지지와 홍보가 절실할 것이고, 그러면 (당론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현종= 이 처장님, 그런 변화의 가능성도 있나요?

이관후= 현재 분위기로서 국민의힘은 개헌에 약간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당론으로 모든 내용에 반대한다'라는 식의 강력한 기조까지는 아닙니다. 당내에서도 고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5.18 헌법 전문 수록 같은 건 이미 국민의힘도 제안했던 바 있고, 이번 개헌안 내용 자체가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들입니다. 헌법 개정 절차에 발의 후 공고 기간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런 숙려 기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정치는 한두 달 앞을 예상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충분히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이 발언하는 모습피렌체의식탁

김현종= 이 대목에서 정치 원로, 정대철 헌정회장님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박지원= 정대철 회장은 원래 확고한 개헌론자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우원식 의장의 개헌안에 대해 논의할 때도 깊이 관여하셨던 분이죠.

김현종= 정 회장님, 우원식 의장의 개헌론에 대해 헌정회장님이자 정치 원로로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이하 정대철)= 개헌은 당연히 해야 하죠. 그런데 개헌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나 우원식 의장은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습니다.

김현종= 그렇습니다.

정대철= 다만 문제는 너무 쉬운 것만 하겠다는 겁니다. 헌법 전문만 고쳐서 5.18 등을 넣고,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권력 구조 개편'은 뒤로 미뤘어요. 대통령제 중심의 헌법을 내각 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총리제, 양원제 등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쉬운 것부터 하자"고 하니 걱정입니다. 뜻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핵심을 안 한 거나 마찬가지로 돼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김현종= 아, 그러니까 연습 게임만 하지 말고 바로 본 게임으로 들어가자는 말씀이군요.

정대철= 1987년 이후 거의 40년 가까이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이제는 정말 헌법을 고칠 때가 되었습니다. 세월도 변했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죠. 역대 대통령 8명이 공약해 놓고도 아무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요.

김현종= 안 그래도 방금 박지원 의원님이 역대 대통령들이 약속만 하고 안 지킨 역사를 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정대철= 그러니 이번에 할 때는 국민이 보기에 "맞아, 저 방향으로 가야 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고쳐야 합니다. 문을 연다는 의미에서 전문만 고친다? 우리나라처럼 경성헌법 체제에서 국민투표까지 거치는 개헌은 한번 시작했다고 다음에 또 연속해서,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고칠 때 국민이 바라는 근원적인 부분(권력 구조)을 확실히 건드려야 합니다.

박지원= 정 회장님, 엊그제 김덕룡 이사장(김영삼민주센터)을 만났는데 정 회장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의장이 개헌했다는 생색만 내고 정작 후속 조치인 권력 구조 개편은 넘어갈 것 아니냐"라는 우려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개헌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서, 일에는 '선이후난(先易後難= 쉬운 것부터 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함)'이 필요합니다. 우원식 의장이 국회에서 복잡했던 국민투표법을 아주 간소화시켰습니다. 1차로 지방선거 때 계엄, 지방분권, 전문 수록 등 합의된 사안들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2차로 가장 난제인 '권력 구조 개편'을 충분히 숙의하여 다음 총선에서 국민투표로 확정하겠다는 확실한 로드맵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정대철= 우리가 여태까지 9번의 헌법 개정을 겪어봤지만, 우리나라의 경성헌법은 고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습니다.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40여 차례나 헌법을 쉽게 고쳤지만, 우리는 국민투표까지 가야 하니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다음번을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6월 지방선거에 맞춰 추진하는 개헌안이 현재로선 합의 가능한 최대치라 어쩔 수 없다 하시지만, 연습 게임처럼 해버리면 국민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박지원= 그 충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선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당시 후보)과 우원식 의장이 개헌을 논의할 때 저와 정 회장님도 함께 통화하고 소통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개헌 약속만큼은 지키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적 합의가 쉬운 것부터 먼저 통과시키고, 어려운 권력 구조 문제는 차기 총선에서 적용되도록 하면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다 한 번에 잘되면 제일 좋겠지만요.

이관후= 방금 정대철 헌정회장님께서 개헌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분명한 우려 사항도 제기해 주셨는데요. 아마 이런 우려일 겁니다. "기껏 개헌을 해봤는데 막상 내용이 별거 없네?"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워낙 오랫동안 개헌을 못 했기 때문에, "아, 개헌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필요할 때 합의된 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 저는 그게 오히려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헌 정국'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 때문에 정작 개헌의 내용에는 집중이 안 되고, '개헌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정치적으로 뭘 해보려는 것 아니냐'라는 의심만 키워서 항상 실패했거든요.

주진우= 그동안은 개헌을 그런 식의 승부수로만 던졌잖아요.

이관후= 그러니까 이제부터 개헌은 집수리하듯이, 비가 새면 그때그때 고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선거 때마다 개헌해야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정 회장님 말씀대로 우리나라는 경성헌법이라 한꺼번에 다 뜯어고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그때그때 논의되고 합의된 사항들에 대해서 선거 때마다 개헌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국민도 "개헌 별거 아니네, 그때그때 딱 필요한 걸 바꾸는 거구나" 하고 인식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게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봅니다.

김현종= 개헌에 관해 가장 일반인의 시각을 갖고 계신 우리 '개린이(개헌+어린이)' 주진우 기자님, 어떻게 개헌해야 할까요?

주진우= 저는 방금 처장님의 '리모델링론'에 매우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저는 '헌법은 사회의 근간이 되는 틀이니까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함부로 고치면 안 된다'라는 막연하고 높은 눈높이를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집이 편안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려면 비 새는 곳도 고치고, 그림도 걸고, 창틀도 바꿔야 한다"라는 비유에 설득됐습니다. 그동안 "개헌은 어려운 거야, 국민투표도 해야 해, 대체 누구한테 이익이 되는 거야?" 이런 얘기만 하다가 40년째 한 걸음도 못 나갔잖아요.

권력 구조 개편은 좀 미뤄두더라도, 2단계 개헌론으로 일단 한 발이라도 떼자고 하시는 분들께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과거 국가보안법 때도 독소조항을 없애자고 하니까 "이건 근본적으로 다 들어내야지, 조항 몇 개 바꾼다고 뭘 하겠냐"라고 반대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바꾸고 그 악법이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게 두지 않았습니까. 개헌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첫 발자국을 떼는 게 매우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관후= 제가 조금만 첨언하자면, 지금 이 집(헌법)에서 비가 막 새고 있어서 당장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이 어떤 집인데 감히 손을 대! 다시 지을 거 아니면 건드리지 마!"라고 막아서는 것은 상황에 안 맞는다는 거죠.

주진우= 독일 같은 선진국들도 그렇게 계속 고칩니까?

김현종= 아까 40번 넘게 고쳤다고 했죠?

이관후= 네, 유럽 국가들은 헌법을 자주 고칩니다. 제가 칼럼에도 썼습니다만, 미국은 저희보다 헌법 고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미국은 헌법 개정을 못 해서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죠. 트럼프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니라, 250년 된 헌법을 못 고쳐서 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헌법 고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보니, 기대 이하의 지도자가 나오거나 정치가 잘못돼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경성헌법이긴 해도 미국보다는 낫고, 국민투표법도 개정되었으니 필요하면 그때그때 헌법 개정하는 것이 이젠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김현종= 화제를 돌려보죠. 드디어 개헌 국면에서 '정치학자 출신 입법조사처장'과 '담 넘는 우원식 의장' 두 분의 콤비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해 보시니 우원식 의장님은 어떤 분입니까?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들려주시죠.

이관후 입법조사처장의 모습피렌체의식탁

이관후= 아마 가장 밀접하게 접촉했던 시기가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부터 탄핵 판결이 날 때까지의 몇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모들 말을 참 잘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계엄 당일 밤에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의견이 분분할 때, 차분하게 참모들 얘기를 들어주셨습니다. 본인 생각이 확고하더라도 참모의 의견이 합리적이라 판단되면 그걸 따라주시고, 또 결단할 때는 과감하게 결단하십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의결 정족수' 같은 문제는 헌정사상 유례가 없어서 다들 굉장히 곤란해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여러 헌법학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과서를 참고해서 의견을 드렸는데, "이건 내가 책임진다!" 하고 과감하게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충분히 수렴하되, 결단할 때는 과감한 분입니다.

주진우= 비상계엄 때 국회의장 자리에 우원식이 있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든든했고 감사했습니다. "왜 이분이 국회의장을 하고 있을까?" 했는데, 이 위기를 돌파할 정치력과 경험을 가진 분이 그 자리에 계셨던 겁니다. 그 든든한 분이 이제 개헌의 첫 발을 잘 뗐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원= 정치학자 자격으로 계속 듣고 싶네요.(웃음) 우원식 국회의장은 독립지사의 후예로서 굉장한 민족주의자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신봉이 아주 강하신 분입니다. 그 이상 말할 것도 없죠. 다만, 저는 우원식 의장님 말씀 잘 듣다가 피를 봤습니다.

김현종= 언제요? 비상계엄 해제 때요?

박지원= 의장님이 계엄 해제 의결을 하고 정부에 통보한 뒤, "정부에서 해제 통보가 올 때까지 본회의장을 지키십시오" 하셨거든요. 그런데 다들 휴게실로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이 노병은 "나라도 본회의장을 지키자" 하고 끝까지 남았습니다. 6시간을 지키다 보니 피곤해서 누워 있다 잠이 들었는데... 그 사진이 찍혀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관후= 그 사진 보니까 생각나네요. 사실 이번 개헌안에 '불법적 비상계엄을 국회가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간 이유를 제가 그때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국회가 그날 새벽 1시에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잖아요? 우리는 그 순간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고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제가 된 건 새벽 4시가 넘어서였어요. 2시, 3시가 지나도 계속...

주진우= 대통령실에서 도장을 안 찍어주니까!

이관후= 그날(12월 3일) 국회 인근 둔치 주차장에 있던 군인들이 해산을 안 하는 거예요. 저도 그 안에 있었지만, 아마 안에 있던 분들 대부분 그 생각 하셨을 겁니다. 과거 광주(5.18)에서도 계엄군이 들어왔다가 시민들 저항이 거세니까 잠시 물러난 뒤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정말 실탄을 분배해서 다시 들어오는 것 아니냐,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냐?" 그래서 저희 참모진끼리 "의장님부터 빨리 피신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우원식 의장님이 그러시더군요. "한 사람은 남아 있어야지. 의원들이나 당신들은 다 빨리 나가게 하고, 그래도 국회의장은 여기서 잡혀야 하지 않겠어?"

주진우= (농담) 아니, 박지원 의원님 계시잖아요. 꿀잠 주무시고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는데... 물론 아무것도 모르신 게 아니라, 국회의장을 지키려고 하신 거죠! (웃음) 우원식 의장님은 의장실에, 본회의장엔 박지원 의원님이, 그리고 그 바깥 계엄군 앞에는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이관후= 그날 밤의 공포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번 개헌안에 "국회가 의결하면 국무회의를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계엄이 해제되는 것으로 한다"라는 조항을 왜 그렇게 절박하게 넣었는지 말이죠. 직접 경험해 보시면 압니다.

김현종= 아, 이관후 처장님 말씀 들으면서 그 느낌이 팍 오네요.

박지원= 평소 개헌론자인 김덕룡 민추협 전 이사장이나 정대철 헌정회장 등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 뵈면, 단박에 쇠뿔을 뺄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다 하려다간 '교각살우(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임)'가 됩니다. 그래서 1차 개헌(부분 개헌)을 경유해서 가는 겁니다.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 두 지도자가 합의한 이 개헌안을 먼저 1차로 통과시키고, 두 번째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대로 권력 구조를 바꿔야 온전한 개헌이 됩니다. 당장 권력 구조까지 바꾸는 전면 개헌을 밀어붙이면 또 물 건너갑니다.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현종= 감사합니다.

40년 만에 헌법 AS 신청하신 분?" 개헌, 일단 쉬운 것부터 '조집시다'! 정치 9단 박지원과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이 대한민국을 바꿀 개헌 시나리오를 낱낱이 해부합니다!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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