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26 06:46최종 업데이트 26.03.2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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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북한) 국무위원장이 또다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했다. 2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루어나가며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는 한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고려나 사소한 주춤도 없이 무자비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재차 밝힌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2023년 연말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이러한 입장을 줄곧 유지해 왔다. 김 위원장은 이를 법제화하기 위해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하고 영토·영공·영해 관련 조항도 신설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 2024년 10월과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수정·보충했다고 언급하면서도 기존 헌법의 남북관계 관련 조항을 고쳤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른 조항의 변경은 언급하면서도 남북관계 조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당규약도 개정했다고 하면서 남북관계 관련 조항의 변경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남북관계 변화 여지를 열어둔 것일까?

김정은 정권이 틈만 나면 남북관계 '절연' 의사를 강조해 온 만큼, 이러한 의사를 가장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당규약과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나 협력이 '위헌'에 해당하기에 김정은 정권이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한국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미련을 접으라는 확실한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정은 정권은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것을 근거로 삼아 한국과 미국 등의 비핵화 요구에 대해 '우리더러 위헌을 하라는 것이냐'며 일축해 왔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본질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적수들이 대결을 선택하든, 평화적 공존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들이 택할 몫이고 우리는 그 어떤 선택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부분도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이전에는 미국을 콕 집어 비핵화 요구와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수들"이라는 복수형을 언급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 문제' 둘러싼 엇박자 해소할 수 있을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과 적대행위를 추구하지 않겠다"며 남북관계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9일 "이재명 정부의 목표는 평화공존 그 자체"라며 "평화공존을 수단으로 해서 상대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우리 정책안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흡수통일은 물론이고 적대적 의도 자체가 없으니 안심하고 대화에 나와 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과 조선의 엇갈림이 확연해진다. 이재명 정부는 '선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은 '구조'를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조란, 조선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 이북5도청 등을 말한다. 또 전쟁이나 "북한급변사태" 발생 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연합훈련, 그리고 한국 정부의 행정계획인 '충무계획' 등을 가리킨다.

김정은 정권이 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은 역대 한국 정부의 성향과 관계없이 상기한 내용들이 불변이었고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거꾸로 우리가 가능한 것부터 상기한 내용을 하나둘씩 바꿔나가는 것이 대북정책의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남북관계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는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현실이기에 그러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조선을 국가로 생각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2023년 49.9%, 2024년 52.1%, 2025년 54.5%로 3년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25년 조사에서 통일을 지지한다는 사람 가운데 65.4%가 조선을 국가로 인식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리서치의 2024년 여론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8%가 한국과 조선은 별개의 국가라고 답하기도 했다.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자는 것이 통일을 포기하자는 취지도 아니다. 서로가 주권을 존중하면서 평화공존의 질서부터 만들고, 교류 협력을 통해 '사이좋은 이웃'이 되어가며, 미래 세대가 지금보다 좋은 여건에서 평화통일을 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 정욱식은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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