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전직 직원들이 USAID 해체 1주년을 기억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숙의가 해체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숙의가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가 역으로 드러난다. 숙의는 더 나은 논거가 나오면 기꺼이 결론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말하고 나서 안전해야 한다. 발언 이후에 밉보이거나, 찍히거나, 잘리는 구조에서는 아무도 진짜 생각을 꺼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스케줄 F'라는 제도로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박탈하는 방식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보다 익숙한 형태로 작동한다.
회의에서 말하기 전에 윗사람의 의중을 먼저 계산하는 것, 인사에서 불이익받을까 봐 다른 의견을 삼키는 것, 분위기를 읽고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대했다가 찍히는 비용이 입 다물고 있는 비용보다 큰 환경에서는,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하에서 "자유롭게 말해 보라"고 한들 자유롭게 말할 사람은 없다.
둘째, 반론이 딴죽이나 발목잡기가 아니라 기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말을 해도 그 말이 배신이나 도전으로 읽히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결국 입을 닫는다. 숙의가 되려면 공론의 장에서 직책도, 나이도, 연차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말의 내용으로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계급장 떼고 얘기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 직급이 높은 사람이 먼저 말하면 그 뒤에 나오는 발언들은 이미 그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한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반론은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등에 업은 트럼프의 미국에서 전문가의 반론이 기득권의 저항으로 낙인찍혔듯, 한국에서는 아랫사람의 반론이 조직의 화합을 깨는 행위로 읽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결정적으로, 토론에 의해 결정이 실제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앞의 두 조건은 무의미하다. 말해도 안전하고 반론도 환영받지만, 어차피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사람들은 곧 깨닫는다, 형식은 토론이지만 실질은 통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번에는 아예 말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뭐 그냥 하라니까 했다"는 태도는 게으름이나 무관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토론해 봐야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몸으로 학습한 결과다. 애초부터 숙의하란다고 숙의가 될 수 없었단 얘기다.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냐를 놓고 갈라진 핵심 이유다.
이 세 조건 중 하나라도 없으면, 대화와 토론은 숙의가 아니라 동의 확인 의식이 되어 버린다.
광장 이후의 과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숙의 없는 정치가 점점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행정명령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의회는 이를 추인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적으로 낙인찍힌다. 이 과정이 매일 반복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숙의의 부재가 일상이 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후퇴의 마지막 단계다.
한국은 어쩌면 그 반대 과정을 겪고 있다. 권력이 헌법을 짓밟았을 때 시민들은 이를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꼈고, 거리로 나왔고, 헌법적 절차를 끝까지 관철시켰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들불처럼 타오르는 시민의 힘과, 일상적 정치에서 매일 작동하는 숙의의 구조는 다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광장의 힘을 국회와 일상의 정치로 옮기는 것이다.
작은 일상과 정책결정 과정부터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인정받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반론을 묵살한 결정이 실패했을 때 그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토론 결과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고, 최종 결정이 그 토론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도록 하면 요식행위는 줄어든다.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다. 내일 당장 회의실에서 시작할 수 있는 변화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따져 묻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따져 물어도 괜찮은 정치, 아니 따져 묻는 것이 당연한 정치,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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