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포스터.
UPI코리아
그로부터 100년 뒤 스쿤의 돌이 돌아올 가능성을 더 멀어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707년 식민지 사업의 실패로 파산 위기에 놓인 스코틀랜드는 모든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합병을 요구한 영국의 손을 잡았다. 파산한 스코틀랜드가 당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의 고육지책이었다.
정치와 경제는 통합하되 법률과 종교는 각자 보장하는 느슨한 통합, 우리가 알고 있는 '대영제국'(Great Britain)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빚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이용 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씻기 어려운 굴욕의 정서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기개를 닮은 위 헤비
홉이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과 가혹한 날씨는 스코틀랜드 맥주 속에 맥아 뉘앙스를 묵직하게 남겼다. 어두운 색 뒤로 건 과일과 감초 향을 품고 있는 이 맥주를 스카치 에일이라고 한다.
스카치 에일은 알코올 도수에 따라 영국의 화폐 단위, 실링으로 나뉜다. 2~3도 정도의 가장 낮은 알코올을 가진 스카치 에일을 60실링, 3~4도는 70실링, 4~5도는 80실링, 6도 이상 알코올 도수를 가진 스카치 에일은 90실링으로 구분한다. 모두 알코올에 따라 높은 세금을 부과했던 흔적이다.
이중 스카치 에일의 정수는 90실링, 일명 위 '헤비(wee heavy)'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짙은 고동색, 6.5% 이상의 알코올, 건과일과 캐러멜 향, 거기에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는 이 맥주는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켜온 스코틀랜드인의 기개와 맞닿아있다.
반면 잉글리시 비터는 전혀 다른 세계다. 영국 남부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홉이 듬뿍 들어가 꽃과 허브 향이 섬세하고 쓴맛도 살아있다. 같은 에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위 헤비와 비터는 서로를 전혀 닮지 않았다. 마치 두 나라처럼.
영화 <운명의 돌> 속에 나오는 맥주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청년들은 가슴 속에 위 헤비의 뜨거움을 품고 런던으로 향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맥주는 잉글랜드 비터였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영국과 함께 피를 흘리며 전우가 된, 20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모순을 영화 속 맥주는 보여주고 있었다.
느슨한 연합과 날카로운 경계 사이
고향으로 스쿤의 돌이 돌아왔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한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스코틀랜드 국기를 들고 로버트 브루스 동상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에 관심이 없던 이안 해밀턴 아버지도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돌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열광하면서도 영국이라는 울타리를 부수지 않았다. 이안 해밀턴조차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대영제국 안에 존재하는 미묘한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다르지만 함께 있고 싸우면서도 떠나지 않는 그들의 방식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필요한 공존의 모델일 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반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에게 언젠가 역사가 새로운 길을 물어볼 때,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을지도.
스쿤의 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현재 돌은 스코틀랜드 퍼스 박물관에 놓여있다. 1996년 영국은 스쿤의 돌을 반환했다. 높아지는 독립 여론을 의식한 존 메이저 총리의 상징적 제스처였다. 단, 영국 왕의 대관식에는 잠시 런던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1999년 스코틀랜드는 300년 만에 자치 의회를 세우고 독립의 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4년 독립 찬반과 2016년 브렉시트 파고 속에서도 속내는 복잡할지언정 결국 영국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대영제국의 종착점은 어디까지 일까? 알 수 없지만, 두 나라 국민들에게 행복한 결말이 되길 바란다.
아,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빵, 스콘이 바로 이 스쿤의 돌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늘 밤, 쌉쌀한 비터 한 잔에 달콤하고 푸석한 스콘 한 조각을 먹어보자. 자신의 인생에서 되찾아야 할 '운명의 돌'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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