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치는 덕유산에서 이상이와 곽동연의 상황극이상이는 '생사를 오가는 산악대원'인 것처럼 상황극을 했는데, 네일 아트를 해주어야 함을 기억하고 벌떡 일어났다.
tvN
출연자 세 명은 차가운 바람과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강풍에도 함께 의지하며 산을 오른다. 이상이의 머리에는 눈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까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다. 이때 갑자기 곽동연이 지친 이상이를 보며 상황극을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할 거야?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 거냐고?"
"먼저 가."
"아냐, 먼저 못 가. 눈 떠, 눈 뜨라고!"
"아, 네일 아트, 네일 아트하러 가야 해. 라 여사님 네일 수정해 드려야 해."
이상이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단지 상황극이었지만, 정말 어떤 상황에는 '일'이 나를 붙잡아 주기도 한다. 몸이 푹 꺼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팀원에게 건네주어야 할 업무가, 내 원고를 기다릴 담당자의 눈빛이 날 일으킨다.
지금 하는 일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잘 돌보기
90대 할머니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변에 함께 대화하고 웃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노년까지 이어지는 단단한 관계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정을 주고받으며 쌓인 시간이 안전하고 끈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일 터. 주변 사람들을 잘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이건 비단 노후뿐 아니라 현재를 풍성하게 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사한 후 시작한, 나만의 다정한 일이 있다. 그건 바로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남편에게 쪽지를 쓰는 거다.
'안녕, 오늘 식사는 육개장이야. 라면 먹지 말고 국 데워 먹어. 그럼 좋은 하루!'
이런 식의 쪽지에 불과한데, 어느 날 그 쪽지가 남편의 방에 있는 가족 사진이 전시된 곳에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설마, 내 쪽지에서 사랑을 느낀 건가?'
그 뒤로 좀 더 정성 들여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쪽지는 내가 귀가할 때까지 그냥 식탁 위에 붙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남편의 방에 붙어 있는 쪽지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부러 묻지는 않았다. 그저 나만의 리그를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마침 서점에 갈 일이 있으니 귀여운 모양 포스트잇을 사서 거기에 메모를 적어봐야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유병장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90대에도 정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비결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하는 일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이 둘을 잘 가꾸며 살아가다 보면, 어윤옥 할머니와 라옥자 할머니처럼 웃으며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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