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인지 인도인지1월말 삿포로 시내 도로의 모습. 1미터가 넘게 내린 폭설로 차도와 인도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김용국
하늘은 자비가 없었다. 1미터가 넘게 쌓인 삿포로에 눈은 그칠 줄 모른다. 삿포로가 마치 저주받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일본의 관광상품이니 내가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출근하고, 가게는 장사를 하고,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수천 명의 관광객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이틀째 도시가 마비가 되었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삿포로역에는 열차 재개를 기다리는 수천 명이 밤새워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내일 돌아가야 한다.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가 아니었다. 만일 제때 '탈출'하지 못한다면 노숙하거나 숙소를 잡아야 한다. 비행기표도 새로 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역으로 가서 대기행렬에 동참하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택시를 타야 한다. 삿포로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50km가 넘는다. 왕복 항공권보다 비싼 택시 요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택시 예약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본 여행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홋카이도에 온 한국인들의 고생담이 쏟아지고 있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출국 비행기를 놓친 사람, 호텔을 예약해 놓고도 이틀째 공항 노숙 중인 사람, 갑자기 운행이 중단된 열차 안에서 밤새도록 떨고 있는 사람의 사연까지... 특히 노인이나 아이를 동반한 여행객들은 더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여행객 A씨의 게시물을 보았다. '겨우 택시 예약에 성공하여 아침 삿포로에서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A씨는 가족이 3명이라고 했다.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신속하게, 그러나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 자리가 남아 있다면 택시에 함께 탈 수 있을까요. 택시 요금은 분담하겠습니다."
곧 답장이 왔다. '캐리어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함께 탈 수 있겠다'고. 가방 외에 무거운 짐이 없던 나는 쾌재를 불렀다. 아침에 A씨 가족이 묵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 비행기였지만 시내에서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공항까지 택시요금이...

▲공항까지 택시버스와 열차 등 대중교통이 마비된 삿포로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는 2시간을 달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은 2만 5천엔(약 23만 4천원)이 나왔다.
김용국
오전 예약 시간이 되었건만 택시는 도착할 기미가 없었다.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눈길에 다른 손님을 공항에 실어 나르느라 시간을 맞추지 못한 듯싶었다. 실망하고 있을 무렵, 택시 한 대가 손님을 내려주고 있었다. 얼른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하던 A씨 가족도 불렀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A씨 가족과 함께 오른 택시가 출발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택시 기사는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삿포로에 손님을 내려주자마자 다시 우리를 태우고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만 벌써 세 차례 공항과 시내를 왕복했다니 유일한 교통수단인 택시만 횡재를 하는 날이었다.
택시 기사는 "버스와 전철이 모두 중단된 경우는 몇십 년간 나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도로 상황으로 보아 전면 중단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지만, 외국인인 나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눈이 일상화된 도시에서 제설작업이 안 되어 교통이 마비된다는 사실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택시는 2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은 2만 5천 엔(약 23만 4천 원). A씨 가족은 1/n을 제안했다. 삿포로에서 인심 좋은 한국인을 만나 비교적 부담 없는 비용으로 홋카이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간사이공항에 도착하니 내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대중교통 마비, 만일 한국이었다면
▲폭설이 내리는 삿포로1월말 삿포로 시내 도로의 모습. 1미터가 넘게 내린 폭설로 차도와 인도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김용국
만일,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폭설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었다면 아마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나섰을 것이다. 공항을 오가는 임시 전세버스라도 운행하고, 관광객이나 주민들에게 음식과 잠자리 등 편의를 제공했을 것이다. 속보로 실시간 상황을 알리고 대책 마련에 바빴을 것이다. 시민들도 사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운행 재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국에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했다. 현지인들도 당혹스러울 만한데 아무 내색을 하지 않는다. 불만을 가져봐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다. 관광객들의 하소연에도 "안됐네요"하고 맞장구를 치는 게 전부다. 사태가 언제 정상화될지 그 누구도 질문도 답변도 하지 않는다.
1990년 1월, 스무 살 내가 처음 상경한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서울에 큰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21년 만의 대설이라고 했다. 30cm 가까이 쌓인 눈에 경악했다. 남쪽에 살던 나는 그전까지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1미터가 넘는 폭설을 실컷 보았다. 충분하다. 이제 다시는 제 발로 눈 구경 갈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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