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서 학교 이름을 지울 때가 됐다. 모든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주어야 한다. 어떤 학교를 나왔든, 자신의 역량으로 평가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셔터스톡
일부에서는 이 법이 명문대 출신에게 불리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매년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34만 명 내외 중 SKY 출신은 약 1.2만명, 비율로는 약 3.7%에 불과하다. 나머지 약 96%의 청년들은 아무리 역량이 있어도 이력서에 적힌 학교 이름 때문에 서류 단계에서 불이익 받는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 교육 환경에서 역량을 쌓았다면, 역량 평가 과정에서 그것은 충분히 드러난다. 학교 이름에 가점을 주지 않는 것일 뿐, 감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원칙인데, 그것이 어째서 역차별이겠는가.
이 법의 효과는 채용 시장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어디서 배우느냐"에 집착한다. 그런데 취업에서 대학 이름이 더 이상 결정적 변수가 아니게 된다면, 학생들은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연간 27조 원을 넘어섰고, 2024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7.4만 원으로 전년 대비 9.3% 상승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연구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 증가할 때 출생률은 0.26% 하락한다. 채용 시장의 규칙이 바뀌면 교육 시장의 규칙도 따라 바뀐다. 부모들이 "어떤 대학을 나오든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입시 광풍도 누그러질 수 있다.
30년 기다렸다…이제는 실행해야 할 때
고용정책기본법이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한 것이 1994년이다.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발적으로 이력서의 출신학교란을 없앤 민간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교육의봄의 조사가 보여주듯, 오히려 그 의존도가 더 강화되었다.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2010년 체벌 금지 정책이 시행된 이후, 손쉬운 통제 수단을 내려놓은 교사들이 협동학습이나 배움의 공동체, 수업 코칭, 수업 알아차림 등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출신학교라는 손쉬운 필터를 내려놓아야 기업들이 역량 중심 채용의 대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NCS 기반 역량 중심 채용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AI 서류 평가, 역량 검사, 과제 기반 채용 등 새로운 채용 도구들도 시장에 나와 있다. 기술과 인프라는 준비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을 선언하는 법이다.
완벽한 법은 없다. 이 법 하나로 학벌 사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면접에서 은근히 학교를 묻거나 다른 방식으로 학력을 유추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성차별금지법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성차별을 방치할 수 없듯이, 학벌 차별도 마찬가지다. 법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방향의 선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이제 이력서에서 학교 이름을 지울 때가 됐다. 모든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주어야 한다. 어떤 학교를 나왔든, 자신의 역량으로 평가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이고, 그것이 효율이며, 그것이 교육의 정상화로 가는 길이다.
▲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사장
본인
필자 소개 : 13년 간 공립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003년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수행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2008년에는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창립해 12년간 활동하다가, 학벌 중심의 채용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2020년 재단법인 교육의봄을 창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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