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고(故)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을 풍자한 '타이타닉' 테마 조각상 근처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네타냐후만 정치적 위기에 몰린 지도자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오래된 이름 하나가 따라다닌다. 제프리 엡스타인이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착취 네트워크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그의 주변에는 정치인, 금융가, 연예인 등 미국 상류사회 인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트럼프 역시 그 인맥 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트럼프 자신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을 "꽤 괜찮은 사람(terrific guy)"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인정했다. 이어 "(엡스타인이) 나만큼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며 "그 가운데는 꽤 어린 여자들도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문 표현은 이렇다.
"He likes beautiful women as much as I do, and many of them are on the younger side."
이 발언은 훗날 엡스타인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뒤 여러 언론에서 반복 인용됐다.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관계는 말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1990년대 뉴욕과 플로리다 사교계에서 함께 어울렸고, 1992년 플로리다 마러라고(Mar-a-Lago) 파티 영상에서는 두 사람이 여성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국 통신사 <에이피 AP>는 전직 모델 스테이시 윌리엄스의 진술을 보도했다. 그녀는 1990년대 초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끌어당긴 뒤 가슴과 허리, 엉덩이를 더듬었다고 밝혔다.
또 그 장면이 제프리 엡스타인 앞에서 벌어졌으며, 마치 두 사람이 상황을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사건 뒤에는 엡스타인이 오히려 그녀에게 "왜 그걸 허용했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도 진술했다.
다른 기록들도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FBI 인터뷰 기록 가운데 한 여성은 10대 시절 엡스타인을 통해 트럼프를 소개받았고, 트럼프가 자신에게 구강성행위를 요구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수사 기록에는 전 팜비치 경찰서장이 FBI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트럼프가 2006년쯤 전화를 걸어 "그(엡스타인)가 그런 짓(미성년자 성착취)을 하고 다닌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진술들이 아직 모두 법정에서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것들이 더 이상 은밀한 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방 수사 기록과 공개 문서 속에 남아 있고, 상당수는 이미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정치에서 위험한 것은 판결만이 아니다. 의혹이 반복해서 공개되고 기록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 자체가 정치적 부담이 된다.
특히 타이밍이 중요하다. 엡스타인 관련 자료와 인터뷰 기록이 추가로 공개되는 시점마다 정치적 파문이 다시 커진다. 정치인에게는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다.
그래서 트럼프에게도 지금은 민감한 시기다. 스캔들이 커질수록 정치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유혹이 커진다. 전쟁은 그가운데 가장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유는 없고 사정만 있는 전쟁

▲지난 7일, 이란 테헤란에서 폭발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 마지드 아스가리푸르/WANA(서아시아 통신사)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서 두 사람의 처지가 겹친다. 한 사람은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총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미성년자 성착취 스캔들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대통령이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압박 속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계엄이나 전쟁은 권력자가 쉽게 유혹받는 정치적 탈출구가 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언론의 관심은 지도자의 개인 문제에서 국가 안보로 옮겨가고, 정치적 비판은 애국심의 문제로 바뀐다. 동시에 지지층은 결집하고, 지도자의 개인적 위기는 국가의 위기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이 정말 국가의 전쟁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권력자의 전쟁인가.
이런 의심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줬기 때문이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경제 붕괴와 정치적 위기로 흔들리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고 정권의 정당성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군사정권은 갑자기 포클랜드섬을 점령했다. 전쟁은 국민의 분노를 잠시 외부로 돌리는 효과를 냈다.
1999년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경제 위기와 권력 약화 속에 있던 옐친 체제는 체첸 전쟁을 다시 확대했다. 전쟁은 강경한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새로운 권력을 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역사는 반복해서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전쟁은 언제나 국가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때로는 권력자의 정치적 필요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이란 전쟁을 바라보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전쟁이 정말 이란의 핵 위협 때문에 시작된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지도자에게 필요한 전쟁이었는가.
물론 모든 동기를 증명할 수는 없다. 전쟁의 이유는 언제나 여러 층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가 전략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쟁에는 대개 권력자의 사정이 숨어 있다.
이 전쟁은 전략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남는 설명은 결국 하나다. 국가의 이름으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그 그림자는 너무 개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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