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9월 5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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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정당의 급격한 성장에는 스스로의 쇄신 노력 외에도 불안한 경제, 기성 정당의 실패 그리고 EU(유럽연합)에 대한 불신이 발판을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극우 세력 성장의 1등 공신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2017년 집권한 마크롱은 슈퍼리치들에 의해 간택되어, 노골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충성한 대통령이었다. 집권 직후, 부유세(ISF)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인하한 반면, 연금 수급자에 대한 세금(사회보장기여금, CSG)와 유류세는 인상했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던 권력은 집권 1년 만에 전국적인 저항운동 '노란 조끼' 투쟁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1만 명 이상이 체포·구금당했고, 1천명 이상이 실형을 살았으며, 4천명이 넘는 사람이 실명, 안면 골절 등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노란 조끼' 세력은 이후 극좌 혹은 극우 세력으로 편입된다.
그러나 재선을 한 마크롱은 계층을 초월하여 수년간 전체 시민 사회가 반대했던 연금 개혁을, 의회를 뛰어넘고 헌법 특수 조항(49조3항)을 남용해서 강행 처리했다. 이는 집권 세력과 국민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넓은 강을 만들었다. 여론에 전혀 귀 기울일 생각이 없고,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불화를 피할 방법은 없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직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당이 처참하게 참패(여당 르네상스 포함 범여권 연합 14.6% )하자, 갑자기 그날 밤 마크롱은 의회해산이라는 도박을 감행했다. 하지만 다시 치러진 총선에선 마크롱의 기대와는 달리, 보란 듯이 좌파연합이 제 1당으로 올라섰다. 이런 경우, 제1당 출신을 총리로 임명해서 좌우 동거정부를 이뤄야 하는 것이 관례이나, 마크롱은 수개월간 총리 임명을 미루며 정치 불안을 야기했다. 이렇듯 3년 반 동안 5번이나 총리가 바뀌는 동안, 민생은 처참하게 버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은 에너지 물가는 전반적인 물가 인상을 촉발, 서민들의 구매력은 급락했고, 나랏빚은 GDP의 110%까지 치솟았다.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계급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국민연합은 이 틈새를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부가가치세(VAT) 인하, 청년층 소득세 면제 등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돈 문제'를 공약 전면에 내세우며 마크롱에게 실망한 농촌과 쇠락한 공업 지대 서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EU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EU의 '비민주적인 통제 불능' 상태도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해 온 오랜 주제다.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화이자 대표와 EU의 백신 구입 계약과 관련해 주고받은 문자가 논란이 된, '문자 스캔들'이 그 대표적 사례다. 팬데믹 당시 백신 과잉 구매 등으로 이면계약 의혹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집행위가 내놓은 계약서의 세부 사항은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마저 주요 조항이 검게 가려진 채 공개되지 않았다. 유럽의회는 문자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폰데어라이엔은 끝내 거부했다. 그는 해당 사건으로 유럽 검찰청(EPPO)과 벨기에 사법 당국에 이중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EU는 백신이 출시되기 전엔 미국 길리어드사가 만든 고가의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다량 구입해서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그 효능과 부작용에 문제를 제기함에도 말이다.
결국 2025년 7월 유럽의회에선 폰데어라이엔 불신임 투표가 진행됐지만 부결됐다. 단호한 변화를 촉구하는 극좌, 극우 진영의 의원들만 불신임에 표를 던졌고 질서의 안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머지 의원들은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겨울엔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EU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을 불가역적으로 굳혔다. 프랑스 의회에선 압도적으로 부결시킨 EU-남미자유무역협정 (Mercosur)을 유럽집행위가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EU는 유럽농민들에게 '그린 딜(GreenDeal)' 원칙에 따라 살충제 사용 제한, 탄소 배출 감축 등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 왔고, 이는 농산물 생산 비용을 치솟게 했다. 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서 수입되는 축·농산물은 이러한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EU-남미자유무역협정 협정이 체결되면, 유럽 농산물은 도저히 남미 농산물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 특히 유럽 최대의 농업국이자, 식량 주권에 민감한 프랑스 국민으로서는 수용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유럽 농민들은 '유럽 시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독일산 자동차를 더 팔겠다 '라는 수작이라며 트랙터 시위를 겨울 내 멈추지 않았고, 시민들은 이들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 회원국들의 첨예한 이해가 충돌하는 이 같은 사안은 각국 의회의 비준을 필요로 함에도, EU 집행위가 독단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유럽의회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를 결정했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협정 발효도 미뤄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2월 8일 발표된 여론조사(Eurobaromètre, 유럽연합 정기 여론조사)에서 유럽연합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은 38%에 불과했다.
극좌와 극우가 격돌할 2027년 대선

▲극좌 성향의 프랑수아 뤼팽 의원이 2024년 6월 17일 당시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서 열린 프랑스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의 선거 유세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이제 1년 뒤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의 시나리오는 극좌와 극우의 맞대결로 좁혀진다. 나를 안 찍으면 극우한테 나라가 넘어간다는 마크롱의 협박은 이제, ' 차라리 너보단 극우나 극좌가 100번 낫겠다'로 뒤바뀐 판세 속에서 효력을 상실했다. 중도의 가치는 오직 슈퍼리치를 위해 봉사할 뿐, 시민들의 목소리엔 온전히 귀를 닫는 불통과 독단의 아이콘 마크롱과 함께 완전히 추락했다.
극우 진영에선, 사법 리스크로 4번째 대선행이 어려워진 마린 르펜 대신 지지율 1위 바르델라(30) 가 후보로 나설 전망이고, 극좌 진영에선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터줏대감 장뤼크 멜랑숑을 제치고 2선의 프랑수아 뤼팽이 돌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제 막 50살이 된 좌파 독립언론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의 뤼팽은 지난 1월 말 '최저임금 대통령'이란 구호와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 순식간에 대선 가도의 2인자로 떠올랐다.
그는 74살의 멜랑숑의 권위주의에 맞서 지난해 탈당, 독자적으로 신당 (Debout, 일어나라)을 만든 극좌 진영의 전투력 좋은 거물급 신인이다. 예리하고 담대한 시선을 드러내던 언론인으로, 자본주의를 고발하는 탁월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쌓아온 경력과, 거기 더해진 9년간의 국회의원 활동은 민생 전반에 걸친 그의 관점과 역량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 방면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문제를 타개할 해법과 철학적 관점에선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 둘 다 "프랑스는 지금 고장 났다" 진단에 동의하지만 바르델라는 그 원인을 외부(이민자, EU)에서 찾고, 뤼팽은 내부구조(자본주의, 불평등)에서 찾는다.
바르델라의 해법이 국가 정체성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 회복·이민 억제·EU로부터 프랑스 주권의 회복이라면, 뤼팽의 해법은 계급적 관점에 뿌리를 둔 자본의 독재로부터의 해방·공공 서비스의 확대·노동자의 권리 회복이다. 바르델라의 주적이 이슬람 세력·불법 이민자·프랑스의 주권을 훼손하는 EU라면, 뤼팽의 주적은 금융자본주의·슈퍼리치·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EU체제다.
EU에 대해 바르델라는 탈퇴 대신, 프랑스의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EU 조약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뤼팽의 EU 전략은 탈퇴가 아니라, 불복종이다. 나쁜 규칙은 지키지 않겠다. 예를 들어 메르코수르 같은 자유무역 협정이 농민의 삶을 해치고 시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면, 그 규칙에 따르지 않고 싸우겠다는 것이다. 유럽 내 다른 국가의 좌파 세력과 연대해 사회적·생태적, 민주적 구조의 유럽연합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 일부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정하는 대신 유럽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해법이다.
결정적으로 극우는 자본가와 싸우진 않는다. 오히려 우파 표를 얻기 위해 벌써부터 '친기업,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부유세 재건과 연금 개혁 무효화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반면 뤼팽에게 생태적 전환과 부유세 강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그는 바르델라를 가리켜 "그는 억만장자들과 싸우는 대신 가난한 사람끼리(프랑스 서민 vs 이민자) 싸우게 만들뿐"이라고 비판한다.
자본의 하수인임을 숨기지 않았던 마크롱 9년, 그 아래서 희생된 프랑스를 되살리는 해법이 어느 쪽에 있을지는 명확해 보인다. 우파의 표를 얻을 욕심에 숨겼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극우의 민낯을 얼마나 빨리 사람들이 파악할지에, 프랑스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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