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조선 침략을 자행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추모하는 신사인 도요쿠니 신사가 있다. 도요쿠니 신사에서 바라본 귀무덤(왼쪽).
김용국
내가 방문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귀무덤에 예를 표하고 큰 길가 위쪽을 바라보니 100미터쯤에 도요쿠니 신사가 보인다. 신사에는 히데요시의 상도 있다. 신사에서 바라보니, 마치 히데요시가 죽어서도 귀무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인으로서 착잡한 심정이었다.
귀무덤은 철문으로 잠겨있었다. '참배를 원하면 사전에 교토시 문화재보호과로 연락달라'는 안내가 있지만 그건 개방 불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교토시가 만든 한글 안내표지판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전형적인 특징인 애매모호한 설명이다. '역사의 교훈'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귀무덤 앞에서 누가 무슨 교훈을 어떻게 얻어야 할까.
피해의 역사뿐 아니라 가해의 역사도 인정해야
예전에 어느 일본인과 인터넷상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논쟁하다가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과거는 이제 덮자. 미래로 가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동안 사과도 했고 보상도 했다. 우리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도대체 뭘 원하느냐.'
그때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수한 침략전쟁을 통해 세계를 제패하려 했던 나라의 국민과 단 한 번도 먼저 전쟁을 벌인 적이 없는 나라의 국민은 입장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본이 역사상 '피해자'였던 순간은 극히 짧은 반면 '가해자'였던 기간은 상당히 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가해는 일관되게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최근 <아사히 신문>(2월 22일자)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전쟁의 가해와 마주할 때'라는 제목이었다. 기사는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노다마사아키의 견해를 빌려 "패전국 일본은 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제국주의 시절 참전 일본군들을 인터뷰해 펴낸 <전쟁과 죄책>이라는 책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알기 전에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다', '침략전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자학사관은 인정할 수 없다' 등이라고 강변하고 과거를 부인함으로써 무엇을 잃어왔던가."
이 기사는 마지막으로 "전쟁이 기억에서 역사로 옮겨가는 가운데 가해는 사라져간다. 우리는 피해와 가해의 양쪽을 마주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이런 기사를 일본 일간지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찾은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도, 윤봉길 의사가 암매장당한 가나자와에도, 교토의 귀무덤에도 '가해자'로서의 사과나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 정부도 학교도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설마,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가 세월 속에 영영 잊히기를 바라는 것일까. 진정한 평화나 화해는 반쪽 진실만으로는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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