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6 16:03최종 업데이트 26.03.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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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어떤 집은 식사할 때 책이나 뉴스, 또는 각자의 근황을 얘기하곤 한다는데 우리 집은 TV(유튜브)를 본다. 거실 TV를 없애는 요즘 추세와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주말 저녁. 뭘 보며 식사할지 검색하다 <풍향고2>가 OTT 메인에 있는 걸 발견했다. 조회수가 거의 천만에 육박한다(2월 말 기준). 우리 가족은 그 비결을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풍향고2> 1화를 클릭했다.

<풍향고>는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제작한 여행 프로그램으로 모든 여행 비용은 멤버들의 사비로 진행된다. 또한 전화와 카메라 기능을 제외한 모든 앱을 사용할 수 없고, 최소한의 여행 정보는 제작진이 책자로 만들어 제공한다. <풍향고2>는 유석진, 지석진, 양세찬, 이성민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여행 내용을 담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시행착오 하나 없고, 외국어를 잘하는 등장인물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내가 왜 저들이 재미있어 하는 걸 구경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질투로 배가 살살 아프다. 그럴 땐 어김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반면 어떤 여행 프로그램을 볼 땐, 내가 그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다. <풍향고2>는 단연 후자였다.

제5의 멤버가 된 시청자

유튜브 채널 뜬뜬 '풍향고2'안테나플러스

No 앱, No 예약 여행은 내가 대학 다녔을 때 으레 하던 여행이라 쉽게 몰입이 됐다. 대화가 많고 시간 순서대로 구성한 편집 덕분이겠지만, 내가 그들의 여행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식 먹는 장면을 저렇게 길게 넣을 일인가 싶다가도 지석진이 마신 아인슈페너 맛을 상상하고, 조식만 세 그릇째 비우는 그들에게 공감한다. 시간을 휙휙 뛰어넘지 않는 호흡 덕에, 나도 그 안에 들어가 그들이 놀랄 때 같이 놀라고, 감탄할 때 같이 감탄하고 "Only reservation(예약만)"이라는 말에는 같이 실망하며 출연진들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마치 <풍향고2>의 멤버인 양 자꾸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추위에 계속 돌아다니다간 입 돌아가지. 카페로 피신해야지."
"유럽에선 조식 오픈런 해야지. 시차가 안 맞는 건데 부지런해 보이는 게 함정. 큭큭."
"부다페스트에서 왜 세체니 온천 안 가는 거야? 추우니까 세체니 온천 가라고~"

한 마디씩 거들다가 순간 웃음이 나왔다. 모두<풍향고2>의 다섯 번째 멤버 같았다. 남편은 멤버 중 지석진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큰 형님, 그리고 웃음 요소 투척 담당이었다. 이성민과 유재석도 그가 있어 훨씬 더 편하게 여행을 즐겼다고 이야기했다.

유튜브 채널 뜬뜬 '풍향고2'안테나플러스

지석진은 나이가 많지만 권위적이지 않아 모든 멤버들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줬다. 또 여행이 느슨해지지 않게 틈틈이 웃음 요소를 투척했다. 특히 난 그의 기세 영어가 마음에 들었다. 조식 시간이 궁금한 지석진은 망설임 없이 프런트에 전화해서는 "Breakfast time What time?"이라고 물었다. 맛집을 소개해 준 현지인에게 "Why no line?"이라고 물었다. "맛집인데 왜 줄 서 있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묻고 싶은 걸 그렇게 표현했는데도 현지인은 다 알아들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무척이나 망설이고 시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래, 중요한 건 기세다! 올해는 기세로 무슨 일이든 가열차게 밀고 나가자고 다짐했다.

양세찬의 '시그니처'란 말도 기억에 남는다. 양세찬은 음료 주문을 잘못해서 형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아, 이 음료가 여기 시그니처예요" 하는 말로 상황을 모면했고, 길을 잘못 인도해 형들이 고개를 갸웃할 때, "이쪽 길이 시그니처 길이에요"라는 말로 형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시그니처'는 마법의 단어였다. 부모님과 여행할 때, '시그니처'란 단어를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지석진뿐 아니라 네 멤버의 조화도 아주 좋았다. 배우 이성민은 지도를 잘 보고, 양세찬은 몸 쓰는 일을 하며 형들을 잘 챙기고, 유재석은 소통을 잘했다. 네 명 모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알아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따뜻하게 대해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인생을 <풍향고2> 여행처럼

유튜브 채널 뜬뜬 '풍향고2'안테나플러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 <풍향고2> 여행처럼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작은 친절이나 행운에도 크게 감사하고, 힘든 일은 혼자 끙끙대지 않고 함께 해결해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일도 그저 하나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나도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고, 그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지 조회수 폭발의 비결을 알려고 클릭했는데 며칠간 연달아 쭉 보고 말았다. 시간순으로 배열한 빠르지 않은 편집과 풍부한 대사 장면 덕에 시청자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관심의 비결은 출연자였던 것 같다. 서로 돋보일 수 있게 배려하고, 힘든 일을 함께 해결할 때 그들의 케미가 폭발했다.

마지막회 댓글에는 '풍향고2 뒤풀이 영상을 빨리 올려달라', '다시 1화부터 보러 간다', '이런 영상을 제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이 많았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그들도 <풍향고2> 멤버들과 함께 여행한 다섯 번째 멤버였음이 확실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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