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아동과 시설아동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처방률은 시설관리의 편의가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집단 시설에서의 양육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지양되고 폐기된 보호 방식이다.
김지영
시설이 아이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하나의 통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025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시설거주 아동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약물 처방률은 23.3~27.8%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일반 아동의 처방률은 0.94~1.5%였다. 시설 아동의 처방률이 일반 아동의 15~20배라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연구진은 처방률이 높은 이유로 '대안의 부재'를 꼽았다. 일반 가정의 부모라면 운동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시설에서는 의사가 약물치료를 권고하면 그것이 곧 결정이 된다. 보호자가 없다는 것은, 아이의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고 치료 옵션을 비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시설에서 산만한 아이는 집단생활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존재로 인식된다. 약은 빠르고, 저렴하며, 관리가 용이하다. 아이의 정서가 아니라 집단 시설의 관리 방식이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다. 약물처방을 받은 시설아동의 입소 사유는 학대(32.5%), 가정해체(18.7%), 빈곤·실직(16.7%), 유기(9.4%) 순이었다. 이 아이들이 산만하고 충동적인 것은 뇌의 문제가 아니라 시설에서 삶의 문제였을 수 있다.
공무원의 도덕성 아닌 구조의 문제
취재 과정에서 연결된 한 통의 전화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일시보호소 담당자와의 통화였다. 일시보호소는 보호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이다. 심의위원회가 가정위탁이나 입양 등 최적의 보호 방향을 결정하는 동안, 아이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어야 할 공간이다.
그런데 취재 당시 그 일시보호소는 아이를 인계받은 지 24시간 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양육시설로 아이들을 떠넘기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왜 보호조치 결정 전에 아이를 시설로 보내느냐, 근거가 무엇이냐."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답했다.
"제가요, 여기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고요. 선임자가 하던 대로 그저 따라 할 뿐입니다."
법도, 매뉴얼도, 아이의 권리도 아니었다. 그냥 선임자가 하던 대로였다. 그것이 이 나라가 부모 없는 아이를 다뤄온 방식의 정직한 고백이었다. 이 문제는 개별 공무원의 도덕성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아동복지 담당 공무원은 1인당 수십 명의 보호아동 사례를 담당한다.
인력은 부족하고, 가정위탁 연계는 시간이 걸리며, 시설은 바로 연락이 된다. 위원회를 열려면 위원을 소집하고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더군다나 2년 단위로 순환되는 공무원 인사 체계는 업무를 분절하고 전문성을 단절시킨다. 시설 중심의 아동복지체계는 공무원에게는 너무 편리한 업무처리 방식이었다.
게다가 아동복지심의위원회 운영 현황을 지자체별로 공시하거나 점검하는 시스템은 없었다. 국가는 오랫동안 이 구조를 방치했다. 2020년 이후로 아동복지 공공성 강화 이후 심의위원회 산하에 사례결정위원회를 두면서 개최 주기가 짧아졌지만 여전히 지역별 편차가 존재하고 시설보호 중심의 보호조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동 인권 분야에서는 여전히 후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시설 보호율과 대한민국의 시설 보호율은 아직 격차가 크다.
김지영
202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보호종료아동의 50%가 극단적 선택을 고려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일반 청년의 같은 응답이 2.4%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절망적인 수치다.
2022년 광주에서 보육원 출신 20대 청년 두 명이 일주일 새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명은 자립 정착금 700만 원을 다 쓴 뒤 삶의 벼랑 끝에 몰렸고, 다른 한 명은 중도 퇴소를 이유로 자립 지원금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다. 시설을 나온 아이에게 주어지는 정착금 최소 1000만 원과 월 50만 원의 자립 수당은 주거비와 생활비를 동시에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 아니다.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은 처음부터 낯설고 적대적이다. 더군다나 낯선 세상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어수룩한 그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의 쉬운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두 청년의 죽음은 잠깐 사회적 공분을 불렀지만, 그뿐이었다.
시설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들은 묻는다.
"내 삶은 왜 거기에서 출발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많은 경우 정해진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시보호소에서 충분히 보호되고 입양이나 가정위탁이 먼저 검토됐더라면, 위원회가 제대로 열렸더라면. 다른 삶의 경로가 가능했을 아이들이었다. 국가가 방치한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된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삶에 절실했던, 법이 요구하는 절차를 건너뛰는 데는 전화 한 통으로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5분이 한 아이의 20년을 결정했다. 알고 보면 너무 허망한,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의 무게 앞에서, 국가는 지금이라도 대답해야 한다.
오늘도 우리나라 우리 땅 어딘가에서 한 아이가 부모를 잃고 운다. 그 아이가 지금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 곧이어 만나게 될 공무원이 누구인지에 따라 아이의 남은 평생의 삶이 결정된다. 그 결정이 무엇인지는 당장이라도 지역별 보호조치 결과를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차이가 말하는 지역 간 편차가 그 아이의 운명을 가른다.
아동최우선의 이익이라는 웅장한 표어는 공적기관에서 발행한 보호아동매뉴얼 곳곳에 선명하게 적혀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부모 없는 아이에게 이 표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헌 구호다.
국제간 모든 아동 관련 협약은 아동의 가정보호를 최우선의 가치로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시설 보호율은 20~25% 내외다. 그것도 대부분은 일시보호 개념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시설 보호율은 60%로 OECD 평균보다 세배가 높은 극강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국가와의 또 다른 차이는 우리나라의 시설은 대부분 장기양육시설이라는 점이다. 통계적으로 시설 아이들은 그 안에서 10.9년을 산다. 아동복지 선진국에서는 경악할 만한 수치다. 경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아동 인권 분야에서는 여전히 후진국이다. 유감스럽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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