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시내 한 슈퍼마켓의 한국음식 코너에 진열된 상품.
김용국
일본 슈퍼마켓에서는 한국 음식이나 반찬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김치나 조미김 같은 반찬, 고추장, 고춧가루 등의 양념은 광고 문구로 '한국 직송'을 내건다. 한국에서 건너온 것을 최고로 친다는 뜻이다. 한국 라면이나 나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미용에도 관심 많다더니, '한국 미용 크리닉'을 내건 피부숍도 눈에 띄었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도 한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사는 도요나카시만 해도 순두부, 삼겹살, 삼계탕, 김치찌개 등을 파는 식당이 적지 않다. 김밥, 떡볶이, 라면 등 분식집도 인기가 있다. 다만, 일본에서 한국과 같은 수준의 맛이나 가격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한식을 '서민음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김밥 한 줄에 1000엔(9300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특히 체인점의 경우 가격도 비싸고 맛이 한국과 다른 경우도 많다. 단적인 예로 한국식 치킨의 경우, 같은 양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보다 2~3배 비싼 듯했다. 맛도 기대했던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굳이 애써 한식당을 찾지는 않는다. 대신 숙소에는 저렴(!)한 한국 (컵)라면만 쌓여가고 있다.

▲한국 치킨은 일본에서도 인기다. 이 치킨집은 저녁에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김용국
일본에 온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호기심에 전철로 20분 거리인 다카라즈카시에 간 적이 있다. 외진 도시로 볼거리라곤 데즈카 오사무(아톰의 원작자) 기념관과 가극으로 유명한 다카라즈카 대극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철역 근처 상가에서 우연히 한식당 간판을 보았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더니, 배경음악으로 한국 무명가수의 가요 메들리가 흘러나왔고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부침개와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양은 적었지만 입에 맞았다(일본은 추가 반찬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일본에서 처음 먹은 한식이었다. 여자가수가 트로트풍으로 부르는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를 듣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기후시의 영화관에는 4개의 상영관이 있었는데 한국 영화가 2개나 걸려있었다. 강하늘, 유해준 주연의 <야당>과 류승용 주연의 <아마존 활명수>.
김용국
우호적인 분위기는 오사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기후시를 방문했을 때 영화관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상영관이 4개였는데 한국 영화가 2개나 걸려있었다. 강하늘, 유해준 주연의 <야당>과 류승용 주연의 <아마존 활명수>. 기후시에 한국인 방문객이 많지 않고, 두 영화 모두 개봉 시기가 꽤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놀라웠다. 한국 영화 수요가 그만큼 있다는 뜻이리라.
히로시마에 갔을 땐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맛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요리하던 사장은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차리고 연신 관심과 호의를 표했다. 그러곤 방문을 환영한다며 주문한 오코노미야키에 소스로 '감사합니다'라고 써주었다. 그는 "내가 쓸 줄 아는 유일한 한국말"이라며 웃어 보였다.

▲히로시마의 한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 사장이 요리 도중 소스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써주었다.
김용국
재일조선인 차별에 관심 갖는 일본인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마냥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불편한 현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최근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도요나카시 국제교류회관에서 보았다. 지하철 입구에서 우연히 한글 영화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였다. 제목은 <소리여 모여라>. 재일교포 3세 박영이 감독이 만든,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과 이에 맞선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회는 도요나카시 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하는 행사였다.
영화를 상영한 23일은 '일왕탄신일'이라는 공휴일로 연휴 기간이었다. 이런 날 이런 영화를 보기 위해 일본인이 올까 싶었다. 나라도 자리를 채워야겠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상영회에는 100명 가깝게 참석했다. 다들 일본어로 대화 나누는 것으로 보아 거의 일본인인 듯했다.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본 오사카부 도요나카시 도요나카역 인근에 영화 <소리여 모여라> 포스터가 게시되어 있다. 재일교포 3세 박영이 감독이 만든,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실상과 이에 맞선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용국
영화는 일본 내 조선학교의 무상화 배제 및 차별 속에서 정체성과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재일동포와 그들과 연대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선학교는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들이 우리말과 민족 정체성 교육 등을 위해 세운 민족학교를 말한다. 일본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조선학교를 무상교육 대상에서 제외하고 지방자치단체도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 "지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는 논리였다. 조선학교는 일본 5개 지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전부 패소했다.
영화는 이러한 차별이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당시 일본 정부와 언론은 '조선인이 혼란을 틈타 폭동을 조장한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식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일본 군경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가세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당시 최소 6000명 이상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고하게 희생을 당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차별과 혐오
과거처럼 눈에 띄는 폭력적인 방식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조선학교 지원 중단이나 혐한 시위와 같은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문제는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기 전에는 풀기 어렵다. 답답한 현실 속에 이런 차별을 멈추기 위해 연대와 지원의 손길을 보내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영화에 나오는 조선인학교 소송 지원 변호인단, 조선학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통학길을 계속 지켜준 일본인들,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지원하고 조선학교에 쌀을 제공한 후원자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학교의 차별에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2월 24일 오사카부 도요나카시 도요나카 국제교류 협회 주최로 열린 영화 <소리여 모여라> 상영회에서 출연자들이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김용국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사가현의 사가조선초급학교 김륭태 교장은 "조선학교의 커리큘럼은 일본 교육과정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코리안'으로서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한글, 역사, 지리가 포함된 정도"라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교육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처음 본 영화가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할 줄은 몰랐다. 영화를 보며 차별, 연대, 양심, 민족, 정체성을 떠올렸다. <소리여 모여라>가 다루는 이야기는 특정 국가나 민족의 차별을 넘어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관람 도중 안타까운 현실에 한탄하거나 훌쩍이는 관객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날 함께 한 일본인들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일본 사회 속 차별을 깨뜨리는 큰 힘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요즘 대학가를 걷다 보니 곳곳에 매화가 피고 있다.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일본에도,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한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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