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4 14:17최종 업데이트 26.02.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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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에서 시민들이 담장에 올라가 있다.권우성

작년 3월 서울 종로의 한 바에서 북토크 행사를 진행했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덕에 행사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우연히 바의 사장님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보통 술집들은 연말이 대목인데 2024년 겨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건 그 사장님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당시는 대한민국 전체가 심란한 시기였다. 12월 3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은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내란을 일으켰다. 국회에서 한번 무산되었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은 12월이 절반 가까이 지난 14일에서야 겨우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윤석열은 순순히 조사에 응하기는커녕 관저에 숨어 모든 법적 조치를 거부한 채 대통령경호처를 사병처럼 부렸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새해부터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새해 결심 삼아 술을 끊겠다고 나서면 모를까. 바 사장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술집들은 연말에 바짝 벌어놓고 다음 해 초반을 버텨야 한다고. 특히나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대목 장사가 정말 중요하다고.

하지만 알다시피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회식을 하거나 송년회를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란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고 자제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실제로 불안했고 혼란스러웠고 연말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술집이 텅텅 비었다는 소식이 뉴스에 오를 정도였다.

바 사장님은 장사를 하며 이런저런 고비를 넘겨왔지만 정말로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의 밖에서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온 사람들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3월이었다.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

지난 19일 내란범죄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형량은 무기징역. 사실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사형 선고가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한국은 사형 선고는 해도 집행을 하지 않는 실질적 폐지 국가이다. 그리고 윤석열이 실제로 사형을 당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개인적인 생각인데 한순간의 죽음이 과연 제대로 된 죗값이 될 수 있을지 늘 의문이다).

다만 윤석열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꾀하고 군 병력으로 시민들을 위협한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주제에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땅히 내란죄에 규정된 최고형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사형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는 윤석열에게 내란의 우두머리에게 내릴 수 있는 법정 최소형량인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물론 최소형량이긴 해도 감옥에서 평생을 살라는 형을 내린 셈이니 무게가 가볍진 않다. 때문에 형량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까지 불만족스럽진 않다.

문제는 이유다.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에는 수긍할 부분도 있지만 내란의 인정 기준에 대한 판단 등 문제가 될 부분도 전반에 존재했다. 이에 대해선 많은 전문가들이 비판을 했으니 따로 더 언급하진 않겠다.

내가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양형 감경 사유였다. 이제는 소위 '촉법노년'이냐는 비판까지 등장한 '고령', 사실상 감경이 아니라 가중처벌 사유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장기간 공무원으로 봉직' 등이 감경 사유로 등장했다.

삶의 위협을 받은 사람들이 정말 없었을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일인 19일 서울 용산 전자랜드 가전 매장에 진열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선고 공판 생중계를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그중에서도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계획은 어설펐으며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자제했다는 주장이 감경 사유로 등장한 것에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내란 계획은 독재를 염두하고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되어 왔다는 게 여러 언론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물리적 폭력 역시 윤석열이 자제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찰의 소극적 대응의 결과이지 실제로는 실탄이 반출되었고 선관위에 출동한 군인들은 야구방망이와 망치를 지참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변수가 없었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과 윤석열을 비교하며 1심에서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전두환의 경우 내란을 통해 끔찍한 규모의 사상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윤석열은 직접적인 사상자를 만들지 않았으니 전두환보다는 낮은 형량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수긍할 만한 추측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나는 여기에 조금은 다른 의견을 덧붙여 보고 싶다. 12월 3일 내란의 밤, 경찰과 군대가 직접적으로 만든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계엄 선포가 단 하룻밤의 일이었다고 해도 내란의 여파는 12월 4일 이후로도 이어졌다. 오히려 윤석열이 경호원을 사병처럼 거느리며 관저에 숨어 물리적 충돌도 불사할 모습을 보이며 내란이 불러온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삶의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죄에 대한 책임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의 사장님만이 아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12월 연말 큰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그전에도 경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많은 이들이 연말 장사를 회생의 기회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사회가 혼란해지고 그 여파로 사람들이 지갑을 닫아버린 것에 다른 드러나 있는 원인이 있나.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을 제외하고.

누군가는 폐업의 기로에 서게 되었거나 거리에 나앉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을 리가 만무하고 이는 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을지 알 수 없다.

자영업자만이 아니다. 1980년 5.17 내란으로 아픈 역사를 이미 겪은 광주시민 중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도 많았다. 한밤중에 헬기가 국회에 날아드는 것을 보고 공포를 느낀 이들도 많았다. 이 사람들에게 내란은 어떤 유독한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남겼을까.

죄에 대한 책임은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의도와 행위뿐만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정확하게 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직접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양형 사유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존중한다. 다만 그 '피해'의 범위를 조금 더 다면적이고 넓게 보기를 요청하고 싶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서만 아니었다 뿐이지 내란의 영향으로 인해 말 그대로 생의 위기에 처했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나는 작년 3월 암울했던 겨울을 이야기하며 힘들어했던 바 사장님의 어두운 표정을 기억한다. 내란의 여파 속에서 그보다 더 어두운 표정을 향해 등 떠밀린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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