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안중근 장군이 이토를 격살한 중국 하얼빈역과 기념관, 유묵이 전시된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
김종훈
거사 직후 안중근이 보여준 독보적 면모
안중근은 조사나 재판 외에 집필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거사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에 담았다. 수감 중에도 그는 이런 식의 투쟁을 이어갔다. 이제 그는 총 쏘는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만난 일본인들과의 접촉도 메시지 발산의 기회로 삼았다. 유묵 증정이 그런 수단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체포돼 1910년 3월 26일 순국한 그는 마지막 한 달 동안 이런 유묵을 집중적으로 생산해냈다. 탄핵된 임시대통령 이승만에 뒤이어 1925년 3월 제2대 임시대통령이 된 역사학자 박은식은 1915년 상하이에서 펴낸 <한국통사>에 이렇게 썼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생각이 한가하여 혹은 시를 읊으면서 스스로를 굳세게 하였으며, '인심유위 도심유미(人心惟危 道心惟微)라는 글을 써서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였다. 또 <동양평화론>이라는긴 글을 써서 자기 주장을 발표하였다. 일본인 또한 그의 의를 흠모하여 그의 필적을 구하는 자가 많았는데, 모두 응해주고 글씨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2백여 폭이나 되었다. 아! 안중근의 여유 있음이여."
<서경> 대우모(大禹謨) 편에 나오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라는 구절은 안중근이 순국 전날에 선사한 유묵에 나온다. 1910년 3월 30일자 <황성신문> '안중근의 절필'은 "안중근은 집형(執刑) 전일 여순옥리(獄裏)에셔 일(一) 일본인에게 절필로 서증(書贈)한 팔개 자(字)가 여좌(如左)하다더라"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여순감옥 내에서 한 일본인에게 마지막으로 증정한 여덟 글자가 왼쪽과 같다면서 '인심도위 도심유미'를 보여줬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인심유위 도심유미'가 안중근의 최후 유묵이다.
<서경> 해설서인 <서경집전>은 도심은 의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도심은 밝히기는 어렵고 어두워지기는 쉬우므로 은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후가 임박한 안중근은 어차피 위태로운 인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심마저 은미한 세상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덟 글자에 담아 일본인에게 선사했다.
<한국근현대사연구> 2023년 제104집에 실린 도진순 창원대 교수의 논문 '안중근의 근배(謹拜) 유묵과 사카이 요시아키 경시'에 따르면, 안중근은 자신을 취조한 사카이에게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침략정책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도다" 등이 적힌 유묵을 선사했다.
또 "장부는 죽더라도 마음이 쇠와 같이 굳건하며"가 적힌 유묵도 선사했다. 일본 정부에 신속히 보고될 수밖에 없는 이런 유묵들은 그가 의거를 일으킨 세계사적 배경과 더불어 죽음을 불사하는 태도를 일본 당국에 알릴 수 있는 메시지들이었다.
안중근이 쓴 그런 유묵들에서는 "경자 삼월 어(於)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는 글귀와 더불어 무명지가 짧은 그의 수인(手印)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순국한 마지막 달, 그가 순국한 공간와 더불어, 항일투쟁 의지를 불태우며 손가락을 훼손하는 단지동맹에 참여한 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들이다. 매우 강렬한 항일 선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돌아온 '빈이무첨 부이무교'의 경우에는 잔글씨가 깨알 같이 적혀 있다. 이 부분은 안중근이 쓴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의 출처가 <논어> 학이(學而) 편이라는 것, 뤼순소학교 교사 히시다 마사모토가 입수했다는 것 등이 적혀 있다. 안중근과 히시다 사이에 중간 매개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묵을 보면, 첫 번째 이(而)보다 두 번째 '이'를 좀더 흘려 썼음을 알 수 있다. 무(無) 역시 그렇다. "아! 안중근의 여유 있음이여"라는 박은식의 감탄처럼, 죽음을 앞둔 그달 3월에 안중근은 붓을 들고 그런 여유도 과시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쏜 총알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인 네 명의 몸에 박혔지만, 그가 쏜 2백여 발의 유묵들은 훨씬 많은 당대인과 후세 사람들의 가슴에 박혔다. 이 유묵들은 지금도 수많은 가슴을 자극하며 안중근의 신념과 의지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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