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5 16:53최종 업데이트 26.02.2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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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모습. AI생성 이미지.오마이뉴스

최근 장례식장 폐업이 속출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 원인을 뉴스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가족 구성이 변화하며 조문객이 감소했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결정타가 되었다고요. 핵가족화된 이후부터 꾸준히 조문객이 감소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아예 조문객을 받지 못하게 되니 '가족장'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조문객을 받지 않다 보니 빈소를 마련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도 이런 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어쩔 수 없는 이유뿐 아니라 장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크다는 것의 방증이겠지요.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상담센터인 나눔과나눔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나의 장례식을 부탁해'는 '사전 장례 의향서'를 작성하며 자신의 장례식을 디자인해 보고, 자연스럽게 현대 한국 사회의 장례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는 워크숍입니다. 이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자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장례식은 의미 없이 돈만 들어가는 허례허식인 것 같아요. 제 장례는 최대한 돈 들이지 않고 검소하게 했으면 해요. 그런 의미에서 빈소도 필요 없습니다."

참여자들은 우리가 흔히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삼일장에서 의미를 못 찾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는 참여자는 아예 "장례식 자체가 무의미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례는 어쩌다 의미를 잃은 걸까?

왜 사람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장례 문화를 허례허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걸까요? 여기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장례 의례라는 영역을 여태껏 시장에 맡겨왔기 때문일 겁니다.

시장은 장례 의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상품화해서 가격표를 달아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시장은 수익을 가장 우선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문제는 이것이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만났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장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제가 '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처음 던졌던 질문이 "자신의 장례식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인 이유입니다.

죽음과 장례를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는 결국 대안적인 장례 의례에 대한 상이 없는 상태로 의례의 시장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장례 의례에 대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민도, 국가도 아닌 시장뿐입니다.

결국 장례 의례를 치르려면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대표되는 시장의 상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오롯이 개인의 몫입니다. 일부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장제급여 80만 원과 화장장의 화장료 감면 혜택 등을 제외한다면 공공의 지원은 없습니다. 하지만 80만 원의 장제급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장만 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지요.

결국 시장의 소비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계속해서 청구되는 요금들을 정산하다 보니 장례가 끝나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장례식은 허례허식이고, 무의미하다"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이런 경험을 했을 겁니다. 장례를 의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로 경험한 것입니다.

정말 장례는 무의미할까?

반면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 참여한 사별자들은 공영장례에서 진행되는 의례를 두고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단순히 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관대해지는 걸까요?

물론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는 무상 장례입니다. 덕분에 공영장례는 상품이 아니라 의례로써 사별자에게 제공됩니다.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상담센터는 장례 의례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별자와 미리 연락해서 원하는 바를 물어봅니다. 원하는 종교 의례가 있는지, 영정으로 올릴 사진이 있는지 등을 말이지요. 그리고 빈소에서는 끊임없이 지금 진행되는 의례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서울시는 '무연고 사망자'의 애도 받을 권리와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를 위해 공영장례를 제공합니다. 사별자에게 원하는 바를 묻고, 끊임없이 의례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그가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상품이 아닌 의례로 장례를 경험한 사별자들은 "덕분에 고인과 잘 작별할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조금 거칠게 결론을 내리자면, 장례를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상술한 것처럼 의례가 아니라 소비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장례를 다시 의례로 되돌리려면

'나의 장례식을 부탁해' 워크숍에 참여해 워크시트를 작성 중인 시민나눔과나눔

상품이 아닌 의례로 장례를 되돌리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장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안적인 장례를 시도하고, 제시하는 상조 회사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이 모른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는 죽음과 장례를 터부시하고, 장례 의례에 대해 별다른 상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탈상품화만이 답은 아닙니다. '나의 장례식을 부탁해' 워크숍을 진행한 후 각자가 원하는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참여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내가 무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나를 떠나보낼 사람들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알게 되어서 좋았다"라고요.

심지어 워크숍을 시작할 때 "장례는 허례허식이다"라고 말했던 참여자도 끄트머리에는 비슷한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얘기 어디 가서 못하는데,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워크숍 말미의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하고 대안적 장례의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참여자들은 그 아이디어의 구현을 위해 어떤 상품을 이용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그러니까 탈상품화만큼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장례 의례에 대한 상을 고르게 가지는 것입니다. 시민과 국가, 시장이 고르게 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죽음과 장례에 대해 더 이상 터부시하지 않고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장례는 상품이 아닌 의례로 자연스레 되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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