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카카오빈 국가별 생산량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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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카카오 농가에서는 매년 약 500만 톤의 카카오빈이 생산된다.[4] 최대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36%)와 가나(10%)가 전 세계 생산량의 약 46%를 차지하고 에콰도르(9%)와 카메룬(7%)이 뒤를 이었다. 생산된 카카오빈의 3분의 1 이상은 유럽에서 코코아 매스와 코코아버터, 코코아파우더 등 초콜릿 원료로 가공된다. 초콜릿 제품의 주요 가공지인 네덜란드에서만 60만 톤, 즉 전체 수확량의 12%가 가공되고 스위스는 약 5만 7000톤의 카카오빈을 가공하는데 전 세계 카카오빈 생산량의 약 1%에 해당한다.[5]
지난 40년 동안 카카오빈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생산된 카카오빈 대부분(최대 95%)이 국제 상품 시장에서 거래된다. 카카오빈 시장은 정치적 불확실성, 기후 변화, 생산 과잉과 생산 부족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 2016~2017년 풍작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카카오빈 시장은 이후 상승세로 전환되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감소가 가격 급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6]
최근 초콜릿 가격 구조를 바꾼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국제 카카오빈 가격 급등이다. 전 세계 카카오빈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지난 몇 년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었다. 기록적인 폭우로 카카오 열매에 검은 꼬투리병이 확산됐고 이어진 가뭄은 카카오 새싹 팽창병(CSSV, Cacao swollen shoot virus)을 퍼뜨리며 생산 기반을 약화했다.[7] 이 병은 치료가 어려워 감염된 나무를 제거하고 새로운 묘목을 심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 심은 카카오 나무는 초기 수년은 생산성이 낮고, 기후 스트레스에 취약해 단기간에 생산량을 회복하기 어렵다.[8]
국제코코아기구(ICCO)에 따르면 2023~24년도 전 세계 카카오 총생산량은 436만8000톤으로 전년도 501만6000톤 대비 12.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 재고는 176만4000톤에서 127만 톤으로 28% 줄어 생산과 재고가 동시에 감소하며 공급 여력이 크게 약화했다. 생산 감소의 중심에는 역시 서아프리카가 있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대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비롯한 서아프리카가 전 세계 카카오 생산의 60% 이상을 담당했다. 특정 지역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이 국가들의 작황 부진은 곧 글로벌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9]
기후 분석 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의 지난 10년의 일일 최고 기온 분석 결과,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카카오 주요 수확기(10~3월)에 기후 변화로 매년 최소 3주 이상 32°C를 넘는 고온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고온은 카카오나무의 최적 생육 온도 범위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기후 변화로 카메룬의 주요 작물 재배 기간에 연간 32°C를 넘는 기간이 2주 이상이었다. 2024년에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의 카카오 생산 지역 중 71%에서 32°C를 넘는 날이 6주 이상이었다.
카카오나무는 32℃ 이상에서 생육이 둔화하며 고온이 지속되면 열매가 익기 전에 마르거나 병들어 수확량이 감소한다.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은 열대 우림에서 잘 자라는 카카오나무는 더불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과 잎 마름 증상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지구 평균 기온이 2.1℃만 올라도 2050년엔 카카오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고착할 가능성을 의미한다.[11]
세계 카카오 공급이 빠르게 줄어들자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공급이 급감한 상황에서 인도와 중국 등 신흥국의 초콜릿 소비가 늘면서 카카오빈 가격은 2024년 12월 16~19일 톤당 1만2500달러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3년 대비 세 배, 2022년과 비교해도 두 배 수준 이상이다.
가격 급등 이후의 조정과 '가격 고착화'
국제 카카오빈 선물 가격이 급등 이후 빠르게 하락세로 전환됐다. 1월 21일 미국 ICE 선물거래소에서 카카오빈 선물 가격이 톤당 약 4400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며, 2024년 12월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 대비 약 60%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 말 톤당 6000달러 수준과 비교해도 크게 낮아진 가격이다.[12]
선물 가격 하락의 배경에는 서아프리카 주요 생산지의 작황 회복 기대가 있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등 주요 카카오 생산 지역에서 기상 여건이 개선되면서 생산 회복 가능성이 커졌고 남미 등 대체 생산지의 공급 확대 전망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현재 카카오빈 가격은 여전히 역사적 평균의 두 배보다 높은 상태이며, 최근 하락세는 공급 문제의 완전히 해소라기보다 급등 이후 나타난 조정 국면으로 해석된다.[13]
카카오빈 가격 급등이 초콜릿 가격 상승의 출발점이었다면, 최근 초콜릿 가격을 지탱하는 요인은 공급망 전반의 비용 상승이다. 원재료 가격이 일부 하락했음에도 소비자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콜릿 제조에는 카카오빈뿐 아니라 설탕, 유제품, 식물성 유지, 포장재, 에너지, 운송 등 다양한 비용 요소가 투입되는데, 최근 몇 년 이 비용이 동시에 올랐다. 기후 변화로 인한 농산물 생산 불안, 에너지 가격 변동, 물류비 증가, 지정학적 긴장 등이 공급망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렸다.[14]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 역시 원재료뿐 아니라 에너지·운송·포장·인건비 등 공급망 전반에서 비용 상승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비용 요소가 동시에 상승하면서 초콜릿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됐다.[15]
초코플레이션,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변화

▲1964/65~2024/25, 연간 카카오(빈) 가격(왼쪽) 및 생산량(오른쪽) 추이. SwissPlatform for Sustainable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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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카카오빈 가격 급등과 공급망 비용 상승은 실제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몇 년 초콜릿 가격은 일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오르며 이른바 '초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초콜릿 가격 상승세는 뚜렷하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상황에서 일부 대표 초콜릿 제품의 평균 판매 가격은 1년 사이 20~30% 가까이 상승했다.
초콜릿 가격은 일시적인 급등이 아니라 장기간 상승 흐름을 이어왔다. 국제 카카오빈 가격 급등과 환율 상승, 에너지 비용 증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제과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잇달아 인상했다. 일부 제품은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내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통 현장에서 캐릭터 굿즈 중심 구성, 비초콜릿 디저트 확대 등으로 체감된다.
아이러니는 가격 급등이 카카오 농가의 소득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정무역 인터내셔널이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격 상승과 소득 분포 개선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농가는 여전히 생활임금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조사 결과 극빈 농가 비율은 2020년 36%에서 2024년 17%로 감소했고, 전체 농가의 51%가 빈곤선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생활임금 이상을 벌어들이는 농가는 9%에 그쳤다. 10가구 중 9가구는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거나 근근이 농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소작농의 상황은 더욱 취약하다. 소작농의 연평균 소득은 약 953유로로 생활임금 기준인 약 4770유로에 크게 못 미쳤다. 생산량과 판매가격은 토지 소유 농가와 비슷하지만 수익의 약 3분의 1만 가져가는 구조와 낮은 생산성 때문에 소득 격차가 발생한다.
보고서는 농가 수취가격 상승이 소득 개선에 일정한 효과를 보였지만 기후 변화와 병충해, 생산 비용 증가 등 구조적 요인 때문에 가격 상승만으로는 농가의 생활 안정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농민들은 기후 변화와 카카오 새싹 팽창병을 생산성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농가 소득이 안정되지 않는 현실은 초콜릿 공급망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카카오 산업의 오래된 문제, 아동노동
기후위기와 공급망 불안이 초콜릿 산업을 흔들고 있지만 이 산업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카카오 농장에서의 아동노동이다.
전 세계 카카오 생산의 중심인 서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많은 아동이 카카오 농장에서 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어린이 노동자가 농약 살포나 중장비 사용 같은 위험한 작업에 동원된다. 이러한 문제는 국제 사회와 초콜릿 기업들이 수십 년 동안 해결을 시도한 대표적인 공급망 인권 문제였다.[17]
그러나 최근 미국 법원에서 초콜릿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된 아동노동 관련 소송이 기각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구조 속에서 기업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현실이 다시 드러났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고, 중간 유통 단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에서는 특정 기업의 책임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18]
카카오 농가의 낮은 소득 구조 역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많은 농민이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수준의 소득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빈곤 구조가 아동노동을 이용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최근 들어 아동노동 문제는 기후위기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된다. 카카오 생산량 감소는 농가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노동력 확보를 위해 값싼 아동 노동력을 끌어들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늘나무 식재, 토양 복원, 병충해 대응 등 장기적인 농업 투자가 필요하지만, 소득이 불안정한 농민들에게 이러한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산성 저하와 빈곤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아동노동 문제는 해결의 전기를 맞기보다 언제든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20] 어쩌면 카카오가 기후위기로 멸종하는 순간에야 아동노동이 근절될 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는 카카오 농장의 나무에서 시작해 공장과 물류망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린 작은 초콜릿 조각까지 이어진다. 달콤함의 여정 전체가 기후와 노동, 그리고 불안정한 생산 구조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녹아내리는 것은 초콜릿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의 균형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에겐 초콜릿의 달콤함 대신 그런 것을 먹던 시대가 있었다는 씁쓸한 기억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글: 이윤진 SDG경영연구소장,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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