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지난 2025년 7월 1일, 오타와 르브레통 플랫츠에서 열린 캐나다 데이 기념 행사를 즐기고 있다. (Spencer Colby/The Canadian Press via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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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이러한 극단의 주장에 대해 정치적 제약이 가능하고, 한편으로는 거대 정당의 정체성을 제어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건강한 시민의식'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특히 다문화주의를 국가 노선으로 선택한 나라인 만큼, 국민들의 인식 또한 다양한 정치적 의견 표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관대하다. 하지만 폭력과 혐오 중심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등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에 대해서는 명백히 거부한다.
이는 총기 소지 가능 국가이면서도, 미국에 비해 총기 사고가 현저히 적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나 우발적 범행, 그리고 감정적 대응이 주된 수단인 극우는 산발적이고 비조직적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정당 정치 영역을 포함한 캐나다 사회에서 정치적 세력으로서 수용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캐나다에서는 극우적 주장을 받아 줄 보수층의 정체성이 미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문화 국가로서의 캐나다 사회는 모두가 스스로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대상이나 집단을 지목하여 몰아세우지 않는다. 이로 인해 보수적 지지층 또한 이민자 출신을 포함하여 종교, 인종, 지역 등 이질적인 성향이 혼재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아무리 보수정당이나 보수 정치인이 미국과 같이 극단적인 혐오나 선동을 선택할 경우, 소수의 지지는 얻을지 모르겠지만 다수의 지지가 이탈할 것을 염려해야 한다. 이것이 다문화주의의 폐지를 주장하는 인민당이 대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캐나다 정부 차원에서도 일부 극우 단체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캐나다 반혐오 네트워크(Canadian Anti-Hate Network)와 같은 비영리 기구를 통해 조직적으로 극우 사상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응하는 활동도 전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및 주류 언론의 강도 높은 검증이 이뤄진다. 정치인이 극단적 발언을 할 경우, 개인은 물론 정당 전체의 이미지가 붕괴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캐나다는 미국과는 달리 '(논란을 일으켜서 여론을 만드는)포퓰리즘 공식'이 잘 먹히지 않는 사회다. 특히 정당은 공격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도층 이탈을 염려해야 하고, 언론·시민사회의 검증과 반발로 인해 선거에서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보수당 지도부도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는 경향
이렇듯 캐나다 시민사회가 스스로의 건강한 상태를 지켜내려고 하는 배경에는, 한순간의 폐단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어서다. 캐나다는 국가나 개인의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예민한 경향이 있다. 이는 공동체의 발전과 안보를 위해 개개인이 많은 세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정서적 피해는 결국 시민사회와 국민 모두가 짊어진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 차원에서도 득보다 실이 많은 행위에 대해서는 자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반이민정서가 있더라도, 그것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직장 동료나 이웃을 사실상 적으로 규정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런 평가를 받게 되면 사회 활동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다소 소심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선거에서 발생하는 사표에 대해서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있더라도 유권자는 현실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이러한 비용이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소수 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막는 요소가 되고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한편, 최근 캐나다의 정치사회적 현실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캐나다 극우는 태생적으로 뿌리가 같은 미국의 극우와 이념적인 결을 같이 해왔다. 보수 개신교 성향, 총기 옹호, 반정부/반엘리트주의, 문화전쟁 등... 캐나다에선 미국과 같은 막무가내식 주장이나 행동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미국식이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틀어진 것이, 오히려 캐나다의 극우 확장을 누르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자유당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보수당 집권 혹은 극우화 가능성이 열린 상황에서, 미국의 트럼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며 마크 카니의 자유당 정부가 재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얼마 전 마크 카니 총리의 다보스포럼 연설에 캐나다인이 열광하면서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것을 보더라도(관련 기사:
트럼프가 저지른 3가지 '섬뜩한 사건'... 9년 전에 이미 경고했다), 캐나다의 극우는 미국과의 이념적 공유를 유지하는 한 당분간 독자적인 힘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캐나다에서 극우는 발 붙이지 못할까? 장담할 수 없어
앞서 기술한 이유로 아직 캐나다의 극우는 강력한 정당이나 대중운동이 아니라 느슨한 네트워크의 형태로 존재해 왔다. 잠재력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회 전반의 거부감과 제도적 장벽 때문에 주류로 확장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각적인 정치 성향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불만과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면, 캐나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극단으로의 치우침 보다는 중도에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완벽하게 완성된 사회와 제도는 없다. 트럼프가 집권하고 있는 미국이나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의 한국을 통해, 제도권 내 거대 정당이라 하더라도 극우 세력에 의해 잠식될 수 있음을 목도한 바 있다. 캐나다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질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 불안, 이민 갈등, 정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언제든 그 틈은 열릴 것이다.
결국 한 사회의 미래와 건전성은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발현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꾸준히 경계하고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 상식과 합리성에 끊임없이 수렴하는 사회적 관심과 행동만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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