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진보 성향 야 4당 대표 및 원내대표들이 지난11일 국회 의안과에 무투표 당선 방지 및 한 선거구 특정 정당 싹쓸이 방지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인 조국혁신당 정춘생 최고위원,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연합뉴스
선거는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을 주민에게 공약으로 약속하고 선택 받는 절차다. 제대로 의정활동을 못 펼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게 해서 국민주권을 간접적으로 실현한다. 그러나 무투표 당선의 만연은 주민에게 아무런 약속도, 호소도 해보지 않고, 심판도 받아 보지 않은 정치인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책임과 권한을 자임하도록 만든다.
의원들이 국민으로부터 선택되지 않으면, 누가 선택할까? 형식적으로는 지역위원회나 당원협의회에서 공천하지만, 사실상 지역 국회의원, 국회의원이 없는 정당은 지역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이 선택한다. 2인 선거구가 다수인 조건에서 주민이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 혹은 당협위원장의 선택이 지방정치의 구성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풀뿌리 지방자치가 중앙 정치의 완전한 하부구조가 된다. 기초의원이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은 동네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할 행사에서도 정치인의 의전이 강화되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치적을 홍보하는 지방의원의 충성 경쟁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거대 양당 구조든, 무투표 당선자든 결국 국민의 선택이라는 항변도 일리는 있다. 어차피 다른 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면, 선거가 치러졌을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선거 비용 문제부터가 요상하다.
선거가 다가오면, 국가는 각 정당에 선거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계산법은 복잡하지만, 큰 정당에는 많은 보조금을, 작은 정당에는 적은 보조금을 주거나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국민적 지지가 많은 정당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당들은 선거가 끝나면 '보전금'이라는 이름의 지원을 또 받는다.
선거 보전금은 10% 이상 득표한 후보에게 선거 비용의 절반을, 15% 이상을 득표한 후보에게 선거 비용 전체를 보전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선거 전에는 선거 비용으로 쓰라고 보조금을 주고, 선거가 끝나면 선거 비용을 썼다고 보전금을 또 준다고? 가난한 정당은 선거를 한 번 치르면 빚더미에 주저앉는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큰 정당들은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기며 더 부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존 정당과는 무관하지만, 평상시 주민을 열심히 만나고 동네 정치를 일군 사람이 있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설령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정당의 이점을 누리면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정당법은 오로지 전국 정당만 허용하고, 동네 정치만을 위한 정당은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정당을 만들려면 200명 이상의 발기인, 5개 이상의 특별시나 광역시, 도에 시·도당 설립, 각 시·도당에서 1천 명 이상의 당원 확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엄격한 창당 조건을 찾기 어렵다.
명분은 지역주의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아도 지역주의는 이미 견고하다. 오히려 풀뿌리 지역정당이 가능해지면, 영호남 패권 정당의 기반을 허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2023년 헌법재판소 역시 9명 중 5명이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결했지만, 위헌 확정에 필요한 6명을 채우지 못했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기성 정당으로서는 득이 될 것이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한국 정당 체제는 거대 양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점을 누리는 정당들이 선거구를 획정하고 경쟁의 룰을 만든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한 명씩 공천하는 2인 선거구에 소수정당이나 동네 일꾼이 출마해 승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설령 3인 이상의 선거구가 있더라도, 1-가, 1-나 식의 '복수 공천'을 통해 지지표를 나눈다. 후보자만 수십 명이 달하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온 관심이 쏠리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좋은 동네 정치인을 직접 찾아 골라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돈 좀 있고, 힘 좀 있는 사람이 의원 배지도 한번 달아보고 싶다면?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거대 정당에 줄을 대서 공천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천의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요구하는 풍토가 쉽게 자라난다. 마치 바퀴벌레가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것처럼.
물론 동네 정치, 풀뿌리 정치를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기초의원도 분명 존재하고 공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도 있다. 공천헌금을 받더라도 이것이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재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비공식적 거래는 범죄일 뿐이고, 이런 일이 만연할수록 소신 있고 깨끗한 정치인의 활동은 더 어려워진다.
정치개혁, 도대체 어디로?

▲진주정치개혁연대는 지난 1월 8일 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란정당 심판, 진주 정치세력 교체, 민주적 지방자치 실현”을 강조했다.
윤성효
2024년 12월 3일 이후 우리는 단지 '내란 척결'만을 외치지 않았고, 사회대개혁이라는 슬로건을 항상 붙였다. 부정한 권력을 심판하면서 만들어진 더 나은 사회의 열망이 이내 실망과 절망으로 이어진 경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개혁만이 불법 비상계엄과 같은 퇴행이 반복되지 않게 만들 근본적 처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으로 우리 사회는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이견과 논쟁은 있어도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만큼은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성과 의지를 읽기 어렵다. 여전히 '내란 척결'은 유효한 과제지만, 2인 선거구와 이로 인한 무투표 당선자의 양산, 혼란스러운 복수 공천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구조라면 내란 수괴가 법적 심판을 받았더라도, 최소한 기초의회의 약 절반은 여전히 내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채워 나갈 것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전북 지역 선거구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새로운 선거구 획정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시간은 2월 19일이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감감무소식이다. 특위 내에서도 2인 선거구 문제가 거론되었고, 소수정당들이 무투표 당선 방지법을 공동 발의했지만, 큰 정당들의 관심과 의지가 없는 한, 이 문제가 바로잡힐 것 같지 않다.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개혁이란 것이 가능할까? 눈에 띈 바퀴벌레만 잡으면, 벽 속의 수십 마리가 자연스레 사라질까? 아닐 것이다. 지금 이런 문제를 해결할 권력을 가진 이들이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벽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바퀴벌레가 꿈틀거릴 것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지방선거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사회대개혁이라는 슬로건에 맞는 정치개혁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절대 향하지 않는 개혁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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