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국제영화제 축제장으로 가는 길 중 하나는 아직 공사 중이다. 멀리 베를리날레 팔라스트가 보인다.
고정희
그런데 그 옆길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영화제 개막에 맞춰 밤샘 작업이라도 해서 도로를 닦아놓았을 한국의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화려한 레드 카펫으로 향하는 길이 공사장 차단막에 막힌 풍경. 누군가에겐 미완의 해이함으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이 도시의 정직한 모습이었다. 스타들이 오면 왔지 밤새워 공사를 마쳐야 할 이유는 없다는 시공사와 완공을 강요하지 못하는 시 담당관의 동등한 관계. 갑과 을이 없는 도시.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베를린의 얼굴이다.
베를린은 지금 두 갈래로 찢겨 갈등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법과 효율의 이름으로 개인을 압살하는 차가운 권위주의가 다시 박동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너저분한 공사장을 옆에 두고 예술과 인간의 존엄을 토론하는 뜨거운 민주주의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전히 문화예술의 영향력이 이 도시의 심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치 시대에는 오직 차갑고 잔인한 얼굴만이 존재했지만, 지금의 베를린은 국가가 인권을 외면할 때 광장에 모여 질문을 던지는 시민들이 있다.
내가 베를린을 아주 저버릴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이 도시의 미래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이유는 바로 제복 뒤에서도 미소 지을 줄 아는 그 인간적인 느슨함과 자율성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때로 우리를 배신하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여전히 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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