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3 09:43최종 업데이트 26.02.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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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사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확정된 법원 판결도 헌법재판소가 심판할 수 있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재판소원제도가 사실상 4심제를 초래해 헌법에 위반된다면서 소송 남발 등의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낸 사실이 보도됐다.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3심 제도와 상소제도를 통해 그동안 법원의 오심이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제어됐다면, 재판소원제를 신설하라는 요구가 이처럼 오래도록 제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데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도 작용하고 있다.

법원의 오심이 꼭 오판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오심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오심을 내는 판사들도 있었다.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의 공안사건 조작을 완성시켜준 것이 검찰의 기소와 공소유지만은 아니다. 재판부도 그에 맞게 판결을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사형으로 내몰았던 과거의 판결들이 최근 들어 재심 법정에서 손쉽게 뒤집히는 것은 법원이 독재정권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너무나 허술한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정권이 협박하는데 무슨 수로 배겨내느냐고 호소하는 것은 법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런 경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사직서 제도다. 법관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데도 직을 고수하는 것은 세상을 해롭게 하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과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직에 있는 사람에게 고도의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판소원처럼 제3의 기구가 법원의 확정판결을 심판하는 제도가 있다면, 뻔히 알면서도 엉터리 판결을 내리는 일이 당연히 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이 부당한 재판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은 데는 한국 법원에 대한 견제 장치의 부족도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피고인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이고 그나마 그것도 가혹행위나 강요에 의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면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이 상식이 형사소송법 제310조에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중대한 사건임에도 졸속으로 재판"

1969년 7월 3일 자 <경향신문> 기사 "이수근 사형집행"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69년 5월 10일 당시의 형사소송법 제310조도 똑같았다. 그런데도 그날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6부 판사들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자백을 근거로 전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에게 유죄, 그것도 사형을 선고했다.

이수근은 판문점에서 40여 발의 총알을 뚫고 남하했고, 중앙정보부가 1년간 조사했는데도 위장귀순이라는 증거가 없었다. 또 간첩의 표식인 암호명이나 난수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중립국으로 떠나고자 했던 이수근을 위장귀순자 겸 이중간첩으로 몰아 생명을 박탈했다. 이수근의 진짜 죄목은 박정희 정권의 호의를 배신하고 한국을 떠나고자 했던 일종의 괘씸죄였다. 이것이 법원의 고의적 오판에 의해 '죽을죄'로 확정됐다.

이 재판은 이수근의 자백에 의존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이수근 위장간첩 사건' 편은 "수사 및 판결은 이수근의 임의성 내지 신빙성 없는 자백에 의존"했다고 말한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자백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수근은 법정에 나와 자백과 상반되는 진술을 했다. 그런데도 재판부 판사 3명은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위 보고서는 "재판 과정에서 그러한 일관성 없는 의심스러운 자백에 대한 확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형식적 질문과 변론만 있었고, 중대한 사건임에도 졸속으로 재판이 종결되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정보부는 1년간 관찰한 끝에 위장귀순이 아니라 숙청에 대비한 망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을 기초로 그를 1급 판단관으로 채용했다. 상식적인 재판부라면 중정이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를 확인했어야 한다.

그러나 중정이 그 결론을 내린 근거 자료는 법정에 제출되지도 않았고 재판부도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위 보고서는 "숙청을 피해 북한을 탈출하였다는 초기 진술서가 수사기록에 편철되지 않은 채 제외되었고 위장귀순이었다는 진술서로 대체되었다"고 기술한다.

"재판은 요식행위에 불과"

1980년 8월 14일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내란음모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대중 피고인 등 24명이 첫 공판을 받고 있다.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1980년 5월 17일 밤중에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계엄군에게 연행된 김대중은 남산의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갇혔다. <김대중 자서전> 제1권에 의하면, 7월 10일 그를 방문한 이학봉 합동수사단장은 "재판은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라며 "협조하면 살고 거부하면 죽는 것입니다"라는 말로 진짜 판사가 누구인지를 강조했다.

이 재판은 이학봉의 예고대로 진행됐다. 내란음모를 다루는 중대 사건인데도 변호인선임권이 쉽사리 침해됐다. 고명섭 <한겨레> 논설위원의 <이희호 평전>에 따르면, 김대중을 비롯한 공동피고인 24명이 변호인으로 선임하고자 했던 변호사들은 구속을 당하거나 영업정지를 받았다. 그래서 이 재판은 국선변호인의 참여하에 진행됐다.

김대중처럼 영향력도 크고 경제력도 갖춘 인물이 다른 사건도 아니고 내란음모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리 없다는 점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나 고등군법회의는 물론이고 대법원도 변호인조력권 침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이 주재하는 재판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요식행위였다.

더군다나 이 재판에서는 국선변호인들이 검사와 한편이 되어 피고인들을 공격했다. <김대중 자서전>은 이 때문에 "피고와 변호사 사이에 삿대질과 고성이 오갔다"고 말한다. 이 정도로 변호인 조력권이 침해됐는데도 재판부는 방관했다.

변호인 중 하나인 소종팔은 정말로 피고를 옹호했다. 자서전은 "의기롭게 따지던 소 변호사는 재판 중에 쫓겨났다"고 말한다. 피고를 옹호하는 변호인을 못마땅해하는 판사들에게서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리 없었다.

재판부는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2014년 2월 13일 '부림사건'이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오른쪽부터 고호석, 최준영, 설동일, 이진걸, 노재열씨,정민규

변호사 노무현의 양심을 자극해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이끈 1981년 부림사건의 재판부도 심상치 않았다. 부산 지역 노동자·학생·교사들이 구성한 독서모임이 반국가단체로 둔갑되고 이들의 독서 토론이 정부 전복 음모로 포장된 이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따르면, 우연히 사건을 맡았다가 피고인들의 고문당한 몰골을 보고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노무현은 법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변론으로 공안기관의 불법행위를 폭로했다. 그래서 방청석이 울음바다가 됐다.

그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운명이다>는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도 표정이 일그러졌다"고 말한다. 판사의 표정이 바뀐 것은 법정이 소란해져서가 아니다. 노무현은 재판장이 자기 방에서 "그놈들 말하는 거 좀 보시오"라며 "완전히 빨갱이들 아닙니까?"라며 피고인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고 알려준다. 재판부의 생각이 검사와 똑같았던 것이다.

김대중·노무현과 이수근의 재판을 다룬 판사들이 어쩌다 판단 착오로 오심을 낸 것은 아니다. 그 판사들은 누가 봐도 뻔한 사건을 법률과 양심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재판했다. 이런 판사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독재정권들도 마음 놓고 반대 세력을 재판에 넘길 수 있었다.

재판소원제도가 신설된다 해도 오심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판결이 외부 기관의 심사를 받게 되면 누구라도 좀 더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재판소원은 국민들이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내란음모니 간첩이니 하는 황당한 음모를 뒤집어쓰지 않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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