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1 12:02최종 업데이트 26.02.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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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총선 당일 자민당 본부에서 당선된 후보자의 이름 위에 빨간 종이 장미를 올려놓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의 2026년 중의원 총선 결과는 정권 안정을 훨씬 넘어 국가 전략의 재편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사건이다. 자민당이 단독으로 3분의 2를 넘긴 이례적 의석 집중은, 일본 정치가 '무엇을 시도할 수 있는 상태'에 들어섰음을 뜻한다.

3분의 2선 돌파와 함께, 이번 총선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는 개헌이다. 물론 일본의 개헌은 중의원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참의원 3분의 2와 국민투표라는 두 개의 높은 문턱이 남아 있다.

참의원에서는 자민당이 3분의 2는 물론 과반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국민들의 정치적 저관여가 자민당 장기 집권을 뒷받침해 왔지만, 개헌을 직접 묻는 국민투표는 그와 같은 자동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또 하나의 높은 문턱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 정치의 핵심은 "곧 개헌하느냐"가 아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개헌이 당장 어렵다는 사실을 일본의 권력 핵심이 어떻게 우회하고 있는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총선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통치 권력에서 헌정 권력으로의 이동

2014년 8월 15일 도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9주년을 맞아 전몰자 추모를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국회의원들. 왼쪽에 다카이치 사나에 중의원 의원이 있다.AP/연합뉴스

이 변화가 일본만의 특수한 일탈은 아니다.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질서는 규범과 제도 중심에서 힘과 억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22년 채택한 세 가지 국가안보 문서 (국가안보전략NSS, 국가방위전략NDS, 방위력정비계획DBP)에서 "전후 최엄중 안보 환경"을 선언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환경 속에서 일본의 보수, 특히 극우 핵심 세력은 자신들이 품어온 오래된 기억을 기회로 인식하며 적극적으로 호출하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남은 기억은 침략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주변을 움직이고 판을 짜던 제국에 대한 향수다.

이 욕망은 지금 두 갈래 경로로 현실 정치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개헌을 통한 정상국가 서사다. 자위대를 군대로 명문화하고, 전후 체제가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선언하는 길이다.

개헌은 극우 세력에게 정책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마침내 패전국이라는 지위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상징적 언어다. 군사력의 실질보다, 그 사실을 헌법에 적어 넣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의미가 더 크다.

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분명하다. 중의원에서 확보한 압도적 의석을 발판으로 개헌 논의를 공식 의제로 끌어올리고, 사회 전반에 '이제는 이야기해도 되는 문제'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당장 결론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헌이 상시적으로 논의되는 상태만 유지된다면 정치적 목적은 상당 부분 달성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개헌은 이처럼 상징성이 큰 만큼, 동시에 매우 불안정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논의가 본격화되는 순간, 그것은 제도 개편을 넘어 전후 일본이 오랫동안 관리해 온 역사 인식과 정체성을 한꺼번에 건드리는 문제로 바뀐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반발과 외부의 시선이 동시에 정치의 전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시간 또한 개헌의 편이 아니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사회적 저항이 커지고, 시간을 끌면 정치적 동력이 빠진다. 추진과 유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정 자체가, 극우 세력이 기대하는 '역사적 복권'의 서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개헌은 언제나 말해지지만, 쉽게 완주 되지는 않는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정치적 비용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이 경로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상징적이지만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극우 세력에게 개헌은 반드시 도달해야 할 결승선이라기보다, 계속 열어두어야 할 의제에 가깝다. 사회의 경계선을 조금씩 이동시키고, '가능하다'는 감각을 확산시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효과는 발생한다. 개헌은 목표이면서 동시에 '압박 장치'다.

개헌이 어려운 이유

2015년 10월1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정박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의 함선에 욱일기가 게양된 모습.연합뉴스

두 번째 갈래는 방산 수출 전환이다. 겉으로는 산업 정책과 동맹 기여, 공급망 안정 전략처럼 보이지만, 이 흐름은 이미 문서로 고정돼 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발표한 세 문서 (NSS, NDS, DBP)에서 방위산업 기반을 전력의 일부로 규정하고, 수출과 국제협력을 그 유지 조건으로 명시했다.

이 경로의 핵심은 절차가 아니라 속도다. 방산 수출은 헌법 개정도, 국민투표도 필요 없다. 행정부의 판단과 법, 지침 조정만으로 추진할 수 있고, 정치적 저항도 상대적으로 작다. 그래서 일본은 개헌이라는 상징적 목표를 전면에 내세운 채, 실제로는 방산 확산을 통해 군사적 역할을 먼저 넓혀갈 수 있다.

이번 총선의 효과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헌을 곧바로 완주하기보다, 개헌을 항상 가능한 의제로 유지하며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그 사이 방산 수출과 군사 협력을 가속하는 전략이다. 개헌이 헌정 질서를 흔드는 문제라면, 방산은 그 질서를 건드리지 않은 채 현실을 바꾸는 수단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비핵 3원칙도 조용히 압력을 받는다. '비보유'와 '비제조'가 산업과 규범의 문제라면, '비반입'은 운용과 해석의 문제다. 방산 수출과 동맹 운용이 확대될수록, 일본 영토와 주변에서 핵 억지 자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점점 불분명해진다. 원칙을 공식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실질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방산 수출 전환은 군국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군국주의적 상상력이 현실 정치로 옮겨가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헌법을 고치지 않아도, 군대를 명문화하지 않아도, 일본은 전쟁을 전제로 한 국가 운영의 조건을 이미 문서와 정책으로 쌓아가고 있다. '개헌이 상징의 언어라면, 방산은 이미 작동 중인 실천'이다.

헌법을 거치지 않는 조용한 우회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2025년 10월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래서 이 두 번째 경로는 빠르고, 조용하며, 동시에 훨씬 덜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본이 어디까지 이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가장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개헌 경로와 방산 경로는 다른 듯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일본을 침략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 자체를, 전시를 전제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과거의 군국주의를 복원하지 않고, 그와 닮은 결과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피지배와 전쟁의 기억을 즉각 호출하고, 그 기억은 곧 영토와 주권의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독도 문제는 일본의 군사적 한 걸음이 어떤 정치적 의미로 번역되는지를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한일 간 직접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한국에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은 충돌 회피가 아니라 주권의 행사다. 일본의 군사 정상화가 안보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것이 한국의 역사 인식과 영토 주권을 훼손하는 방향이라면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이 우선이다.

문제는 협력 자체가 아니라, 협력이 어떤 조건에서 이뤄지느냐다. 방산 경쟁, 핵 담론, 역사 문제가 동시에 자극될 경우 외교는 실무 이전에 여론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유화가 아니라 기준이다.

안보 협력은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주권 사안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외면한 채 군사적 정상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전제로 협력을 제안한다면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주권을 침범하는 군사 협력은 한일 관계뿐 아니라 어떤 국제관계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조용히 진행되는 복원

일본은 군국주의를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군국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했던 국가 조건을 하나씩 복원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그 방향을 새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정치적 면허를 부여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일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후 일본이 스스로 설정했던 질서를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해체하는 과정이다. 한국이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분명해야 한다. 관계 개선은 주권 위에서만 가능하며, 그 순서가 뒤바뀌는 순간 외교는 협력이 아니라 양보로 읽히게 된다. 조용히 진행되지만, 그래서 더 경계해야 할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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