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5 19:28최종 업데이트 26.02.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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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교체되고, 코스피 5000을 돌파하면서 맞이한 설날이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합니다. 시민기자들이 전하는 설날 서민 민심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 깊이 새겨듣길 바랍니다.[편집자말]
오랫동안 알아 온 동료 상인이 새해 인사를 겸하는 술자리에서 시장을 뜨겠다고 했다. AI생성 이미지오마이뉴스

"2월까지 하고 폐업하려고요. 매장도 내놨어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네요."

오랫동안 알아 온 동료 상인이 새해 인사를 겸하는 술자리에서 시장을 뜨겠다고 했다. 이십 대 후반에 들어와 쉰을 넘겼으니 3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다.

늙으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하러 귀향하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착잡했다. 코로나 시국에 받은 소상공인 사업자 대출은 다 갚지 못해 폐업 후 개인 빚으로 남겼다고 했다. 퇴직금 한 푼 없이 다달이 갚아야 할 채무를 안고 떠나야 하는 50대 자영업자의 마지막 길. 나는 다를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던 하루였다.

자영업자로 살아온 지 35년이 넘었다.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큰 풍파 없이 가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또 위기다. 산 넘어 산이고, 파도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격이다. 이번에도 잘 넘길 수 있을지, 이번 위기는 어떻게 끝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 그늘에 가려진 자영업

언론에서는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5000을 넘었다고 흥분하고, 반도체 경기가 나라의 살림살이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 줄을 잇는다. 한국 경제는 저평가되어 있으니 지금이라도 주식에 투자하라는 이야기도 넘쳐난다. 그런데 먼 나라 이야기다.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호황으로 주식 시장이 들썩거리지만, 정작 컴퓨터 유통업을 하는 나는 반도체 호황 때문에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컴퓨터 부품 가격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가끔 있었던 일시적인 가격 조정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터센터 등에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생산이 공급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얼마 지나면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게 6개월 전이었고 시장이 요동치는 전조였다. 그때부터 말 그대로 자고 나면 모든 부품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RAM), 저장장치(SSD)가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 특히 메모리의 경우 7만 원대였던 일반적인 DDR5 16GB가 6개월 만에 40만 원을 넘겼다. 거의 6배 가까이 가격이 오른 것이다.

통제될 수 없는 가격 인상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60만 원에 살 수 있었던 컴퓨터는 100만 원을 훌쩍 넘겼고 게임용이나 그래픽용 구성은 200만 원을 넘어 300만 원에 근접했다. 일주일 전에 내어준 견적은 주문이 들어와도 가격을 맞출 수 없어 납품을 취소해야만 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때마다 삼성이나 SK 하이닉스 등 반도체 주식은 큰 폭으로 올랐다. 반도체 주식이 오를수록, 컴퓨터 부품 가격이 폭등할수록 내 매출은 하락 그래프를 그렸다. 반도체 수요 폭발에 힘입은 주식 시장 활황 그림자에 컴퓨터 유통 자영업이 가려진 모양새다. 코로나 시국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담 너머 들려오는 잔칫집 노랫소리

1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코스피 5000p(종가 기준) 돌파’를 축하하며 직원들이 축하행사를 하고 있다.권우성

46년 만에 달성했다는 코스피 5000시대, 코스피 4000 달성 두 달 반 만의 성과이니 자축할 만한 일이다. 전체 한국 증시의 가치가 1980년 대비 50배 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 경제가 크게 성장한 증표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코스피 5000이라는 지표가 국민 모두의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물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자영업자나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주식 시장이 달아올라도 달라진 게 없다. 청년 실업과 내수 경기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설 명절을 앞둔 시장에서 오른 물가에 쩔쩔매는 주부들, 물건이 안 팔린다며 울상 짓는 상인들의 하소연도 달라진 게 없다.

낙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서민 살림살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수혈로 여겨졌던 각종 대출은 또다시 어깨를 짓누르는 짐으로 돌아와 한달 한달 빚 갚기에 벅차다. 벌어야 대출을 갚고 임대료도 내고 생활도 할 수 있는데 그게 말처럼 안 된다. 모두가 생업을 내던지고 주식 시장으로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인데, 요사이 벼락 거지 될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든다.

하지만 그런 처지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주식보다는 땀의 힘을 믿어온 자영업자들, AI와의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위험한 노동과 낮은 임금을 견디는 노동자들에게 코스피 5000은 여전히 담 너머 들려오는 잔칫집 노랫소리일 뿐이다.

경제 지표만 보면 많이 좋아졌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국내외 많은 기관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8~2.0%로 전망했다. 물가 상승률도 2%대로 안정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건설 분야 투자가 위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와 미래 모빌리티 분야를 중심으로 2.0% 내외 투자 상승도 점쳐진다.

성장, 소비, 투자 모두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보자면 수출은 여전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물가는 대폭 올라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투자는 노동 없는 성장을 위한 분야에 집중된다. 서민의 살림살이가 여전히 한겨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기회로 만들 정책 고민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방문해 지역주민들과 상인들을 만났다.청와대

지난 9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주변 통인시장을 방문해 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수출이 회복되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막상 식당에 와서 밥 한 끼 먹어보면 국민들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책 성과는 통계가 아니라 국민 체감으로 확인되어야 된다고도 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국민의 삶을 통계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 코스피 5000을 넘어도 자영업자와 저소득 서민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주식시장 활황과 AI 시대의 환상은 오히려 그늘을 더 어둡게 만들고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부작용도 있다.

수출로 번 돈이, AI 산업으로 커진 경제가, 주식시장의 활황이 어떻게 골목상권과 서민의 가게로 흘러가게 할 것인가 정책적 고민과 배려가 필요하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 적절하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립서비스나, 차던 시계 풀어주고 미소금융을 찾아가라던 대출 문턱 낮추기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동맥경화 같은 '돈'맥경화다. 돌지 않는 돈. 주식과 수출로 번 돈이 노동자 임금으로 시장에 흘러들고, 시장의 돈이 다시 국가 경제와 기업 경제를 살찌우는 선순환 구조의 회복이 시급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AI 시대는 기회일 수도 있고 위기일 수도 있다. 반도체 수요 폭발은 삼성과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주식 시장을 달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턱없이 오른 가격에 위기를 맞고 있는 자영업자도 있고, AI로 대체되는 노동에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도 있다. 모두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정책, 코스피 5000을 달성한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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