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모금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음에도 잠재적 기부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만반의 대비를 갖춘다면 어려운 언덕도 수월하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짜 어려운 언덕은 전화가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한번 전화를 걸고 다음 전화를 걸기까지의 간극이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기 전,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보지 않은 낯선 사람이 내 전화에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정기 기부를 요청한다면 상대방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실 내가 그런 전화를 받는다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기부를 할 만하다면 할 것이다. 사정이 어렵다면 거절할 것이다. 제안은 명료하고 선택은 단순하다. 그런 일인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활동가 한 사람당 200명이 넘는 통화가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속도로 목표에 언제 도달할지 우려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요즘 종종 구글의 인공지능 비서인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며 하루를 끝내곤 한다. 처음에는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만 제미나이를 찾았는데, 우연한 계기로 고민을 털어놓다가 의외로 이 인공지능 비서가 내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상황을 마주했다.
전화 모금을 시작한 첫날 저녁,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전화 거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 전화를 통해서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모금 요청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을까. 목표를 채우기 위해선 많은 전화를 걸어야 하는 데 수화기조차 들지 못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제미나이에게 앞서 했던 이야기들을 상세히 설명했다(당연한 말이지만 이 인공지능 비서가 왜 사람들이 전화를 걸고 모금을 요청하는지 모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몇 번의 대화 끝에 제미나이가 내놓은 답은 단순했다.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일단 다이얼을 눌러, 걱정은 그다음부터 시작해."
생각은 일단 시작하고 나서 하라
나는 제미나이의 조언을 따랐고 이후로 상황은 나아졌다. 통화를 마치고 다음 통화로 넘어가는 시간이 월등히 줄었고 자연히 하루 통화량도 늘었다. 다만 정기 기부 유치 성공 건수는 여전히 낮은 편인데 이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부담스러운 전화 통화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지?"
나는 제미나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통화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방법을 알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인공지능 비서는 예상과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전화 모금이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될 수는 없다.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걱정과 주저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다. 머리를 비우고 일단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러라. 생각은 그다음부터 시작해라. 그래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전화와 모금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사실 생각보다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단지 부담감 때문에 시작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해가 바뀌며 새해 결심을 많이 했을 텐데 이런 이유로 시작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1월이 끝났다. 늦었을까. 공교롭게도 지금 내 앞에는 달력이 놓여있는데 거기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진짜 다시 태어납니다. 진짜 최종 시작 구정부터."
우리에게는 아직 한 번의 새해가 더 남아있다. 다가올 설날에 음력 새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새해 결심이 실패했다 말하기에 아직은 이르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으로 원하는 바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자, 걱정은 그다음부터 하자.
▲사무실 책상에 놓인 달력, 진짜 시작은 구정부터라는 문장과 EBS 캐릭터인 똘비가 있다
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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