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0 07:01최종 업데이트 26.02.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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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당선자 이름 위에 붉은 장미를 붙이며 축하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작년 10월 4일 일본 자민당 총재가 된 다카이치 사나에는 하마터면 총리가 못 될 수도 있었다. 참의원·중의원 의석 모두 과반에 미달하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연립여당인 공명당마저 총리 선거를 앞두고 연정을 이탈했다.

자민당 총재만 되면 일본 총리직은 따놓은 당상이었던 것이 자민당이 출범한 1955년 이후의 공식 같은 것이었다. 세계적 탈냉전 와중에 자민당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1993~1996년 기간과 3명의 민주당 총리가 연달아 배출된 2009~2012년 기간을 제외하면 그랬다.

거의 공식이나 다름없던 그것이 작년 10월에 깨질 수도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자조적이면서도 코믹하게 "자민당 총재가 됐지만 총리는 못할 수도 있는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불쌍한 다카이치입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달 14일 강연회 때 그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랬던 그가 넉달 만인 이달 8일의 중의원 조기총선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뒀다. 중의원 465석 중 3분의 2(310석)를 넘는 316석이 확보됐다. 기존 의석수 198석보다 118석이나 늘어났다. 단일 정당이 중의원에서 3분의 2를 차지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의석 수로만 보면, 그의 리더십이 아베 신조를 넘는다. 이제 '총리를 오래 할 수도 있는 여자'가 됐다.

자민당은 일본 정계의 숙원인 개헌 문제를 중의원 내에서 단독으로 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중의원과 함께 개헌 발의권을 가진 참의원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돼 있다. 그래서 자민당 단독으로 중·참 양원에서 동시에 발의할 수는 없지만, 중의원에서의 압도적 우세를 바탕으로 공동여당인 일본유신회를 포함한 여타 정당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는 있다.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개헌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지구상의 경제침체와 갈등 격화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도널드 트럼프·시진핑·블라디미르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스트롱맨들이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중의원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다카이치 총리도 그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생기게 됐다.

극우세력의 숙원 과제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그가 그 길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총선 승리가 확실시된 시점에 극우세력의 숙원 과제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꺼낸 데서도 느낄 수 있다. 8일 <지지통신>은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은 8일 밤 후지테레비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를 이해시키고자 노력할 의향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환경 정비를 우선시하면서 계속해서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전했다.

야스쿠니 참배를 위한 환경을 정비하겠다는 표현은 <지지통신> 기자의 말이 아니라 다카이치 총리의 말이다. 비슷한 시각에 발행된 <교도통신>에 따르면, 다카이치는 "그런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 정비'라는 절제된 표현이 사용되긴 했지만, 일본 극우가 볼 때는 꽤 희망적인 표현이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저지해온 불리한 환경을 정비하겠다는 의미이므로, 얼마든지 공격적 뉘앙스로 전달될 수 있다.

지금은 사이트 정비 중이라 내용이 확인되지 않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아베 신조의 야스쿠니 참배에 경의를 표하는 글이 실려 있다.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경의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신조는 다른 정치의제는 물론이고 야스쿠니 문제에서도 다카이치의 롤모델이다. 그런 아베 가 통한으로 여기는 것이 있었다. 2006년 9월 26일부터 1년간 이어진 제1차 아베 신조 내각 때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못한 일이다. <아베 신조 회고록>은 이를 "통한의 극치"로 표현한다.

아베는 제2차 아베 내각(2012.12.26.~2020.9.16.)이 출범한 지 1년 만인 2013년 12월 26일에 참배를 강행했다. "저는 이걸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아베는 그날을 회고했다. 다카이치나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가 야스쿠니 참배를 얼마나 신성시하는지가 이 한마디에 묻어 있다.

아베의 참배에 경의를 갖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다카이치 역시 총리의 참배를 당연시한다. 하지만 그는 국제사회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다. 중국의 압박이 거세져 한국과의 협력이 한층 절실한 이 상황에서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관계에 끼칠 영향을 계산하고 있다. 그는 총리로 선출된 작년 10월 21일 이래로 아직까지 야스쿠니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기총선 승리가 확실시되자마자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환경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로써 지지자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야스쿠니 문제로 인한 국제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일본 내에서 제기되는 것들이 있다. 별도의 국립추도시설을 건립하거나,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에서 분리(분사·分祀)해내는 방안 등이다.

별도 시설 건립이 다카이치가 말한 '환경 정비'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 그는 야스쿠니라는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가 별도 시설을 추진하면 당장에 극우의 지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카이치 내각이 공론장에 올릴 가능성

2023년 8월 15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A급 전범을 분사하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그는 A·B·C로 전범을 분류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 "점령 종결 직후 일본 국내에서는 A급·B급·C급을 묻지 않고 전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민 서명이 모여 그 수가 4000만 명에도 도달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썼다. 우리 일본 국민들은 그런 식의 분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표시한 것이다.

또 "정부는 '전범을 국내법상의 범죄자로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통지를 냈습니다"라고도 썼다. 외국이 말하는 전범은 우리 일본이 볼 때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그는 총재 선거를 앞둔 작년 9월 28일의 후보자 TV 토론회 직후에도 분사 반대를 명확히 했다. 이런 그가 A급 전범만 분리하는 방법으로 '환경 정비'를 추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작년 11월 28일에 일본 내각은 'A급 전범이 사면된 것은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국회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입장 표명이지만, 이런 표명은 달리 보면 A급 전범 사면을 마무리할 필요성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카이치 내각이 향후 이 문제를 공론장에 올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환경 정비의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환경 정비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이달 8일의 다카이치 발언에도 언급됐듯이, 국제사회의 반발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북한·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으므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미관계는 금전만으로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으므로 미국을 설득하기가 이전보다 수월하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받아내면 한국 정부도 반대하기가 곤란해지므로, 북·중의 반대를 없애지는 못한다 해도 국제적 반발을 어느 정도 누그러트릴 수 있다.

A급 전범의 사면 문제를 정리하고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면, 다카이치는 스트롱맨의 위상을 굳힐 수 있다. 중의원 3분 2를 확보했으니 당내 리더십만 공고히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가 '환경 정비'에 도전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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