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루이스빌에 있는 <멜라니아> 상영관에서는 <멜라니아> 영화 포스터도 걸려있지 않았다.
이영훈
주말이었던 지난 7일(현지시간) 오후 텍사스주 루이스빌에 있는 <멜라니아> 상영관을 직접 찾아가 봤다. 루이스빌시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공화당 브랜든 길 의원의 지역구로, 2024년 선거에서 약 62%의 득표율로 당선된 공화당 우세 지역이자 이른바 기독교 복음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이날 기자가 주목한 영화 외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공화당 텃밭으로 꼽히는 텍사스에서 여전히 개봉 초반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는지, 아울러 실제로 고령의 단체관람객들이 찾아오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싱거웠다. 미리 예매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관은 텅 비어 있었고 영화가 시작될 무렵 입장한 백인 노부부 4쌍과 중년의 백인 가족 4명이 전부였다.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박수를 치는 등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 없이 조용히 관람하는 분위기였다. 극장 안팎으로 <멜라니아> 영화 포스터도 걸려있지 않아 여기가 텍사스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라운지 의자 덕분에 편하지만 지루한 2시간이 흘러갔다.
영화 <멜라니아>에서 멜라니아 트럼프의 하이힐은 높았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열정적이었지만 아직 모델의 모습을 벗지는 못했다. 멋진 모자를 쓰고 디자이너들의 도움으로 화려한 의상을 제작해 가며 바꿔 입었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고 사람들 앞에서 남편 팔짱을 끼는, 늘 보던 세련된 미국 영부인이었다.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으나 대통령 자리에 오른 남편 때문에 강제로 영부인이 된 인터넷상의 밈처럼 불행한 영부인 모습을 담았으면 차라리 나았으려나? 영화 전체에 끊임없이 깔리는 배경음악으로 감동을 강요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퇴출당했던 브렛 래트너 감독의 야심 찬 복귀작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도, 대통령의 취임식도 모두 영부인을 위한 무대가 되어 버렸다.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버스 정류장에 다큐멘터리 영화 <멜라니아>의 포스터가 훼손된 채 붙어 있다.
AFP 연합뉴스
정치적 선전이라는 비판 속에 개봉한 이 영화는 악재도 겹쳤다. 개봉 무렵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르네 니콜 굿과 알렉스 프레티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에 대한 항의로 일부 시민들이 <멜라니아>의 영화 포스터에 히틀러의 수염이나 악마의 뿔을 그려 넣는가 하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있다는 낙서를 하는 등 여러 차례 포스터 훼손 사건도 있었다.
자신의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 1월 2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멜라니아 트럼프는 희생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염두에 둔 듯 '비폭력,' '통합,' '국경을 넘어온 범죄자들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등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화 말미에서 멜라니아 트럼프는 "어디서 왔든 모든 이는 똑같은 인간"이라고 한다. 이 말이 극단적으로 분열하고 있는 미국에서 얼마나 진심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전 미국으로 건너온 슬로베니아 출신 이민자의 억양을 트럼프 지지자들이 참아내는 것을 보면 멜라니아가 "트럼프가 좋아하는 유일한 이민자"라는 <뉴욕타임스> 설명이 잘 맞아떨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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