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음식점에서 포장해 온 비건 김밥
이현우
돌이켜 보면 단골 가게는 이곳만 있는 게 아니다. 집 주변에도 단골 가게가 있다. 돌솥비빔밥에는 계란을 빼고, 김밥에는 햄과 맛살을 빼달라고 요청한다. 이제는 가게 사장님이 나를 '채식하는 아저씨'로 기억한다. 그 기억에는 약간의 안쓰러움과 걱정이 묻어 있다.
"언제부터 채식하셨어요?"
"고기 먹어야 되는데..."
말로만 걱정만 하셨다면 잔소리로 들었을 텐데 푸짐한 음식을 보면 진심이 느껴진다. 고기를 먹지 않는 만큼 채소를 듬뿍 넣어주시기 때문이다.
김밥이 정말 맛있다. 채소의 식감이 살아있다. 아삭아삭한 당근과 오이, 구수한 우엉까지. 여기에 적당한 밥과 김을 돌돌 말아 참기름으로 마무리한, 최고의 김밥이다. 가득 채워진 채소 때문에 빵빵해진 김밥 한 알이 입안을 가득 채워 아귀아귀 씹다 보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반찬으로 드시려고 만든 시금치 무침도 주셨다. 시골에서 직접 기른 시금치였다. 뿌리까지 그대로 무쳤는데 고소하다며 꼭 맛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동지에 팥시루떡을 나눠주셨던 기억도, 음식을 포장할 때 담근 김치를 주셨던 기억도 선명하다.
이건 서비스가 아니라 '정'이다. 무언가를 주실 때도 "먹어, 먹어!" 이런 느낌이 아니라 "좀 드셔보시겠어요?"라며 선택지를 내민다. 내게는 이런 조심스러운 마음과 음식과 반찬에 담아 전해주시는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가게의 상호명에는 '엄마'가 들어가는데 상호가 정말 잘 어울리는 가게다.
채식으로 열린 단골의 세계
채식 때문에 음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작아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채소를 요리하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고 맛있는 채소 요리도 알게 되었다. 제철나물과 계절별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의 이름도 기억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잊혔던 단골 가게의 존재가 슬며시 내 삶에 다시 들어온 건, 채식 때문이었다. 채식 음식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주 가는 음식점이 생긴 것이다.
나도 사장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내 얼굴 또한 음식점 사장님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채식하는 아저씨로 기억되는 것은 나름 흐뭇한 일이다. 자주 가는 장소에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까.
단골 가게가 생긴 건, 단골을 향한 낭만이나 감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채식을 제공하거나 일련의 협상을 통해서 채식으로 조리가 가능한 음식점만 가게 된 것이다. 익명 속에서 거래만 했던 도시에서 단골이 생기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채식으로 인해 내가 닫았던 세계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동시에 반대편에는 다른 매력을 뽐내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다. 삶은 참 입체적이다. 채식 지향인으로 살아가며 이 사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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