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4 13:35최종 업데이트 26.02.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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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기자말]
매일매일 재밌는 것들이 생겨서 인간의 오늘은 얼핏 재밌다.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의 줄임말)'를 먹고 코코아 가루를 묻힌 채 웃는 얼굴이 유튜브를 줄기차게 장식한다. 그 고소한 식감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달리, 한국의 노동 현실은 잔인할 정도로 단선적이다. 두쫀쿠를 먹거나 안 먹은 것의 유무를 따지는 만큼, 인간을 두 행위로 판가름하니까. 벌거나 혹은 안 벌거나.

나는 2005년 10월 첫 월급을 받았고, 2025년 1월 최근의 월급을 받았다. 고로 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직까지 두쫀쿠를 안 먹었고, 나 스스로를 정기적으로 월급 받는 존재로 여긴다. 두쫀쿠 가격이 내리면 먹을 참이고, 규칙적으로 일하고, 최신 영화와 책을 보는 삶을 모범적인 노동자상으로 여기며 아침에 일어난다.

그러니 나는 나를 제대로 정의할 수 없다. 인간을 무엇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월급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끽하고 싶은 취미사를 빼고 나면 삶이 고통으로 이뤄진 부드러운 소금기둥 같아서. 그것은 퍽, 짜다.

일터에서 '자긍'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업무가 있는 날엔 독감에 걸리고, 오랜 소원을 모처럼 이룬 날에는 가족이 아프다. 진저리치게 평범한 삶의 장면들이다. 행복과 불행은 늘 같이 닥치는데,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짠맛 대신 단맛이 나는 간식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소설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2025년 5월 출간)도 함께.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문학동네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언제나 애매하게 실패하고 드물게 성공하는, 일하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하루를 그린다. 지금 현실에 노동을 다룬 소설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작가집단 '월급사실주의'는 2023년, 소설가 장강명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아프지만 지금 여기, 꼭 필요한 이야기를 쓴다.

월급사실주의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기반으로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쓸 것. 당대 현장을 다루며, 판타지를 쓰지 않을 것. 비정규직, 자영업, 플랫폼, 프리랜서 등을 바탕으로 이들이 소설집을 낸 지 벌써 3년째다. 학습지 교사, 코로나19 시기를 버틴 여행사 직원,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등 '최신의 노동'을 소설가들은 정밀하게 소환한다.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일터에서 자긍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역설적으로 일터에서 자긍을 가져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수반한다. 게임 머니를 팔아 생계를 잇는 청년, 승진이란 단꿈에 젖어 과로하는 대형 슈퍼마켓 파트타이머, 저시력 장애인이자 백화점 지하에서 매장 직원의 근육을 풀어주는 헬스 키퍼 등이 등장해 이 질문으로 치열하게 번민한다.

소설에서 이들은 '자긍' 대신 나의 잉여로움을 마주한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을까?(단편 <일괄 비일괄>)" 의구심을 가지고, 경멸해온 직장 선배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능한 일꾼이 모인 게 아닌, "노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독보적이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모두 고립되어 있는(<둘이라면 유니온>)" 억눌린 자들의 사무실에서 소름을 느낀다. 인물들은 '그것'을 감각하고,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성이 소거된 그곳에 인간이 있다. 월급사실주의는 그 낱낱의 비명을 불러 우리를 세운다.

최선을 다해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싶은 회사원A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2024),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2023)문학동네
몰랐던 일터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2023). 서로 헐뜯고 상처 내며 탈진하는 사람들 내면을 그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2024). 세 번째 출간된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2025)는 '망각'하거나 '자각'하는 노동자 이야기가 폐부를 찌른다.

예소연이 쓴 단편 <아무 사이>에는 돌봄노동을 하는 청년 '희지'가 등장한다. 희지는 온라인 중개업체 '시터닷컴'의 메인 배너를 장식할 만큼 유능한 시니어 시터. 그러나 퇴사를 반복했던 과거를 통과하며 이제 한 직장에 '정착'하고 싶은 인물이다. 간신히 얻은 반지하 보금자리에서 고양이 '영주'와 안락하게 살고 싶은 희지는 진심을 다해 어르신들을 돌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어르신들은 한겨울 빨래와 설거지에 찬물을 쓰게 하고, 휴대폰에 희지를 '아줌마'로 저장한다. 단편 제목대로 '아무 사이'도 아닌 셈이다. 그 현실이 서운해도 희지는 "그 모든 할머니를 빠짐없이 사랑"하려 애쓴다. 변함없이 일하던 어느 날, 희지는 반려묘 키우는 걸 탐탁지 않아하던 집주인의 '퇴거 명령' 문자를 받고 망연자실한다. 그사이 자신이 돌보던 정 많은 '두부 할머니'가 사라지고 희지는 시장과 성당을 돌며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종일 거리를 헤맸지만 두부 할머니를 찾지 못한 희지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이내 희지의 고용주이자 할머니의 며느리인 수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희지는 초조한 마음에 할머니가 자신과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 할머니는 며느리 수영의 집에 있었고, 수영은 희지에게 탄식하며 말한다. "희지 씨, 그러지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요."

그러나 남편이 죽었는데도 희지를 고용하면서까지 시어머니를 돌봐온 수영 역시, 어떤 면에선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온 인물. 서로 더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닌데도 인연을 이어가는 기이함 속에서 희지는 할머니가 놓고 간 휴대폰을 집어든다. 응당 돌보는 사람의 역할 너머, 약점이 잘 드러나는 자기 존재를 딛고, 내일은 '전화번호 외우기'를 연습하자고 할머니에게 말한다. 작가는 한 개인이 일하며 지키고 싶었던 '최소한의 것'이 여전히 유효함을, 그 존엄을 지켜준다.

"나는 문득 할머니의 휴대폰에 내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전화번호부 앱에 들어가보니 '희지'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마치 백치처럼. 유희지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닌 담백한 나의 이름, 희지."
- <아무 사이>(예소연) 중에서,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수록 단편

불편한 후배 덕분에 '망각'을 떨쳐내는 회사원B

돌봄노동자 희지가 타인을 사려깊게 기억하며 관계를 성찰했던 인물이라면, 이은규의 단편 <기획은 좋으나>에 나오는 '나'는 사람 대신 일에 깊이 파묻힌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선배들의 규율과 가르침, 즉 시스템에 잘 스며드는 사람. 시사교양 PD로 일하는 '나'는 선배에게 "돌파력이 있네" 칭찬받으며 '괜찮은 장면' 한 컷을 따내려 탐사보도팀에서 밤낮없이 달리는 워커홀릭이다.

문제는 방송인의 윤리를 '망각'했다는 것. 주인공은 자신과 성향이 다른 후배 '소연'을 팀원으로 맞이하면서 자신이 배워온 것들에 차차 의구심을 갖는다. 기획은 좋으나 기세는 약하다는 평판을 지닌 소연은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 인터뷰 현장에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겠다고 주인공에게 선언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카메라를 챙겨간다. "괜찮은 장면" 한 컷을 따내기 위해서.

둘의 갈등은 '펑' 터진다. 사실 후배에게 영광의 시절을 읊고, 가르치고 싶은 욕망 앞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말문이 막혀왔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노동자를 다룬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소연 앞에서 "기획의 명분"을 운운하고 싶지만, 가슴 한쪽이 홧홧했다. 죽거나 다쳐야 '파업 노동자'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방송가의 세태를 소연은 꿰뚫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일터에서 자신이 왜 방송을 만드는지 후배를 통해 성찰한 주인공은 꼰대 대열에서 무사히 이탈한다.

"돌파하지 않는 것도 우리 일이야.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카메라를 들지 않아야 할 때 들지 않는 것까지도 우리 일이다."
- <기획은 좋으나>(이은규) 중에서

다분히 행동하고, 다분히 열렬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 주인공은 '자각'한다. "카메라를 들지 않고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는 내일을. 주인공은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 '기획은 좋은데 기세는 약한' 후배 소연에게 스며든다. 일터가 세운 규칙이 아니라, '사람'에게로. 그렇게 여덟 소설가 작품에는 망각하고 자각하는 노동자들의 자리 찾기가 각기 다른 모양의 땀방울로 맺혀 있다.

여덟 단편 속 여덟 인물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처음의 질문에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분명한 건 혁명은커녕 조퇴도 힘든 오늘날, 이들은 버티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하고 자기를 변호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이러함'을 왈칵 쏟아낸다는 것. 이들은 인간은 반드시 무엇이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앞에서 그 답을 유보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됨의 증명을 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이 된다. 어쩌면, 챗GPT도 피곤하지 않을까.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창하게 답해야 한다는 기계의 노동 근거는 타당한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불문하고 더 미세해진 과로 사회, 노동소설의 반경을 넓히는 월급사실주의의 다음 소설을 기다린다. 소설은 현실을 구할 수 있다. 적어도 고통의 근거를 같이 추적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 (지은이), 문학동네(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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