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전류리, 공릉천, 조강 유도1950년 한강 항공사진. 한강의 할아버지강 조강 일대 모습이다. 지명은 필자가 적어넣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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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한강의 물길은 독도를 지나 전류리 포구로 이어진다. 이 포구 앞에서 한강 물줄기는 반원형으로 휘감아 솟구치며 한강의 할아버지강 조강으로 흘러간다. 전류리는 이름 그대로 '물이 뒤집혀 흐르는' 곳이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면서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고 충돌한다. 이런 지역을 갯물 수역(기수역)이라고 부르는데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자 황금어장이었다. 전류리 포구의 참게는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라갈 만큼 유명했다.
한강 하구에는 전류리 포구 외에도 걸포, 감암포, 운양포, 양릉포, 소이포, 가석포, 후평포, 마조포, 마근포, 금포, 조강포, 강녕포 등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수많은 포구들이 있었다. 한강 포구는 삶의 이야기를 간직한 한강 문화의 산실이었다. 지면의 제한으로 한강 포구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다루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1950년 한강 항공사진 속에는 포구의 원형과 옛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어 관심을 갖고 볼 일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며 전류리 포구는 안타깝게도 한강 하구의 유일한 포구로 전락하고 그만 한강의 최북단 어장이 되고 말았다.
한강 물줄기가 전류리 포구를 지나 조강 앞에 다다르면 구불구불한 하천이 하나 눈에 띈다. 이 하천은 공릉천(恭陵川)이다. 공릉천은 양주시 사패산에서 발원해 고양과 파주를 경유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긴 물줄기다. 조선 제8대 예종의 왕비 장순황후 한씨(1445~1461, 한명회의 셋째 딸) 무덤인 공릉에서 유래했다.
항공사진 속 공릉천은 마치 이무기가 한강의 용이 되려고 파주의 산줄기 사이를 헤집고 한강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이다. 공릉천이 감싸는 파주(옛 지명은 교하)는 17세기 초 광해군 때 교하천도론의 주무대였다. 또한 20세기 말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가 통일 수도 후보지로 점찍은 곳이기도 했다. 결국 파주는 '용이 못된 이무기'로 그치고 말았다. 필자가 공릉천을 이무기로 본 이유이다.
공릉천 오른쪽으로는 자라 머리를 닮은 오두산이 자라 머리처럼 툭 튀어나왔다. 오두산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는 역사적 요충지임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오두산 옆 큰 물줄기는 강원도 두류산에서 254㎞를 흘러 흘러 내려온 임진강의 하구다. 이곳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다. 두 강이 만난다고 해 '교하(交河)'라고 했고 '두물머리'라고도 불렀다. 조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한강의 또 다른 이름 교하는 이제 할아버지 강 조강의 넓은 품으로 흘러 들어간다.
조강에 떠 있는 유도는 한강의 마침표다. 상상해 보라! 태백산 검룡소에 떨어진 물방울이 494km의 길고 긴 여정을 거쳐 바로 여기에 다다른다. 유도는 한강(조강)의 여의주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유도에서 북한은 바로 손 내밀면 닿을 거리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유도는 삶의 터전이자 아름다운 평화의 섬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 모든 것을 뒤엎었다. 남과 북을 갈랐고, 한강 물줄기마저 갈랐다. 그뿐이랴! 한강의 할아버지강 조강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렸다. 조강은 망각되고 서울의 한강이 한강의 전부인 양 우리의 인식 체계 속에 자리잡게 만들었다.
이제 결론이다. 우리가 꿈꾸는 한강은 서울의 서울에 의한 서울만을 위한 한강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강의 본질이 흐름과 연결이듯이 한강과 조강을 잇고 다시 임진강과 예성강을 이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어야 할 진정한 한강이 아닐까?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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