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3 16:58최종 업데이트 26.02.0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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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 과정을 묘사한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작품위키미디어 공용

1648년 10월, 유럽 각국의 전권대사 100여 명은 현재 독일 땅인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역사적인 서명을 했다. 30년간 독일 지역 일대 3분의 1을 죽인 것으로 기록된, 전쟁의 참혹한 살육을 멈추기 위한 조치였다.

4년에 걸친 지난한 합의 끝에 대표단이 도출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주권의 절대성이었다. 이른바 내정불간섭. 서로의 신념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서로 다른 신과 이념을 가진 집단들이 충돌할 때 물리적 파국을 막아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아슬아슬한 난간 위를 걷고 있다. 지난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미군 특수부대(델타포스)와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했다. 자그마치 300여 년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국제사회가 지켜오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체제는 무려 4세기에 걸친 법적 발전 속에서 현대 국제법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유엔 헌장은 2조를 통해 국가들 사이에 더 높거나 낮은 위계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제2조 1항은 "이 기구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 평등 원칙에 기초한다"고 명시하며, 제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유엔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제2조 7항은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유엔에 부여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다.

국제 판례도 이 원칙을 확인해왔다. 1928년 팔마스 섬 사건(Island of Palmas Case)에서 막스 후버 중재재판관은 주권을 "지구상의 특정 부분에 대해 배타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며 주권이 곧 독립성임을 천명했다. 1986년 니카라과 사건(Nicaragua v. United States)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주권 평등 원칙과 불간섭 의무가 단순한 조약상의 의무가 아니라 국제 관습법임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점은 베스트팔렌의 평화가 종교전쟁의 광기를 멈췄다 한들, 인민들에게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베스트팔렌의 평화는 영주들과 왕들의 평화였지, 통치 대상 인구인 농노들과 빈민들의 평화는 아니었다. 다만 이 계급적인 평화는 기록되거나 언급되기 어려웠다. 주권 불가침의 원칙은 국가에 평화를, 인민에 착각을 선물했다. 권력자들은 비로소 자국 내에서 저지르는 구조적 폭력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가릴 수 있었다.

베스트팔렌의 유산을 이어받은 현대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 국제정치학자 신시아 인로가 말한 전후 여성 게릴라의 삶, 그리고 기지촌 여성의 삶을 생각하더라도, 혹은 한국에서 '국가의 이익'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삶을 보더라도 '평화'는 계급적인 단어였다.

슬로건으로서의 건강

폭력 유형별 사망자 수(1989-2024)Davies, S., Pettersson, T., Sollenberg, M., & Oberg, M. (2025). Organized violence 1989-2024, and the challenges of identifying civilian victims. Journal of Peace Research, 62(4).평화연구저널

그렇기에 비록 '평화'의 긴 시기가 찾아왔다고 한들, 국민국가 내외부를 둘러싼 폭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 패권과 다극체제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던 지난 10여 년, 세계적으로 분쟁 사망자는 연 10만 명 이상을 다시 기록하며 새로운 시기의 경종을 울렸다(Uppsala Conflict Data Program). 이 폭력은 육신의 껍데기를 이고 살아야 하는 모두에게 공포를 불러오는 일이었다. 평화의 다리를 놓는, 슬로건으로서의 '건강'은 어쩌면 이 공포감에서 기인한다.

"건강은 그 고유한 가치와 보편적 수용성 때문에 평화와 연대, 그리고 민중 사이의 이해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1984년 범미보건기구(PAHO)는 중미와 파나마에서 시작한 '평화를 위한 다리로서의 건강(Health as a Bridge for Peace)'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이렇게 내걸었다. 여기서 보듯, '계급적인 평화'를 타파하자는 슬로건으로서도, 전쟁의 포화를 멈추자는 제안으로서도 '건강'은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불려 나왔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마아타 선언이다. 1978년, 구소련 알마아타에 모인 전 세계 134개국 대표들은 "건강은 기본적 인권"임을 천명하며 이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 제10조는 이렇게 쓴다.

"군비 경쟁에 쏟는 자원을 보건과 사회 발전에 돌려야 한다."

하나의 오해는 알마아타 선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데탕트가 무너지고 신냉전의 파고가 높아지던 '폭풍 전야'였다. 오일 쇼크가 세계 경제를 강타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임박해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어떻게 인류는 '모두를 위한 건강'이라는 숭고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천연두 박멸이라는 공통의 과제에 있다. 핵무기를 겨누고 대치하던 두 초강대국이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는 손을 잡을 수 있었다. 1958년 소련의 제안으로 시작되고 미국의 기술과 자금 지원이 결합한 이 프로그램은, 평화를 위한 슬로건으로써 '건강'의 가능성을 증명한 기록이기도 했다.

2026년 오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제 현실은 1978년의 합의는커녕 유엔 헌장이 수립한 원칙조차 위태롭게 하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은 명백히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행사의 성격을 띈다. 1970년 우호관계선언이 확인한 "국가의 인격 존중 의무"와 "정치·사회·경제·문화 체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와도 배치된다.

국제전의 양상을 띤 지역적 분쟁, 학살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의료진이 표적이 되는 전면전 양상은 '평화를 위한 다리로서의 건강'이라는 가능성을 무색하게 만든다. 절대 패권이 사라진 시대, 강대국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강대국 외교정책은 수사적인 책임마저 저버린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야말로, 알마아타 선언이 현시대에 건네는 말의 무게가 있다. 베스트팔렌이 알마아타에 닿으려면, 우리는 인류가 합의한 주권의 원칙 위에, 인민의 자결권,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겹쳐봐야 한다. 주권이 진정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민이 스스로 속한 공동체를 결정할 권리의 토대이며, 그 이유는 인간은 존엄하게 살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가장 밝은 것을

2022년 3월 2일 유엔 긴급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ES-11/1)이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채택되자 참석자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유엔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주권도, 평화도, 그러므로 건강도 모두 위태로운 이 시대에, 시민사회는 어떤 뜻을 가지고 평화를 다시 이끌어낼 수 있는가?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으나, 베스트팔렌이 영토를, 알마아타가 건강을 말했다면, 이제 우리는 두 체제의 한계를 넘어 사람의 삶 자체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몸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정치적 범주다. 건강을 '의료 접근권'으로 단순화하는 정치 말고, 인간의 공통된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국제질서의 근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를 실천의 단위로 옮기면, 국민국가 내부 구성원으로서의 특권을 먼저 누리는 이들이 우선 나설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각국에 전후 법질서를 준수하도록 제동을 걸 수 있고, 여전히 특권적인 접근만이 허용되는 국제기구 활동 기록을 감시, 쉬운 말로 모두와 공유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140여 국가가 '불법'을 규탄했던 사례도 좋은 예시다. 자국 정부에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세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냉소가 가득한 지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던 합의가 실현된 순간으로 알마아타의 역사를 다시 해석해 본다. 30년 전쟁의 한가운데서 베스트팔렌이 가능했고, 신냉전의 전야에 알마아타가 가능했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인류는 가장 밝은 원칙에 합의해 왔다.

그래서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작은 제안을 건넨다. 가장 보편적인 정치적 단위, 인간의 존엄을 국제질서의 기초로 삼자고, 베스트팔렌의 평화가 인민의 평화가 되고, 알마아타의 건강이 모두의 건강이 되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SC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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