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3 06:52최종 업데이트 26.02.03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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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당사자가 카카오의 '디지털접근성책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2022년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꼈다. 장애당사자 접근성 담당을 두는 해외 정보기술(IT)기업들의 정책이 내심 부러웠는데 한국에선 최초 사례였기 때문이다. 카카오 접근성 조직을 이끄는 김혜일님과 IT개발자 장성민님은 한국 웹접근성 역사에서 초기부터 함께 했던 '업계 셀럽'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접근성 책임조직'을 만들어 가는 동시에 2024년부터는 점자달력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노랑 박스 안에 검정 체크 표시'... 이것이 접근성

카카오 접근성 담당 조직의 김혜일씨(왼쪽), 장성민씨홍윤희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혜일 : "카카오에서 장애당사자들을 비롯해 모든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접근성책임자(DAO: Digital Accessibility Officer)로 근무하고 있다. 시각장애 당사자로 저시력자다. 중학생 때 급격히 시력이 나빠졌다. 당시엔 장애학생 편의지원 법규정이 없던 터라 편의지원 자체를 특정학생에 대한 특혜로 판단해 제공하질 않았다(장애학생 편의지원과 관련 법규정은 2008년에 만들어졌다). 스스로 교과서를 확대해 복사하고, 일반 시험지로 시험을 치렀다. 결국 특수학교에서 고교과정을 재이수했다. 고등학교를 6년이나 다닌 셈이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해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고, 특수학교에서 노트 필기나 시험지 확대 등에 보조공학기술을 사용하면서 이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잘 쓸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들어 올렸는데, 엑스비전에서 이걸 보고 연락을 준 게 접근성 전문가로서의 첫 출발이었다. 2009년 엑스비전 테크놀로지에서 스크린리더 기능(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텍스트, 아이콘, 이미지 등의 정보를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 사용자가 음성이나 점자로 들을 수 있도록 변환해 주는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접근성 분야에서 일해왔다."

성민 : "카카오 디지털접근성 조직에서 혜일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25년째 디자이너, 기획자, 프론트엔드 개발자 등으로 잡코리아, SK플래닛, 11번가,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에서 일해왔다. 이곳 카카오에 합류한 지는 3년이 채 안 됐다. 웹 접근성은 2007년 개발자로 일할 때 관심을 갖게 됐다. 웹 표준을 공부하다가 웹접근성에 호기심이 생겼다. 개발자들이 함께 모여 접근성을 연구하던 '한국 웹 접근성 그룹(KWAG)'이라는 국내 유일의 개발자 접근성 커뮤니티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웹접근성 도입의 사회적 가치를 알게 됐다."

- 초기 웹접근성 활동을 하면서 두 분이 만나게 된 건가?

성민 : "2009년 경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를 대상으로 하는 접근성 전문가 양성 교육에서 강의를 할 때 혜일님이 수강하면서 알게 됐다. 혜일님은 장애 당사자이면서 개발자적 마인드가 있고 적극적으로 디지털접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 접근성 확산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게 되었다."

- 두 분 모두 웹접근성 초기 단계부터 이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 오셨는데 웹접근성의 역사를 짚고 가자면?

성민 :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을 시각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과 법제도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에 모였고 2002년 '정보통신 접근성 향상 표준화 포럼(IABF)' 등의 활동과 웹접근성에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모여 '한국 웹 접근성 그룹(KWAG)' 결성 등 접근성 연구 및 인식 제고 활동을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웹접근성 준수가 법제화되면서부터 공공, 민간 분야에 웹접근성 도입에 대한 인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 혜일님은 다음(Daum) 서비스, 링키지랩(카카오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접근성 담당을 하다가 카카오 DAO가 됐다.

혜일 : "2010년대에도 카카오톡 접근성 지원을 했으니 카카오 기업 차원에서도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10년 넘게 한 셈이다. 그러던 중 카카오 본사에 아예 접근성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자는 흐름이 있었고, 당사자 전문가로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아 2022년에 DAO가 됐다."

- 국내 기업 최초 사례인데, 처음 DAO가 만들어졌을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혜일 :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라 초기 세팅이 가장 어려웠다. 가장 공들인 작업은 카카오 공동체 여러 회사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접근성 업무 추진체계를 만드는 거였다. 접근성 관련 조직, 가이드라인, 협업프로세스, 문제대응, 해결방안 등을 포함하고 있다."

- DAO 조직 도입 후 카카오 내 접근성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혜일 : "여러가지가 있지만. 고(高)대비 테마(저시력자도 잘 볼 수 있는 색상과 명도 대비)를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랑 박스 안에 흰색 체크 표시보다는 노랑 박스 안에 검정 체크 표시가 잘 보이는데, 그런 색깔과 명도를 채택하는 거다. 저시력 장애인이 잘 볼 수 있다. 한 번 만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응 범위가 확대되고 사용도 더 편리해졌다.

장애당사자 고객이 쉽게 고객센터를 이용하도록 개선시킨 것도 큰 변화다. 기존 사이트에선 서비스명으로만 문의를 넣을 수 있었고 접근성 관련 문의를 할 수 있는 명시적인 경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카카오 접근성 메뉴를 만들어 접근성 관련 부서로 바로 연결될 수 있게 개선했다. 덕분에 문제상황에 맞는 적절한 답변이 가능하게 되었다. 고객센터 챗봇에서 시각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해 말로 하는 상담 예약 기능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청각장애인 수어 상담 예약을 시범 운영 중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소통적 측면에서의 개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장애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해 개선된 사례가 있는가?

혜일 : "2~3년 전부터 카카오톡을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에 지원하고 있는데 특히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유용하다. 시청각장애인들은 말로도 소통을 할 수 없어 촉수어(손을 만져 소통하는 수어)와 점자로 소통한다. 아예 시청각장애인 정보화교육에 카카오톡 이용 요령 교육이 들어가게 됐다. 이 기능이 생기면서 이전에 불가능했던 온라인 소통, 여러 사람과의 동시 대화가 가능해졌고, 카카오톡이 시청각장애인들의 주 소통 수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카카오톡에서 글씨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고마워' '사랑해' 같은 단어에 맞는 이모티콘이 추천된다. 이게 접근성과 관계가 있다고?

혜일 : "이모티콘에 대체텍스트를 삽입해 시각장애인들도 이모티콘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다. 이렇게 하려면 이모티콘마다 이게 무얼 뜻하는지 대체텍스트를 넣어야 한다. 사실 디지털접근성 측면조직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던 일이었는데 '이모티콘 플러스' 서비스를 만들면서 본격 도입되었다. 이모티콘 담당 부서에서 우리 부서에 서비스 구축 과정에서 접근성을 함께 대응하자는 제안을 주셨다."

성민 : "이를 계기로 대체텍스트 삽입 시스템과 기준도 새롭게 구축했다. 보이는 대로 무조건 길게 넣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모티콘 작가가 1차적으로 텍스트를 넣고, 검수 인력이 2차적으로 검토한다."

카카오에서 점자 달력 제작하는 이유

카카오가 만든 점자 달력홍윤희

- 카카오에서 2년째 '점자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왜 만들게 되었나?

성민 : "처음에는 점자 달력이 디지털접근성 영역 밖의 일이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지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혜일님이 예전에 제작했던 카카오 캐릭터 촉각 엽서를 보여준 후 마음이 바뀌었다. 라이언 같은 캐릭터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엽서다. 단순한 달력제작을 넘어 '카카오'라는 브랜드의 감각적 접근성과 카카오가 가진 온라인의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일상 소통을 하며 '사유(思惟)의 경험'을 하기가 어렵다. 기존 점자 콘텐츠가 정보 전달에 집중해 스피드를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이다. 한 장애 당사자가 점자 달력을 사용하고 '달력을 만지며 날짜를 고민하고 일상을 상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것이 인상깊었다."

- 제작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성민 : "점자달력은 기획과 디자인, 종이 인쇄, 코팅 및 점자 인쇄, 도무송(커팅), 점자스티커 제작, 제본(스프링/조립) 등 여러 단계의 제작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한 업체에 모든 과정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정마다 최고의 업체를 찾아 각각 의뢰를 했다. 점자달력이 워낙 까다로운 작업이기에 거절한 업체도 많았다. 예를 들어, 도무송(커팅) 과정의 경우 일반 인쇄물이라면 한 번에 수백장씩 자를 수 있지만, 점자가 인쇄된 점자달력은 한 번에 한 장씩 잘라야 한다. 달력 1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7번을 자르고 매번 검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업체 사장님의 가족 중에 시각장애인이 계셨고 좋은 일이라 힘들지 않다고 하셨었다. 추석 연휴에도 쉬지 않고 달력 제작에 힘 써주셨다. 음료수를 사 들고 가서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편으로 보람있는 과정이었다. 달력을 받은 어떤 아이의 부모님에게 받은 메시지가 기억난다. 아이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는데 달력을 받고 어릴 적 좋아했던 라이언 캐릭터를 손끝으로 다시 만지며 기억을 떠올리고 너무 행복했다는 거다."

카카오 점자 달력. 카카오 캐릭터들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홍윤희

혜일 : "첫 해 맹학교 중심으로 달력을 배포했다. 초기 목표가 아이들의 경험을 확장시켜주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성인 시각장애인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차마 지나치기 어려웠다. 2026년 달력은 전년 대비 제작 부수를 세 배가량 늘리고 배포 이외에도 판매를 진행했다."

성민 : "달력을 판매한 의도는 '주변의 시각장애인 지인에게 연말 따뜻한 선물을 하세요'였다. 실제로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주변 시각장애인 지인에게 선물한 후기가 많았다. 판매액은 전액 기부했다. 서울효정학교(시각장애인 유아를 위한 국내 유일 특수학교)의 소리-촉각놀이터 구축에 활용될 예정이다."

혜일 : "달력을 선물 받은 이들이 '여태까지 불편함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선물을 받게 되어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점자 달력이 당사자로 하여금 달력에 대한 경험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된 셈이다."

"'접근성'은 내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

- 인공지능(AI)이 전체 산업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모두의 AI'라는 정책 방향도 나온 상태다. 장애인의 삶에 AI 기술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혜일 : "AI는 여러 측면에서 보조기기 기술과 결합해 장애당사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접근성은 콘텐츠, 기술 등 다양한 요소와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접근성에 대한 UX(사용자 경험)가 달라질 수 있어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컨설턴트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러한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접근성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는다면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보다 손쉽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는 접근성을 준수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AI 도입을 통해 그런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접근성 확대에 AI를 결합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긴 한데 아직은 상용화될 수 있을 만한 단계는 아니다.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 장애당사자들이 AI시대에 더 뒤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혜일 : "신기술이 나올 때 접근성은 늘 한발 늦게 따라가면서 정보격차라는 사회문제를 만들어왔다. AI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전보다 더욱 노력해야 한다. AI는 누구에게나 엄청난 확장성을 가지고, AI를 활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매우 크다. 만약 AI에서 소외된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격차가 이전보다 더 크게 벌어질 수 있어 걱정된다.

장애인이 AI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측면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AI 활용에 필요한 콘텐츠도 지속적으로 생산해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데이터 측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원하는 정보의 형태와 내용이 다르다. 이러한 필요를 반영해 장애 환경을 포괄하는 정보와 AI로직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다. AI 영역의 접근성 해결을 위해 AI 개발 및 관련 정책 마련 시 반드시 장애당사자를 포함시켜 실효성을 검증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성민 : "장애 접근성에 있어 정책적인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2008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었다면 한국의 웹 접근성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기에 인식 제고 노력에 정책과 법 개선이 더해져서 지금의 접근성 기술 확산 수준에 이르렀다. AI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맞는 새로운 법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 사실 나 또한 혜일님과 성민님 활동을 보며 접근성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을 알아갔던 기억이다. DAO 도입까지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 초기에 비해 장애당사자 중 접근성 관련 활동을 하는 사람이 늘었나?

성민 : "그렇다. 접근성을 쉽고 재미있게 대중에게 알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장애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늘었다. 드물긴 하지만 대기업 중심으로 '디지털접근성' 조직을 도입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또한, IT업계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들도 많다. 개발환경에서 접근성을 이미 고려한 프레임워크나 라이브러리들도 많이 존재한다. 예전에 비해 '접근성'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된 셈이다."

- 마지막 질문이다. 접근성 분야에서 종사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혜일 : "보통 내 장애가 내 인생의 한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접근성은 내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장애당사자들 중 어딘가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접근성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 그런 능력을 가리키는 '장애 전문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문영민 교수가 사용한 표현이다.

혜일 : "맞다. 접근성은 장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장애인이기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 분야와 접근성을 접목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좋겠다."

성민 : "비장애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비장애인이지만 노안이 오면서 갈수록 글자 크기가 커져 간다(웃음). 이렇게 지금 하는 접근성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장애 접근성의 확보가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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