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9 17:50최종 업데이트 26.01.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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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 부장판사)의 체포방해 사건 선고공판에서 윤석열씨가 변호인들과 함께 판결선고 내용을 듣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년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은 군경 등 물리력으로 헌정 중단을 획책한 내란이었다. 이후에도 윤석열 체포 저지나 서부지법 사태 등에서 보았듯,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 헌법을 부정하며, 다중의 위력이나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내란 극복은 그 우두머리나 주요 임무 종사자 등 몇몇의 직접적 책임자 처벌이나 법제의 보완 만으로 끝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내란은 특정 개인의 일탈이나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사건을 넘어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물리력을 통해 소수의 탐욕을 관철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 그 본질이 있다. 다시 말해 내란의 뿌리에는 헌법이 선언한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의 원리를 무시했다는 문제가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선거, 헌법, 권력 분립은 시민의 의식과 결합되지 않을 때 껍데기로 전락한다. 시민이 권리의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고, 체념하거나 동원되는 대중으로 남을 때 민주주의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권위주의와 우경화의 흐름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특정 국가나 정권의 일탈로 국한되지 않고, 시민성이 약화된 사회가 공통적으로 겪는 구조적 현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극단적 정치·이념 집단에서 나타나는 경쟁의 절대화, 서열의 자연스러운 수용, 공감 없는 공정 담론은 민주주의의 규범적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물론 사회적 규칙과 기회 배분은 예측 가능하고 정당해야 한다.

그러나 공감이 결여된 공정은 능력주의라는 이름 아래 편견과 차별을 합리화할 위험이 크다. 이는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고, 약자의 도태를 '자연스러운 결과'로 오인하게 만든다. 경쟁을 자연의 섭리라고 강변하면서 공동체의 책임을 부정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체제가 아니라 강자의 기득권 옹호를 위한 규칙으로 변질된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동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무너지는 규범 등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를 지적했다. 그러나 그 분석에서도 '시민성의 약화'라는 보다 근원적 차원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시민성, 공감과 연대

시민성이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웃의 권리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약자와 공감하며 연대하는 역량과 실천이다. 갈등을 폭력이 아니라 숙의와 절차로 해결하려는 태도다. 또한 공적 문제에 참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역량이다.

이는 단순히 법 지식이나 애국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험 성적이나 경제성장 지표처럼 측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민주공화국의 존속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시민성의 결여, 즉 공감 없는 공정은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유대인 학살뿐 아니라, 장애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고 생명과 존엄을 효용의 논리로 재단한 '액션 T4(Aktion T4 - 장애인 등 대량 살상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이는 공감이 제거된 사회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948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를 통해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전문에서 나치 전쟁범죄에 대해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초래하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나치의 범죄는 그 경고를 역사적으로 환기시켰다. 그 사회에 공감의 자리는 없었다.

반면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시민성의 실천은 전태일의 '풀빵'에서(전태일 열사는 19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서 나눈 바 있다), 1980년 5월 '주먹밥'(1980년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은 항쟁에 참여한 시민군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다)에서, 또 2024년 겨울 '빛의 혁명'에서는 '키세스'나 '선결제'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시민성의 확대와 강화 없이는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 내란에 대한 탄핵과 국민주권 실현 운동은 동학혁명, 3.1 혁명, 4.19와 부마항쟁 5.18 등에 이은 우리나라 시민성 역량의 발현이며 또 역할모델이다. 이들을 앞으로 K-민주주의와 시민성 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UNESCO)에서는 '교육 2030 의제'(Education 2030 Agenda)를 추구하면서 학교는 물론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권의 확장을 요청하고 있으며, '공공재'이며 '공동재'인 교육은 그 "목적, 내용, 과정이 '협력과 연대'를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시민성교육, 민주주의의 인프라

국회 앞 집회참여자들 위한 식당 선결제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이뤄진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의 한 김밥집에 선결제 관련 안내문이 놓여있다.연합뉴스

시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어떤 제도 개혁도 지속될 수 없다. 내란의 물리적 억제는 당장의 과제이지만, 시민성 강화는 중·장기적 과제이자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가장 확실한 경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민주주의는 태어나는 순간 자동으로 시민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시민은 길러진다. 프랑스의 도덕·시민교육, 영국의 시민성 교육, 독일의 정치교육이 모두 역사적 반성과 함께 제도화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성 교육은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다.

특히 학교를 포함한 교육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인권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태어나는 순간 자동으로 시민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시민은 길러진다. 프랑스의 도덕·시민교육, 영국의 시민성 교육, 독일의 정치교육이 모두 역사적 반성과 함께 제도화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보장장치가 시민성 교육이기 때문이다.

현행 교육기본법이나 청소년기본법에서는 교육의 목적으로 민주시민의 자질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민성은 종종 '인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인성과 시민성은 본래 상충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의 권리와 참여, 비판과 저항의 언어를 희석시키고 반대하기 위한 명분으로 인성 담론이 활용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시민교육 관련 법률제정이 수 십 년 동안 국회에서 발의되고 폐기되기를 거듭한 것이 바로 그 구체적인 증거이다.

시민성교육 사회협약의 추진

시민성 교육을 다시 공교육의 핵심 과제로 복원해야 한다. 이는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문화와 운영 전반의 문제다. 학생자치, 참여형 수업, 사회적 쟁점을 다루는 숙의 과정은 시민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장치'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위원장 차정인)는 2026년 민주시민교육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협약 추진 등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국회에서 민주시민교육 지원 관련 법제의 조속한 도입을 독려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민주시민교육 추진 관련 사회 각 부문의 과제와 역할에 관한 밑그림을 제시하고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칭)'시민성교육 사회협약' 체결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포함하여 학교를 시민성이 보장되는 현장으로 만들어내며, 주제별, 계기별, 참여-실천형 수업의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시민성교육 관련 추진 방안을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기본계획에 수록하고, 나아가 차기 국가교육과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26년에는 이런 과제 추진을 위한 시민사회, 교원단체,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부 등과의 지속적 협의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시민성은 학교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복 입은 시민'을 길러낼 군경을 포함한 공공 부문, 지역, 시민사회, 디지털 공간 모두가 시민성의 학습장이 되어야 한다. 특히 혐오와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온라인 환경에서의 '디지털 시민성'(digital citizenship) 확보를 통한 비판적 이해와 책임 있는 참여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핵심 역량이 된다.

자율과 경쟁, 선택과 다양화를 내세운 이른바 '5.31 교육체제'는 한국 사회가 고속 성장과 세계화를 추구하던 시기에는 일정한 기능을 수행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학생들의 삶의 질과 시민성의 위기, 나아가 디지털 환경에서의 대혼란 앞에서 그 한계는 분명해졌다. 학생의 삶의 질, 창의 역량과 도전 중심의 공교육 정상화, 평생학습사회 실현 등과 아울러 시민성교육은 이른바 '5.31'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의 중심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내란 처벌이나 법제 손질은 필요하지만 여기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나아가 시민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전환을 시작할 것인가? 시민이 다시 시민이 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일어선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교육과 일상의 시민성 실천이다.

김거성 전 시민사회수석김거성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거성 박사는 반부패 유공으로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포럼 사의재 회원이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관,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국제위원, 국가교육위원회 민주시민교육특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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