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8 12:03최종 업데이트 26.01.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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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 들고 있는 모습 이미지Gemini 생성

58년생인 엄마는 몇 년 전 사실상 인생 첫 덕질을 시작했다. 유명 트로트 경연대회 출신 가수를 좋아한다. 물론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누군가의 진정한 팬이 된 건 내가 기억하기로 처음 있는 일이다.

엄마는 그 가수가 나온 달력이나 브로마이드를 얻기 위해 생전 하지 않던 음식 배달을 시키기도 했다. 그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과 예능 방송도 빼먹지 않고 모두 찾아보았다. 콘텐츠를 챙겨 보는 취미가 없고 그래서 보던 드라마를 한두 회 놓쳐도 미련이 없었던 엄마를 생각하면 참으로 별일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종종 나와 대화를 할 때면 그 가수의 것으로 알려진 미담을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졌다.

이렇게 좋은 가수면 그냥 이름을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나름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크고 작은 구설과 스캔들이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건 숙명과 같다. 자기 책임으로든 혹은 남의 탓으로든 아무 논란도 흠집도 남기지 않았던 사람은 찾기가 거의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가수는 정치적으로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2024년에 다소 경솔한 언행을 하여 논란을 만든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우연이 겹친 해프닝으로 그 사건을 넘기고 싶긴 한데, 당시에는 이 가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추측부터 시작하여 온갖 민감한 추측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당연히 꽤나 화를 냈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이 워낙 엄중했던지라 누군가에게 이 사람은 여전히 그 흠결이 회복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뉴스 칼럼에서 마냥 좋다고만 이야기해도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그 가수와 손절하기에 우린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위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손화신

다만 일상에서 나는 그 가수를 아주 빠르게 용서했다. 그가 정말로 안 좋은 타이밍에 경솔한 발언을 한 건 맞지만 발언 자체가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니었다(다만 가수 본인이 추후에 사과로 해석될 만한 말을 하긴 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의 일로 그 가수와 손절하기에 나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았다. 그 가수는 내가 너무나 아끼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엄마에겐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자기 취향이 담긴 물건도 집에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삶이 삭막할 수 있다는 감각조차 엄마에겐 없어 보였다. 은퇴한 아빠가 파크골프 스틱과 등산복으로 집을 빠르게 채워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눈을 뜨면 출근을 했고 돌아오면 가사노동을 했고 하루가 늘 그렇게 흘러갔다. 이러니 '요리' 같은 걸 취미라고 할 수 있겠나.

나는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사랑하는 가수의 앨범을 꼬박꼬박 사다 주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 가수...... 달력이랑 스케줄 노트 같은 거 있으면 어떨 거 같아?"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엄한데 돈 쓰지 말라고 그랬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엄마가 보인 화색을 내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서 그 가수의 시즌 그리팅(연말연초에 나오는 굿즈 모음)을 얻었다.

이제 엄마는 곧 그 가수의 단독 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벽에 더 좋은 자리가 나왔는지 확인하며 30만 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나는 엄마에게 미리 응원봉을 사주었고 엄마는 응원봉에 건전지를 넣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며 거실에서 그걸 휘둘러보셨다고 한다. 이 풍경을 절대 잃고 싶지 않다.

엄마의 '덕질'에 위기가 온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

국세청.김종철

지난 주말 나에게 가장 큰 뉴스 중 하나는 한 연예인의 탈세 의혹 소식이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해 이제는 배우를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대중의 호감도가 높은 연예인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잘생긴 외모와 반듯한 태도 덕분이었다. 나 역시도 그의 열렬한 팬까지는 아니지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라며 호감을 보이곤 했다. 실제로 그는 지친 일상의 순간순간에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물론 사안은 밝혀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예인 역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며 사태를 수습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만약에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럴 순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마음이 그럼에도 생각보다 드러난 상황이 심각하고 당사자가 면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 그도 기약 없이 활동을 중단하는 수준의 책임까지 져야 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담담하고 어른스럽게 결과를 받아들일 테고. 하지만 문득 그런 질문도 들었다. 엄마가 이 사람의 팬이었다면 어땠을까. 팬 미팅도 가고 응원봉도 사고 시즌 그리팅도 모으던 그런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나는 담담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유명 의사가 논란에 휩싸이자 이후 엄마는 그가 제작에 참여하고 모델도 하던 곡물밥 제품을 쿨하게 포기했다. 그런 사람이 만든 밥은 먹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마 엄마가 탈세 의혹을 받는 연예인의 팬이었더라도 똑같이 결별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별의 과정이 곡물밥 때처럼 쿨할 수 없으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오히려 이런 게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

그들이 자기가 대중의 사랑 위에 서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나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특정 연예인을 그만 좋아하게 된 일들이 있었다. 대부분 사회면에 날 만한 사건 때문이었다. 어딜 가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마음을 접기가 쉬워졌다. 어차피 새로운 사람은 등장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엄마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인생 첫 덕질을 시작하고 집안에 자기 취향이 담긴 물건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엄마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서 응원봉을 미리 흔들어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이전에는 보다 가볍게 여겨졌던 '등 떠밀린 탈덕'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지난해 11월 말로 기억한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연예계에선 다양한 사건·사고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심지어 이게 너무 많아서 몇몇은 까먹기까지 했다. 갑자기 누가 방송에서 보이지 않아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곤 "아 맞다... 그 때..."하고 말했던 적이 있을 정도다. 이게 그 업계 사람들의 집단적 윤리 감각이 갑자기 해이해져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운과 시기가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보는 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당연히 심란하다.

한국 사회의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유독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받는다는 건 알고 있다. 때로 과도한 비난에 시달린다는 것도. 하지만 이는 이들이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기반으로 업을 이어가는 특수한 분야 위에 서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만큼 기대와 애정이 크면 배신감도 커지게 되어있다.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마음을 연다.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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