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8일 함세웅 신부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암흑 속의 횃불-참스승 윤형중 신부 추모 함세웅 신부 서예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톨릭은 제국주의의 세계 침략에서 첨병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히로히토 일왕의 신사참배도 공인하고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 폭정에도 협조했다. 가톨릭은 이에 대한 반성으로 교황 요한 23세의 주도하에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어 과거에 대한 반성과 권위주의 청산, 세상과의 대화 등을 추구했다.
윤형중의 정치 비판은 가톨릭의 자성 움직임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전개됐다. 그 자신의 용기와 신념에 따른 것이자, 세계 가톨릭의 변화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윤형중이 지긋지긋해했던 그 '강도'는 위의 소감 표명 1년 뒤에 경무대에서 퇴거했다. 그러나 1년 뒤에 또 다른 '강도'가 군대를 이끌고 출현했다. 이승만은 4선 고지를 넘다가 1960년에 변을 당했지만, 이 강도는 그 허들을 여유 있게 뛰어넘었다. 이것이 1972년 유신체제의 시작이다.
그러자 저항 대열이 전방위적으로 형성됐다. 특히 종교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톨릭·개신교·불교 할 것 없었다. 1974년 9월 26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된 것도 이런 흐름의 산물이다.
70줄에 들어선 윤형중도 이에 뛰어들었다. 그는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했다. <한국근현대사연구> 2002년 제22집에 실린 윤선자 전남대 강사의 논문 '유신체제하 범국민 민주화운동 선언문'은 "1974년 11월 27일 정계·학계·언론계·종교계·여성계·법조계·문인 등등 각계 인사 71명이 현 시국에 대한 견해를 모아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를 갖고 민주회복국민회의를 발족"시켰다고 한 뒤 "민주회복국민회의는 거의 모든 세력을 망라"했다고 설명한다.
국민회의의 지도자가 된 윤형중은 '강도 이승만'을 대하던 심정으로 박정희에게 "폭탄선언"을 날렸다. 1984년 4월 3일 자 <동아일보> '법에 사는 사람들 (21): 민주회복국민회의 시절 이병린 씨 (7)'는 윤형중의 박정희 비판을 그런 선언으로 표현하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첫 번째 상임대표위원이었던 윤형중 신부는 75년 1월 6일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유신헌법 개정과 박 정권의 퇴진을 요구, 파문을 일으켰다. 국민회의는 그달 14일 박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반정부활동을 비판하자, 다음날 즉각 반격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유신체제는 독재체제이며 부정체체이며 부패체제이며 특권층의 안보와 안일을 위한 특권체제이며 국민의 기본권을 빼앗는 탈권체제'라면서 '우리는 개헌에 앞서 비인간적인 권력집단의 퇴진을 먼저 요구한다'고 밝혔다."
윤형중은 올바른 의미에서 종교의 정치참여를 추진했다. 이런 모범적인 선례를 남긴 그는 유신체제가 망하는 해인 1979년 6월 15일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그의 두 눈은 지상에 남겨졌다. 이틀 뒤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윤 신부는 12년 전인 67년 4월 서울성모병원에 안구은행이 개설되자 제1호로 헌안(獻眼) 등록을 했고, 그가 남긴 사랑으로 농업경제학자인 장현규 전북대학 대학원장과 윤석원 씨(상업)가 눈을 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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