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연간 상승률이 한국부동산원 통계 공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12월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8.98%로 집계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한국의 자산불평등은 통계로 확인된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상위 10%가 전체 순자산의 46.1%를 점유했고,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악화됐다. 주식 보유의 집중도 또한 높다. 5억 원 초과 주식을 보유한 상위 1%가 내국인 주식 보유총액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2023년 말 집계). 이런 숫자만 보면 "주식도 결국 부동산처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자산"이라는 결론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부동산 이익은 대체로 "특정 지역의 특정 주택을 소유한 개인"에게 귀속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주식의 이익은 직접 보유자만의 몫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연금·퇴직연금·펀드 같은 집합투자를 통해 수혜가 더 넓게 분산될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2025년 10월 말 기준 총 1427.7조 원, 국내주식 255.4조 원(17.9%)을 보유한다. 주가가 오르면 그 과실은 '주식 직접 보유 상위층'뿐 아니라 국민의 노후자산에도 일정 부분 반영될 수 있다. 물론 이 경로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연금은 자산배분 규칙 때문에 급등 시 기계적으로 비중을 줄이는 매도 압력을 받을 수 있고, 퇴직연금이 단기 수익률에 흔들려 자주 갈아타면, 주가 상승의 혜택이 가입자 다수에게 안정적으로 축적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은 '오를 때 뒤늦게 들어가고, 떨어지면 겁나서 나오는' 선택을 하기 쉬운데, 이런 방식은 장기 분산투자가 만들어내는 평균 수익을 스스로 깎는다. 그 결과 주가 상승이 '연금의 광범위한 수혜'로 이어지는 효과가 제한된다.
그럼에도 주식은 부동산보다 소액으로 쪼개어 접근할 수 있고, 레버리지(대출)에 의존하지 않고도 장기 적립이 가능하며, 연금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양극화가 운명적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요컨대 주식의 양극화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정책으로 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지점에서 '생산적 금융'이 등장한다. 주가 상승을 '일부 주식 거래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기업 자본조달의 확장'으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그 과실을 연금과 장기저축을 통해 더 넓게 공유하기 위해 생산적 금융이 필요하다. 최소한 세 가지 연결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나, 연금과 퇴직연금의 '장기·분산투자'가 기본값이 되도록 해야 한다
퇴직연금이 주가 상승의 혜택을 넓게 공유하려면, 가입자가 방치해도 연금이 스스로 '저비용·분산·장기' 원칙으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성과 경쟁에 흔들리면 연금은 추격매수와 공포매도를 반복하며 장기 수익을 깎는다.
따라서 디폴트 옵션을 강화하고, 오래 보유할수록 이익이 커지도록 세제·수수료·성과평가의 규칙을 장기투자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주가 상승=일부 부자의 이익'이라는 인식이 "주가 상승=노후의 한 축"이라는 경험으로 조금씩 바뀐다.
둘, 주식시장을 '자본조달의 장'으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코스닥·성장기업 시장에서 기업이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자금을 담보대출이 아니라 자기 자본성 자금(주식·메자닌·공모)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상장·공시의 신뢰를 높이고, 혁신기업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평가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정책금융은 그간 '은행이 안심하고 빌려주게 만드는 것'에 집중돼 있었는데, 이제는 위험을 함께 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출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말고 기업이 설비·인력·연구개발에 쓸 성장자금이 실제로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주가가 오르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주가가 기업의 투자 여력으로 현실화되는 구조다.
셋, 지배구조·
배당·
주주권 보호는 자본시장의 기본 인프라다
투자자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이익이 공정한 원칙에 따라 배분되며, 소액주주도 최소한의 권리를 지킨다'고 믿어야 기업에 장기자금이 들어온다. 이런 신뢰가 쌓일수록 기업은 성장자금을 더 싸고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고, 그 돈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투자자는 믿을 수 없는 기업에는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업에는 더 낮은 수익으로도 자금을 맡긴다.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공시가 믿을 만하며 주주권이 예측 가능해지면, 기업은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그만큼 투자 여력이 커진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논의가 단순한 주가 부양이 아니라 실물투자의 토대를 만드는 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연결장치 작동하려면 가계부채의 '중력' 낮추는 일이 병행돼야
부채 총량을 무조건 줄이자는 뜻이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레버리지가 자금 흐름을 주택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약화시켜 장기자금이 기업 투자로 흘러가게 하자.
가계가 자산형성의 대부분을 주택 레버리지에 의존하면, 소득의 큰 부분이 원리금 상환으로 빠져나가고, 금융시스템의 자금 배분도 담보 중심으로 굳어지기 쉽다. 이런 구조에서는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도 '장기자본'이 되기 어렵고, 기업투자로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결국 부동산 금융규칙(가계대출·PF 등)과 자본시장 규칙(장기자금·공시·지배구조)을 함께 고쳐야 한다. 이점에서 생산적 금융은 "산업에 돈을 더 넣자"는 구호가 아니라, 돈이 산업으로 흐르도록 만드는 규칙과 통로를 바꾸자는 제안인 것이다.
코스피 5000은 숫자만 놓고 보면 국가적 이벤트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생산·투자·고용으로 전환되는 가다. 지금의 생산적 금융 정책은 바로 이 전환의 영역—연금·자본시장·지배구조·위험분담의 결합—에서 아직 나가야 할 진도가 많이 남아있다.
'5000피'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면, 이제 정책의 초점은 주가를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주가 상승을 실물로 연결하는 장치를 촘촘히 만드는 일로 옮겨가야 한다.
▲김용기교수
포럼 사의재
* 필자소개 :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
필자는 과거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공적자금관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구단체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아주대 교수를 퇴직한 후, 저서 『생산적 금융 – 3% 성장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금융 혁신 전략』을 출간했다. <포럼 사의재>의 경제분과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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