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복원을 통한 남북관계 회복 의지를 재차 밝혔다.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날 선 냉랭함이 한 번에 녹진 않겠지만 북측의 호응을 끌어내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이룰 실현 가능한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며, "남북 간 우발 충돌을 방지하고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군사합의 복원은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동시에 이러한 조치가 한국과 조선(북한) 사이의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에 기여하고 꽉 막힌 관계에 숨통을 틔울 수 있는지도 대해서도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9·19 군사합의는 윤석열 정부 때에 '파기'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정치·군사적 신뢰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군사합의도 '풍전등화'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영 논리를 떠나 이 점을 직시해야만 정치·군사적 신뢰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남북관계가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태도 변화의 척도로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과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들었다. 이를 "근본 문제"라고 일컬으면서 중단을 촉구한 것이다.
그런데 2021년 3월에 연합훈련이 실시되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를 "붉은 선(red line)을 넘어선 것"으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9·19 군사합의를 겨냥해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군사분야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 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여전한 엇박자
안타깝게도 당시의 엇박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한미연합훈련은 계속되고 있고 올해 3월 훈련도 유예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방부는 전시작전권 조건 충족을 위해 연합훈련을 지속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또 정부는 임기 5년간 국방비를 연평균 8%씩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해 왔다. 한미연합훈련뿐만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대규모 군비증강 계획을 맹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군사비가 8.2%나 증강하는 것으로 반영되어 반공화국 대결 광신으로 악명 떨친 윤석열 정권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때 연평균 국방비 증액률은 3.9%였는데 이재명 정부는 2배 이상 올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이재명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단계적·선제적으로 복원하더라도 조선이 이에 대화 재개로 호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대북 전단 살포 및 확성기 방송 중단 등 이재명 정부의 긴장 완화 조치에 '조용히' 호응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군사합의 복원 조치를 하나둘씩 취하면 조선도 상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 제의에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을
나는 정부의 군사합의 복원이 '제한적인 성과'를 가져오더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군사적 긴장 완화 자체가 우리의 국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이 조미대화와 남북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이 되려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대규모 국방비 증액의 조정은 나중에 검토하더라도 당장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유예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정상 간의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 시점은 2월 중으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조선의 9차 당대회 이전이면 더욱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에 연합훈련 중단을 여러 차례 약속했었고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논의해 볼 수 있는 사안이다.
기실 2019년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허망하게 막을 내린 결정적인 사유는 미국이 약속을 뒤집고 8월에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 데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전시작전권 전환 조건 충족에 매달리면서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하여 무너진 정치·군사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출발점은 당시의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키는 데에 있다.
이런 제안이 연합훈련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방어·격퇴뿐만 아니라 반격·점령까지 연습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은 유예하고 소규모 연합훈련은 조용히 하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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