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현대판 면죄부'라고 불리는 '탄소 상쇄' 제도를 개혁해 실질적인 탄소 감축 수단으로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셔터스톡
탄소 상쇄의 시초는 교토의정서 체제의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였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 실적(CER,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을 자국의 감축분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CDM은 초기 설계의 허점과 관리 부재로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했다. 온실가스 저감은 감축, 회피, 제거의 세 방법으로 나뉘고 여기에 시장기능인 거래제를 들여와 제도로서 완성됐다. 세계탄소시장이 단일시장이 아닌 것을 감안해 선진국 탄소시장에서 개발도상국의 탄소 감축, 회피, 제거분을 사들여 그만큼 자기 시장 내의 저감으로 인정하게 한 것이 CDM이다. 시장규율이 다른 곳끼리의 탄소거래는 적잖은 문제를 노정했다.
대표적 사례가 강력한 온실가스인 수소불화탄소(HFC-23)와 관련한 중국의 '게이밍'(2010~2013년) 사건이다. HFC-23은 에어컨 냉매인 수소염화불화탄소(HCFC-22)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 가스다. '게이밍(Gaming)'이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중국과 인도의 냉매 공장에서 HFC-23을 일부러 더 만들었다가 이것을 파괴해 상쇄 시장에서 천문학적 돈을 벌었다. HFC-23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GWP)가 약 1만 4600배(IPCC 제6차 평가보고서 기준)나 강력해 HFC-23 파괴 시 막대한 크레디트(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제거했다는 사실을 인증해 주는 수익증권)가 발생한다.
영국 기후 싱크탱크 샌드백(Sandbag)과 스톡홀름 환경연구소(SEI)의 분석에 따르면 HFC-23 1톤을 파괴하는 비용은 0.2달러 미만인 반면 발행된 크레디트는 유럽 시장에서 15달러 내외에 거래되었다. HFC-23 1톤을 추가로 만드는 데엔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은 최대 약 60억 달러(약 8조 원)로 추정된다. 따라서 당시 파괴된 HFC-23 가스의 양은 약 3만~4만 톤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5억 톤에 해당한다. 웬만한 나라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 규모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인 공장들은 단순하고 저렴한 기술을 이용해 가스를 일부러 더 생산한 뒤 이것을 파괴하며 크레디트로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이 수익에 65%의 세금을 부과해 국고를 채웠다.
나중에 국제사회는 이 사기극에 분노했으나, 당시 '게이밍' 참여자들이 유엔의 방법론을 기술적으로 준수했기에 이미 지급한 돈을 환수하지 못했다. 결국 국제사회는 환수 대신 시장 퇴출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2013년 EU가 이 크레디트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서 이 크레디트는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 사건은 탄소 시장의 신뢰성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더불어 CDM이란 제도 설계의 허점을 깨달았다.
민간 부문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세계 최대 탄소 인증기관인 베라(Verra)가 2023년 초 발행한 열대우림 보호(REDD+) 크레디트가 논란이 됐다. 자발적 탄소시장(VCM, Voluntary Carbon Market)은 정부의 법적 규제와 상관없이, 기업이나 기관, 개인이 자신의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거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탄소 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비행기를 이용하고 나서 비행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크레디트를 사서 '상쇄'하는 게 VCM의 전형적 모습이다.
베라(Verra)의 열대우림 보호 크레디트의 90% 이상이 실제 감축 효과가 없는 '유령 크레디트'라는 폭로가 이어지며 VCM 최악의 추문으로 기록됐다. 베라는 위성 데이터와 예측 모델을 과장하여 보존되지 않았을 숲이 보존된 것처럼 꾸몄다는 비판을 받았고, '상쇄 회의론'을 다시 확산시켰다.
상쇄 2.0: PACM의 등장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대통령 특사로 참석한 조홍식 기후환경대사가 발표하고 있다.
외교부
이러한 연이은 실패를 목도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파리협정 제6.4조 감독기구는 새로운 세대의 탄소시장인 '파리협정 신용 메커니즘(PACM)'을 설계하며 전례 없는 엄격한 기준을 도입했다. 이 시장 메커니즘은 단계적인 국제 합의를 통해 완성되었다.
2024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개막 첫날, 그간 지지부진했던 협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방법론 개발 표준'과 '탄소 제거 표준'을 전격 승인했다.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PACM 가동을 위한 법적 기반을 조기에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25년 11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에서는 COP29에서 승인된 원칙을 바탕으로 분야별 세부 방법론과 각국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의 레지스트리(등록부) 연동 지침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상쇄 2.0'의 핵심 원칙인 ①보수적 기준선 설정 ②추가성 입증 ③누출(Leakage) 관리 ④영속성(Permanence) 보장이 가능해진다.
기준선(Baseline)은 해당 감축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배출되었을 온실가스의 추정치다. 기준선이 있어야 사업을 통해 감축한 양을 계산할 수 있다. 그 기준선을 헐렁하지 않게, 즉 엄격하게 잡으라는 얘기다. 추가성(Additionality)은 보수적 기준선을 설정해 실제 감축이 일어났지만, 이 사업이 아니어도 어차피 일어났을 일이 아니라 반드시 이 사업을 통해서만 일어났을 일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논리다. 'But-for' 원칙이라고도 한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거래할 때 판매국의 인벤토리에서 판매분만큼 차감하는 상응 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을 의무화해 CDM의 유산인 이중 계상 문제도 기술적으로 해결하였다. 이중계상은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한 후 그 크레디트를 한국이 사들였을 때 양국이 모두 감축분을 자국의 감축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상쇄 2.0'체제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카본마켓워치는 파리협정 6.4조에 따른 최초의 배출권 발행 예정 사업 중 하나인 미얀마의 조리개량 사업(PoA 10415)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는 과학적 기준치보다 약 26배나 많은 크레디트를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그만큼 과장됐다는 얘기다. 1389개의 CDM 프로젝트가 6.4조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신청한 상태에서 부실 프로젝트의 '표지갈이' 우려 또한 크다. 초기 불량 물량은 시장 안착의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EU의 고육책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탄소 배출 불균형을 바로잡고 있다.
유럽 위원회
2040년까지 1990년 대비 90% 순배출 감축이라는 강력한 목표를 설정한 EU는 2025년에 약간의 타협을 받아들였다.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등 일부 회원국이 비용 부담과 산업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반발하면서 이 엄격한 목표에 유연성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즉 탄소 상쇄 시장의 잇단 스캔들에 따라 2021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EU-ETS) 내에서 CDM을 통한 상쇄 크레디트(CER 등)의 사용을 전면 금지한 EU가 파리협정 6.4조에 따른 크레디트는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한적 허용이다. 여전히 기업의 크레디트 활용은 금지되고 회원국이 204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해 필요시 5% 범위 내에서 활용하게 했다. 기업엔 상쇄를 통한 온실가스 저감을 못하게 하고 기업 외에만 부분적 활용을 허용한 것이다. 시행시기도 2036년부터이다.
유럽 기업과 회원국 정부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EU는 이 정도 선에서 봉합할 의지를 굳히고 있다. EU를 빼고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업 부문은 대략 전체 감축량의 5%를 크레디트로 쓰게 하고 NDC에서는 드물지만 40%(싱가포르) 가까이, 대부분 EU보다 많이 활용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균형에 대한 EU의 해법은 널리 알려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이다. 우리가 이만큼 줄이고 있는데 탄소를 펑펑 쓰며 만든 제품을 EU에 수출한다면 상응하는 '탄소 관세'를 매기겠다는 일종의 보호무역이다.
CBAM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2023년 10월 1일 시작된 전환기간(Transitional Period)이 2025년 끝났다. 전환기간엔 해당 기업에 보고 의무만 부과한다. 2026년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CBAM은 말하자면 상품 제조 단계에서 탄소 크레디트로 비용을 아낀 타국 제품에 대해 유럽 배출권 가격에 해당하는 관세를 부과하여 불균형을 교정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CBAM으로 탄소 상쇄 정책의 불균형에 따른 불이익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다. EU가 역내 기업들을 직접 감축이라는 가시밭길로 내모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구를 지키겠다는 명분 뒤에서 넷제로 제조 기술과 그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 담겼다. 상쇄라는 임시방편에 의존하는 타국 기업들이 혁신을 미루는 동안 EU는 고육책을 통해 핵심 기술을 완성해 미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한국의 과제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한국은 2030 NDC 달성을 위해 약 3750만 톤(감축량의 12.8%)을 국제 감축 실적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정도를 국내에서 직접 줄이지 않고 사실상 외국에서 돈으로 사들여 상쇄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산업 특성이 있고 그동안 제대로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EU처럼 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쇄 2.0' 전환 시대에 질적, 양적 대비를 서둘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책 담당자들이 깊이 고민하고 있겠기에 긴 얘기는 않겠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다양한 탄소제거기술(CDR)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탄소 상쇄 시장도 '얼마나 싸게 사느냐'에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의 싸움으로 변모한다. 선구안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2040년에 한국은 EU에 견주어 어떤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인가.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상쇄의 성찰을 바탕으로,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닌 기후 기술 혁신의 도구로서 탄소 시장을 재정의하고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침로를 잡아야 한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본인
필자 소개 : ESG연구소장으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국가기술표준원 ESG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20년가량 ESG와 지속가능성 분야를 실천적으로 천착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분야에서도 쓰고 가르치고 토론하는 일을 본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이자 전 경향신문 기자로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 등 약 4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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