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2 11:19최종 업데이트 26.01.22 11:19
  • 본문듣기
버려진 성탄나무버려진 성탄나무. 1월 6일부터 수거하는데 동네마다 수거일이 지정되어 있지만 뒤늦게 내다버린 나무들이 애처롭게 뒹굴고 있다.고정희

신년에 내렸던 하얀 눈이 녹고 나니, 베를린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연말에 터뜨린 폭죽의 잔해들이 질척거리고, 가로수 옆에는 수거 기간을 놓친 성탄 나무들이 뒹굴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이 풍경은 베를린의 고질적인 쓰레기 문제를 상기시킨다. 시 청소과에서 매일 수천 명의 인력을 투입해 거리를 훑고, 한 해에만 수만 세제곱미터의 불법 쓰레기를 치워도 베를린은 '쓰레기의 수도'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다른 도시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 마이 베를린.

넘쳐나는 거리의 쓰레기통이 처음 눈에 띈 것은 2011년. 평화로운 슈프레 강변 산책로에서였다. 유난히 청명했던 날 산책길에 마주한 넘쳐흐르는 쓰레기통은 내가 체험한 도시 질서의 첫 균열이었다. 그 이듬해 한국에서 온 동료들과 장벽 공원을 산책할 때 마주친 쓰레기들은 민망함을 넘어 당혹스러웠다.

지성의 전당에서 본 기묘한 '퍼포먼스'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2012년 모교 베를린 공대 교정에서였다. 학생 식당 앞, 기업에서 나와 학생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었다. 더 놀라웠던 건 선물을 받겠다고 학생들이 줄을 섰다는 사실이었다.

점입가경으로 학생들은 봉투를 받자마자 내용물은 확인도 안 한 채 광장 한복판 쓰레기통 '앞'에 보란 듯이 던졌다. 당시엔 소비문화가 지성의 전당까지 잠식했다는 격세지감에 혀를 끌끌 찼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라고 생각했다가 노친네티 내지 말라고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잊히지 않는 풍경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베를린 공대 식당 앞 광장 휴지통베를린 공대 식당 앞 광장 휴지통 앞에 봉투째 버려진 기념품. 과소비사회에 대한 학생들 나름의 저항 퍼포먼스.고정희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들만의 기묘한 '저항'이었을지 모른다. 과잉 생산된 자본주의의 찌꺼기를 받아서 바로 없애버리겠다는 갸륵함, 혹은 기후 위기 앞에서도 미온적인 정권을 향해 식당 앞 광장이라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벌인 일종의 시위가 아니었을까. 비록 그 방식이 뒤틀려 있을지언정, 그들로서는 쓰레기를 투척함으로써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본능적인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분절된 의식

재미있는 점은 이 도시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조다. 한쪽에서는 쓰레기를 던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포장 없는 슈퍼마켓'을 연다.

포장없는 슈퍼마켓포장없는 슈퍼마켓. 젊은 여성들이 꾸려나가고 있는데 나이든 세대들의 이용률이 높다.고정희

그동안 쓰레기 투척 심리에 대한 석사 논문도 여러 개 나오고 심리학자들의 전문 보고서도 적지 않게 발표되고 도시 청소과에선 열심히 '계몽'하고 있으나 상황이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소 앱도 나와서 무단 투척한 쓰레기가 보이면 사진을 찍어 신고할 수 있다. 그러면 청소과에서 바로 나와 처리한다. 자원봉사 단체도 결성되어 주말에 쓰레기 모으기도 하는데 모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 신고하는 저널리스트가 있다. 그는 최근 이런 글을 발표했다. "나의 악몽은 어느 날 거리를 가다가 인도를 달리는 자전거에 치여 나폴리 피자 포장과 라떼 웅덩이에 엎어지는 것"이라고. 이게 과연 베를린의 일상일까?

왜곡된 쿨함과 자유? 그래도 희망은 있다

쓰레기가 널려 있는 상황을 "자유의 도시" 베를린의 쿨한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구역 간에 누가 더 더러운지를 경쟁한 적도 있다! 노이쾰른 같은 지역은 오염도가 높은 것을 오히려 그 지역의 특징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쓰레기 투척 심리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예를 들어 세계화와 저가 상품의 유입으로 물건 가격이 폭락하면서, 빨리 사고 빨리 버리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거리에 무단투척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싸게 산 것은 빨리 버리게 되고 버릴 것은 많은데 수거 비용은 아까우니 밤중에 몰래 내다 버리는 등 시민 의식, 공동체 의식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 문제일 것이다.어느 팟캐스터는 "베를린은 끝났어. 사람들은 이제 코펜하겐이나 파리에 가는 걸 선호해"라고 말하며 마이크를 껐다.

공원에 버려진 가구보란 듯이 공원 한 복판에 버려진 가구. 대체 무엇에 대한 저항이고 시위일까?고정희

그러나 그렇게 희망이 없지는 않다.

'코너링'이라는 것이 유행한 지 한 십 년쯤 된다. 젊은이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지 않고 거리의 코너에서 만나 편의점 앞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 동네 파울루스 교회 앞 녹지가 좋은 예다. 저녁마다 수많은 젊은이가 교회 계단에 앉거나 날이 좋으면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기도 한다. 맞은편 상점들은 활기를 띠지만, 신기하게도 이들이 떠난 자리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결국 쓰레기 투척은 인식과 심리의 문제라는 증거다. 이들을 내쫓지 않고, 들어와 예배보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 대신 꽃밭을 만들어 주고 음악회 등 행사를 열어 포용하는 여성 목사님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이들의 자발적인 시민 의식을 끌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규정을 많이 만들고 벌금을 높일수록 저항하고 싶어진다. 거리에 CCTV가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자율에 맡기는데 그 자율이 어려운가 보다. 통제를 원하나? 한 번은 장벽 공원에서 또다시 넘치는 쓰레기통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빈 햄버거 포장과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 더미 위에 던졌다.

저항할 '건더기'가 없는 세대의 문제

몇 년 전에 목격한, 소위 말하는 68세대 어머니와 딸의 대화가 떠 오른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화였다. 사회 혁신 세대의 일원 임을 자부하는 어머니의 핀잔에 딸은 대답했다.

"너희들은 투쟁도 안 하니?"
"엄마 세대가 부족함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줬는데, 대체 뭐에 저항해서 투쟁하라는 거야?"

어쩌면 오늘날 거리에 쓰레기를 던지는 행위는, 완벽하게 정돈된 기성세대의 질서와 부족한 것 없는 복지 사회에서 저항할 '진짜 건더기'를 찾지 못한 이들의 비겁하고도 비극적인 반항일지도 모른다. 장벽 공원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컵을 던지던 청년의 눈빛은, 그저 존재감을 확인 받고 싶은 미성숙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베를린 시 청소차베를린 시 분리수거차. 옆에 쓰인 문구는 "이별이 언제나 아픈 것은 아녜요." 베를린 시 청소과는 유머러스한 홍보 문구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무단 쓰레기 투척 현상을 막지는 못한다.고정희

쓰레기를 버리는 것 이상의 저항을 꿈꾸며

베를린의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행정의 실패라고 볼 수 없다.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개인의 도리이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일 수 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는 복지 사회에서의 삶이 정말 완벽한 걸까? 환경 보호를 외치며 다른 한편으론 쓰레기를 투척하는 '분절된 의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만은 많지만 뭐가 불만인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래서 만만한 쓰레기가 내던짐을 당한다.

성숙한 사회란, 쓰레기를 버려서라도 저항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가는 기초 상식 위에서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사회다. 파울루스 교회 광장에서 보여준 희망이 베를린 전역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이제 베를린은 그 '힙한 가면' 뒤에 숨겨진 악취를 인정하고, 쓰레기를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깨끗한 거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성숙한 저항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