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 25일 자 <경향신문> 기사 "커피 마니아 '7년 각고' '한국형 볶는기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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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생두를 볶아서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 생두를 볶는 로스팅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였다. 기록이 전하는 첫 국산 로스팅 기계가 등장한 것이 1997년이었다. 대구에서 커피명가를 창업하여 운영 중이던 안명규가 "커피 볶는 기계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후 증가한 커피 소비와 카페 창업 열풍을 타고 커피 로스팅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언론에 커피 로스팅 방식을 소개하는 기사가 많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2009년에 로스팅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에 원두를 콩에 비유하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바로 '바둑이콩'이다. 그동안 구전되던 용어가 신문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였다. 즉, 기계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음료를 만들고 여기에 물이나 우유 제품을 섞어서 만드는 아메리카노, 라테, 카푸치노 등의 음료가 유행하였다. 이런 음료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원두는 단일 품종이 아니라 여러 품종을 결합하여 만든다. 이른바 블렌딩이다.
블렌딩(blending)은 커피콩 몇 가지를 섞어 바리스타가 원하는 맛을 내는 방식이다. 가격이 낮은 생두 몇 가지를 섞어서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 혹은 저가의 로부스타종을 고가의 아라비카와 섞어서 생산 단가를 낮추는 방식이기도 하다. 로스터리 카페에서는 그 집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하우스 블렌드' 커피라고 불린다.
커피 원두를 섞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로스팅 전에 섞는 방식과 로스팅 후에 섞는 방식이다. 수분 함량이나 밀도 등 특성이 유사한 생두들은 먼저 섞은 후 로스팅해도 무방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특성에 차이가 많이 나는 몇 가지 생두를 섞어서 볶으면 어떻게 될까? 커피 볶이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콩은 잘 볶이는 반면에, 어떤 콩은 덜 볶이거나 지나치게 볶이기도 한다. 이런 원두들이 섞여 있으면 외관상 얼룩덜룩한 모습이 된다.
이렇게 생두 각각의 특성을 살피지 않고 마구잡이로 볶아서 얼룩덜룩해진 원두를 부른 이름이 '바둑이 콩'이었다. 바둑이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어서 바둑돌처럼 보이는 점박이 강아지를 부르는 명칭이다. 로스팅하는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상품 가치는 떨어진다. 바둑이콩을 갈아서 커피를 내리면 쓴맛이나 떫은맛 등 바리스타가 의도하지 않은 맛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바둑이콩을 만들지 않으려면 각각의 원두를 색상이 같은 수준으로 로스팅해서 나중에 섞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바둑이콩이란 말이 로스팅 붐을 타고 2010년을 전후해서 한동안 유행했다.
인간 사회에도 바둑이콩 현상이 있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 사회 구성원을 하나의 기준으로 가르치고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특성이 존중받는 교육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다. 평가 기준은 하나이고, 교육의 성과는 태어나 자라는 지역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바둑이콩 사회'다. 균형 잡힌 맛은 사라지고 쓴맛과 신맛, 떫은맛이 넘치고 부딪치는 얼룩덜룩한 사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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